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코디언
천명관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이후 무려 10년 만에 천명관 작가가 새로운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제목은 아코디언. 오래 기다렸던 신작인 만큼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컸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예상보다 훨씬 비정하면서도 오래 마음을 붙드는 소설이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서울을 배경으로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밀려난 앵벌이 아이들의 생존기를 그리는데, 읽는 내내 작가가 시대를 얼마나 치밀하게 복원하려 애썼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단순히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전후 서울의 공기와 냄새, 거리의 소음까지 생생하게 되살려낸 작품이었다.

 

소설은 첫 장면부터 독자를 차가운 현실 한가운데로 끌어들인다.

 

"버스 정류장엔 찌그러진 깡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소년이 죽은 개처럼 엎드려 있었다. 하늘엔 회색 구름이 짙게 드리웠고 바람이 찢긴 가루눈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6)

 

첫 문장만으로도 이 소설이 어떤 온도로 흘러갈지 직감하게 된다. 낭만도 미화도 없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버텨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내던진다. 그 소년이 바로 주인공 동이다. 피란길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동이는 '양 목사'가 운영하는 앵벌이 조직으로 흘러 들어간다. 종교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착취와 폭력은 초반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오줌이 마려우면 그 자리에서 싸도 좋고 배가 고프면 눈을 뭉쳐서 먹어도 좋아. 하지만 도망갈 생각은 꿈속에서라도 하지 마라. 우린 항상 널 지켜보고 있으니까." (9)

 

이 한마디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허락된 세계가 얼마나 잔혹한지 충분히 전달된다. 이어지는 호밀죽 한 그릇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풍경은 그 시대의 빈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전환점은 제목이기도 한 아코디언이 동이의 손에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낡은 악기 하나는 구걸을 거리 공연으로 바꾸고, 동이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하지만 천명관은 여기서 흔히 기대할 법한 성장 서사나 기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길바닥의 앵벌이가 하루아침에 미군 클럽의 악사가 된다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일까?" (156)

 

동이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조차 믿지 못한다. 그만큼 밑바닥의 삶은 사람의 가능성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후의 장면이다.

 

"다만 아코디언을 치는 게 더 이상 흥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지루하고 고단한 노동일 뿐이었다." (157)


음악은 아이들을 단숨에 구원하는 마법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노동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 냉정한 시선이야말로 이 작품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동이 곁에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맑은 목소리를 가진 연이, 비상한 기억력과 판단력을 지닌 거북이, 능청스러운 미키, 그리고 조직을 탈출해 소매치기가 된 깜상 같은 아이들이 함께한다. 모두 결핍을 안고 살아가지만 누구도 단순한 피해자로 그려지지 않는다. 저마다 살아남기 위한 방식을 찾아가는 존재들이다.

 

특히 깜상을 바라보는 동이의 시선이 오래 남았다.

 

"깜상은 앵벌이 조직을 탈출해 자신의 인생처럼 텅 비어 있던 소매 안에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 (79)

 

비록 고무로 만든 가짜 팔이라도,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 이 작품에서 자유란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 그런 불완전한 선택조차 가능해지는 순간을 의미하는 듯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동이가 글을 배우는 과정이다.

 

"동이는 간판을 읽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은 문자의 힘이었다." (80)


폭력과 굶주림 속에서도 세상을 조금씩 읽어내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은 작품 속에서 드물게 만나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고래에서 보여준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서사와 달리 아코디언은 철저히 리얼리즘을 선택한다. 전차가 오가는 거리, 미군 클럽, 상이군인, 실업자가 넘쳐나는 서울의 풍경은 마치 실제 기록을 읽는 듯 생생하다.

 

"젊은 상이군인 한 명이 달리는 전차에 뛰어든 것은 온종일 비가 내리는 어느 저녁 무렵이었다." (55)

 

동이에게 동전을 건네던 상이군인의 마지막은 이 소설 전체가 얼마나 냉혹한 현실을 응시하는지 보여준다. 값싼 위로나 감상은 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코디언이 절망만을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니다. 작품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럭키 서울', '목포의 눈물', '베사메 무초' 같은 노래들은 단순한 시대적 장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붙드는 마지막 온기처럼 느껴졌다.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누구의 동정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삶을 연주하는 사람이 된다.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 올리버 트위스트가 떠올랐다. 착취와 폭력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도 아이들은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연대가 있었기에 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다. 특히 후반부의 문장들은 이 작품이 끝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길 위에서 긴 겨울을 보낸 앵벌이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혹독한 추위도, 아무리 끔찍한 고통도 언젠간 모두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229)

 

하지만 곧이어 새로운 시련이 찾아온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희망을 낙관으로 포장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서로에게 말한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나도 몰라. 하지만 우린 또 살아서 여기를 걸어 나가게 될 거야." (244)

 

결국 아코디언은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살리는 소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현실은 차갑고 세상은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했지만, 그 속에서도 아름다운 화음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동이와 아이들은 끝내 증명해 보인다.

 

읽는 동안 마음이 결코 편한 소설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오래도록 작품 속 아이들의 얼굴과 아코디언 선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쟁 이후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복원해낸 소설은 흔치 않다. 그래서 아코디언은 단순한 시대소설을 넘어,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않는 생의 의지를 들려주는 한 편의 긴 연주처럼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