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영혼의 왈츠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영혼의 왈츠기억(원제는 판도라의 상자), 꿀벌의 예언에 이은 판도라 연작의 세 번째 작품이다. 세 작품은 최면이라는 일종의 유도 명상을 통해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에 닥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작이 두 편이나 있어 바로 읽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무리가 없었다. 물론 전작의 내용을 알고 있다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영혼의 왈츠만으로도 하나의 독립적인 소설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나 역시 꿀벌의 예언은 읽었지만 기억은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읽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작가가 적은 헌사부터 인상적이었다

책과 도서관, 서점의 존재의 의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 이기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갈수록 힘든 싸움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아무런 노력도 요구하지 않는 각종 미디어가 빠른 속도로 우리의 감각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헌사는 책이 처한 현실을 생각하게 했다. ‘이기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실은 갈수록 힘든 싸움이 되어 가고 있다는 말에서 오늘날 책과 도서관, 서점이 마주한 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소설 한 권을 펼치기도 전에 이 작품이 단순한 오락물을 넘어 기록과 지식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예감은 마지막까지 틀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아포칼립스를 단 5일 앞둔 시점, D-5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외제니 톨레다노는 파란 눈에 긴 빨간 머리를 가진 23세의 젊은 여성으로, 기억꿀벌의 예언의 주인공이었던 르네 톨레다노의 딸이다. 어머니 멜리사 톨레다노가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외제니는 퇴행 최면, 소설 속 표현으로는 내면 여행 체험을 통해 전생으로 들어가 파국의 실마리를 찾아 나선다. 아버지 르네 톨레다노 역시 아내의 갑작스러운 발작과 딸의 무모해 보이는 여정을 지켜보며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외제니의 여정은 단순히 개인의 과거를 찾아가는 모험이 아니다. 네안데르탈인 시대에서 고대 이집트, 피타고라스 학파의 그리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 전체의 역사를 관통한다. 그 과정에는 인류를 야만으로 이끌려는 세력과 문명의 빛을 지키려는 세력 사이의 12만 년에 걸친 대결이 숨어 있다. 외제니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국을 막기 위해 이 오래된 싸움의 결말을 다시 써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개인의 이야기가 인류 전체의 역사와 연결되는 거대한 구조가 이 소설을 묵직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소설이 초반부터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하나의 공식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유전 25%, 카르마 25%, 자유 의지 50%.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유전과 카르마의 영향을 받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유 의지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에게는 정해진 운명이나 환경 앞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그 선택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자유 의지 50%’라는 설정은 영혼의 왈츠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처럼 느껴졌다.


외제니는 전생을 오가며 최초로 불을 발견한 여성의 후손, 문자를 처음 발명한 여성 등 다양한 삶의 기억을 복원한다. 그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불타는 도서관이다. 선사시대의 엄지의 두루마기, 앙크티의 지식의 사원, 피타고라스 학파의 도서관, 그리고 현재의 소르본 대학교 도서관까지, 지식과 기록이 쌓인 장소가 파괴되는 모습이 반복된다. 현실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려 하자 외제니는 이렇게 다짐한다.


매번 도서관이 불탔어. 선사시대의 엄지의 두루마기, 앙크티의 지식의 사원, 피타고라스 학파의 도서관, 그리고 지금 소르본 대학교 도서관...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어.”


이 문장은 영혼의 왈츠가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소설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외제니는 세상이 악인들 때문에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수수방관하는 사람들 때문에 파괴된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린다. 결국 기억과 기록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책 몇 권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라 문명 자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의미로 이어진다.


