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부호
성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출판사에서 서적을 제공받가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성해령의 소설에서 성공한 사람을 찾아보긴 어려울 것이다. 독립은 요원하고 우정은 실패하며 사랑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실패가 산적한 서사를 위해 소설가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마술은 고통의 서사를 치유의 서사로 교체하는 것이다. (290쪽)
『대부호』를 읽고 나서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해설의 이 문장이었다. 해설이 짚은 대로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끝내 이기지 못한다. 집을 구하고 가족을 돌보고 친구를 떠올리는 일상 속에도 해피엔딩이 들어설 자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작가는 그 실패를 화해나 위로로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다. 그 덮지 않음은 불편하면서도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긴장으로 남는다. 여덟 편의 단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임장」, 「하악」, 「나방파리」였다. 선망과 가족, 우정이라는 서로 다른 관계를 다루는 세 작품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을 알고 있는가.
먼저 「임장」의 주인공 ‘나’는 자기 집을 마련하려는 마음으로 부동산 임장 모임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모임을 이끄는 민연 언니를 선망한다. 일에 능숙하고 말이 분명한 민연을 동경하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를 찾아 나섰다가 믿기 어려운 장면과 마주한다. 소설은 그 이후의 일을 직접 확인하도록 독자에게 남겨 둔다. 내게 오래 남은 문장은 화자가 반지하에 살던 친구의 집 냄새 때문에 친구와 멀어졌던 기억이었다.
친구에게 절교 편지를 쓰면서도 집에 가기 싫다는 진짜 이유는 말하지 못하고, 친구의 말투와 버릇이 싫다는 다른 이유를 적었다는 고백이다. “어떤 거짓은 진실의 반대가 아니라 대체일 수 있다”는 문장이 서늘한 것은 거짓말을 한 사람이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계급의 차이는 냄새라는 감각으로 옮겨지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은 말투와 버릇을 핑계로 삼는다.
임장 모임 역시 그런 번역이 일상이 된 공간처럼 보인다. 평수와 입지와 가격을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는 서로의 처지를 냄새 맡듯 가늠한다. 남의 집을 평가하는 위치에 선 사람은 동시에 자기 처지의 열세를 선명하게 느끼기도 한다. 화자가 민연을 선망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선망은 상대를 정확히 보는 일이 아니라 자기 결핍을 상대에게 비추는 일일 수 있다. 그러므로 선망하던 사람이 사라질 때 흔들리는 것은 민연의 정체만이 아니다. 상대를 안다고 믿었던 ‘나’의 시선도 함께 흔들린다.
민연의 집을 치우며 마주한 쓰레기가 “생명보다 더 치열하게 부패하고 있었다”는 표현은 이 소설의 냄새와 이어진다. 숨기고 싶어 치우려 한 것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강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감각이다.
「하악」은 마흔 살 여성 자인이 발달장애인 동생 태인과 조카 서린을 만나러 가는 하루를 따라간다. 자인은 낮에는 북쪽으로, 저녁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며 돌봄의 시간을 지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조금씩 깨닫는다. 가족애라는 말이 가장 먼저 지워 버리는 감정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가족 소설이다. 자인은 동생을 두고 자신이 한 번도 원한 적 없던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절이 정직하게 다가온 것은 돌봄이 흔히 헌신과 성장의 이야기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자인에게 동생은 선택하지 않은 몫이며, 자신이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축복의 목록에 놓인 존재다. 그렇다고 자인이 동생을 미워하기만 하는 것도, 사랑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양가적인 마음을 해소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작품의 힘이다. 해설이 말한 치유의 서사로의 교체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작품이라고 느꼈다. 자인은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선망과 열패감을 동시에 느낀다. 축복을 많이 받으며 자란 서린을 만나는 장면에서 그 감정은 창밖 서울의 불빛으로 표현된다. 빼곡한 불빛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삶이라는 사실, 살아가는 데 이렇게 많은 빛이 필요하다는 사실 앞에서 자인은 혼자 아득해진다.
그 순간의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선다. 사는 일 자체가 이만큼의 힘을 요구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는 듯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하악」의 서늘함이라면, 그 거리를 헤아리게 하는 단위는 창밖의 불빛이다.
「나방파리」는 서로의 처지에 깊이 이입하며 친구가 되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다. 화자 일영은 종희 언니의 어린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받고, 오래 눌러 두었던 관계의 단절과 죄의식을 다시 마주한다. 제목 속 나방파리는 아주 작은 힘에도 짓이겨지는 미물이다. 오랜 친밀함도 그만큼 쉽게 으스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아프게 다가온 장면은 종희가 일영에게 자신의 고통을 말하며 일영의 두통은 진짜가 아니었다고 몰아붙이는 대목이다. 검사 결과가 깨끗했다는 사실은 고통이 가짜였다는 말로 바뀌고, 카페의 손님과 점원이라는 자리는 ‘진짜 사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르는 선처럼 작동한다. 이 장면은 사과나 해명이 아니라 고통의 위계를 선언하는 순간이다. 누구의 고통이 진짜인지를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사이이기에 더 정확히 찌를 수 있다는 점이 아프다. 일영은 무슨 말이든 하려다 입술만 깨물고 호텔방을 나선다.
그 모습에서 「임장」의 절교 편지가 떠올랐다. 「임장」의 화자는 하지 못한 진짜 말을 다른 거짓으로 대체했고, 일영은 해야 할 말을 입 안에 가둔다. 방식은 달라도 두 사람은 끝내 진실을 말하지 못한 채 관계를 잃었다. 아들의 부고는 이미 끝난 줄 알았던 관계가 죄의식의 형태로 남아 있음을 드러낸다. 세 작품을 겹쳐 읽으며 공통으로 보인 것은 말하지 못하는 일, 계급과 처지의 비대칭, 그리고 그런 일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벌어진다는 점이었다. 「임장」에서는 진실이 거짓으로 대체되고, 「하악」에서는 감정이 가족애의 언어에 눌리며, 「나방파리」에서는 말이 입술 사이에서 사라진다. 반지하 집의 냄새와 축복받지 못한 사람의 열패감, 카페 점원과 손님의 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같은 비대칭을 드러낸다. 임장 모임과 돌봄의 하루와 호텔방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이 소설들의 불편함은 괴물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독립은 요원하고 우정은 실패하는 세계에서 「임장」은 자기 집을 향한 욕망을 독립의 불안과 겹쳐 놓고, 「나방파리」는 우정의 실패를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준다. 「하악」은 가족이라는 단단해 보이는 관계도 그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말한다. 성해령은 실패를 위로로 바꾸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자기 안의 선망과 열패감, 그리고 작은 악의를 돌아보게 한다. 가까운 사람을 안다고 믿는 마음은 어쩌면 상대를 보는 일보다 자신의 결핍을 그에게 비추는 데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대부호』는 그 익숙한 믿음을 조용히 흔들며, 우리가 서로에게 끝내 알 수 없는 존재로 남을 가능성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