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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가호』를 읽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친숙하지만, 소설은 여전히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이번에도 기대와 경계가 함께했다. 그런데 소개 문구에서 눈길을 끈 대목이 있었다. 하루키의 장편소설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이다. 소년 주인공이 익숙했던 작가가 여성 인물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다.
『가호』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베푸는 ‘가호(加護)’를 떠올렸다. 하지만 여기서 가호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가호는 자기 이름을 소개할 때마다 이렇게 설명한다.
“여름(夏) 돛(帆)이라 쓰고 가호라고 읽습니다.” (40쪽)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달리, 가호는 일 년 중 가장 추운 2월에 태어났다.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타인과 거리를 두는 데 서툴다. 소설 중반에는 가호의 그런 성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쩌면 나는 의무감이 너무 강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의무감으로 뭔가를 즐기는 체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니와 당연히 즐길 수도 없었다.
천성적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는 요령을 잘 모르는 것이리라. 가호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겉으로 즐거운 듯 행동하면 주위에서는 만족하고 나를 평범한 인간으로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내 위치가 결정되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이 깨지지 않게 지켜나가면 된다. (98쪽)
가호는 특별한 능력이나 극적인 면모를 앞세우는 인물이라기보다, 주변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건들 속에서도 그녀의 반응을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는 불쾌한 소개팅 자리에서 시작한다. 식사가 끝날 무렵, 상대 남자는 가호의 얼굴에 대해 무례한 말을 던진다.
“그쪽처럼 얼굴이 별로인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별로라는 사실이 그쪽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마 그런 게 궁금했을 거예요.” (11쪽)
첫 장면부터 불편하다. 가호는 그 불편함을 삼키듯 넘긴다. 타인과 거리를 두는 법을 잘 모르는 그녀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러다 말하는 개미핥기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개미핥기는 가호에게 무사시사카이로 이사해야 한다고 권하고, 개미핥기 부부와 재규어, 흰개미 여왕, 수호천사까지 차례로 나타난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부터가 환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 낯선 전개는 하루키 소설 특유의 난해함을 한층 키운다.
전개가 낯설어도 가호라는 인물에게는 정이 간다. 어머니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가호가 무사시사카이를 떠나 본가로 향하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호는 잠시 아버지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 눈의 움직임을 쫓았다. 긴 세월에 걸쳐 운전이 몸에 밴 사람답게 눈을 움직인다. 신중하고, 주의 깊고, 그러면서도 여유롭다. 가호는 그 눈의 움직임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이 어릴 적부터 좋았다. 아버지는 꾸준히 늙어 갔지만 눈의 움직임만큼은 지금도 끄떡없다. (132쪽)
운전이 몸에 밴 아버지의 눈을 딸이 가만히 좇는다. 기이한 존재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이야기 한가운데에 이런 일상의 온기가 놓여 있어, 오히려 환상적인 장면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을 듯하면서도 한발 비켜서 있는 인물로 가호의 삼촌이 있다. 삼촌은 가호에게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건 그렇고 아마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을 거야. 진정한 이야기란 눈에 보이는 형태로든 감춰진 형태로든 반드시 어떤 유용성을 포함한다고. 요컨대 실익 없는 이야기는 시시하다. 재미없다. 무가치하다는 뜻 아닐까.” (165쪽)
이 말을 읽고 나면 『가호』가 품은 ‘숨겨진 유용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책을 읽는 동안 그 답을 분명하게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개미핥기 부인의 말이 이야기를 다른 방향에서 비춘다.
당신은 당신의 세계 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개미핥기 부인은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렇게 말했지 싶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가지 것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의 세계의 중심점, 요컨대 나를 향해 모여든다고 말했다. (213쪽)
누구나 자기 삶이라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는 뜻일까. 이 대목을 읽으며 결국 소설이 건네는 질문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내 삶이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가볍게 시작해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였다.
하루키는 모녀 관계와 여성의 시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밝힌 바 있다. 가호의 능동적인 움직임은 관조적인 소년의 성장을 그려온 전작들과 다른 인상을 준다. 다만 모녀 갈등이 풀리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갈등이 충분히 깊어지거나 변화하기 전에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세계관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회귀와 빙의, 환생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 소재가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할 줄은 몰랐다. 이계의 존재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속도감은 흥미롭지만, 각 존재의 의미가 충분히 쌓이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에서 기대하는 무게감에 비추어 보면 『가호』는 다소 가볍게 읽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기이한 사건들 사이에서 가호의 일상과 가족의 온기를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