소설에서는 지식을 나누려는 사람들과 지식을 독점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의 대립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외제니가 전생 체험을 통해 만난 천사들은 이러한 대립을 단순한 선악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어요.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에 비추어 빠르게 혹은 느리게 진화하는 영혼들이 있을 뿐이죠라는 말이나 악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사적 권력에 눈이 어두운 지도자들이 있을 뿐이죠라는 말은 작품 속 갈등이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계몽과 몽매, 지식의 공유와 독점의 대립이 시대를 달리하며 반복된다는 설정은 현실의 양극화와 혐오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소재는 아카샤 도서관이었다. 멜리사의 주치의인 가네쉬 카푸어 교수는 외제니에게 힌두교 경전 가운데 하나인 브라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에 아카샤 도서관에 대한 언급이 있다고 설명한다. 기원전 800년에 집필된 이 책에 따르면 아카샤 도서관은 하늘에 존재하는 일종의 기억의 장소로 인간의 삶과 이야기가 저장되는 곳이다. 모든 인간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는 발상은 소설 전체의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치로 느껴졌다.


인간의 의식 수준을 점수로 표현한 설정도 흥미로웠다. “6점 만점에 3.5이라는 표현과 함께 “6점은 가장 높은 의식 수준을 가리켜요. 이 점수에 도달하면 환생 의무에서 벗어나죠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인간의 정신적 진화를 구체적인 숫자로 표현한 방식이 새롭게 다가왔다. 소설 후반부에 천사가 영혼의 진화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작품의 제목인 영혼의 왈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드러난다.


영혼의 가족은 여러 생을 걸쳐, 때로 자신의 정신적 유산을 매개로 다시 만나 과거를 청산하고 복수를 펼치기도 해요. 그게 바로 시대를 건너가며 이어지는 위대한 영혼의 왈츠죠.”


이 말을 통해 제목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여러 생을 거치면서 인연이 반복되고 서로 얽히는 소설의 구조 자체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답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도 곳곳에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다. 명상 중 손동작을 뜻하는 무드라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엄지로 검지, 중지, 약지, 소지 끝을 차례로 살짝 누르면서 , , , 라고 말하는데, 이는 각각 태어나다, 살다, 죽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나의 손짓 안에 삶과 죽음, 환생의 순환이 압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쾌락의 정원을 두고 진행되는 강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있는 이 명화만큼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의 시작을 잘 설명해 주는 도구도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는 말처럼 역대 통치자나 전쟁의 역사를 통해서만 한 시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 한 점을 통해서도 시대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또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뉴스 장면에서는 장관의 자살로 공석이 된 교육부 수장 자리에 인간 후임자가 아닌 최신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투입하겠다는 대통령의 발표가 등장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하는 미래에 대한 은근한 경고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신화와 종교, 미술사, 신경과학, 인공지능과 같은 근미래 기술까지 폭넓은 소재가 한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다만 방대한 설정과 높은 사유의 밀도 때문에 호흡이 길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었다. 전생과 전생 사이를 오가는 구성이다 보니 시대와 인물이 자주 바뀌고, 각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이름과 배경 지식을 따라가는 데 어느 정도 집중력이 필요했다. 역사와 철학, SF적 상상력이 강하게 결합된 만큼 인물 개개인의 감정보다는 개념과 메시지가 더 크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었다. 특히 지식을 설명하는 장면이 이어질 때는 소설이라기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방대한 설정 가운데에는 조금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베르베르 특유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혼의 왈츠는 결국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자유 의지가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통해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소설이었다. 유전 25%, 카르마 25%, 자유 의지 50%라는 공식은 운명과 선택 사이에서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외제니가 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며 발견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과거가 아니라 인류가 축적해 온 기억과 지식이었다.


무엇보다 책과 도서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작품의 메시지가 오래 남았다. 수많은 문명이 사라지는 동안 인간이 남긴 기록과 지식 역시 반복해서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지식을 지키는 사람들은 매번 그것을 다시 이어 왔다. 결국 문명을 지키는 것은 거대한 힘을 가진 누군가가 아니라, 기록하고 기억하고 공유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영혼의 왈츠는 인류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 묻는 소설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답게 이야기 속에 역사와 종교, 철학, 과학과 미래 기술을 한꺼번에 담아낸 만큼 모든 설정이 완벽하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만큼은 분명했다. 이미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운명 앞에서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 선택의 절반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은 개인의 삶을 넘어 인류의 미래까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왈츠는 바로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