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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한국사 - 일생에 한번은 만나야 할 역사 인물 30
신동욱 지음 / 포르체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인 이상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은 어른이 되고 40대가 된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렸다." (213쪽)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했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중심을 잡는 나이. 하지만 현실의 마흔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직장에서의 위기, 가족과의 관계, 노후에 대한 불안, 그리고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오히려 가장 많이 흔들리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신동욱의 『마흔에 읽은 한국사』는 바로 그 흔들리는 시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역사 교양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공부한다’는 느낌보다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다. 역사 속 인물들의 선택과 실수를 통해 결국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연표나 사건 중심의 역사서가 아니다. 조선 시대의 왕과 신하, 선비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태도와 선택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정인지의 이야기였다.
"신숙주는 잘 마시면서도 마시지 않는데, 나는 그러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70쪽)
자신의 절제하지 못한 행동으로 신뢰를 잃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자기 인식’과 ‘자제력’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마흔이 넘어서도 실수는 계속된다. 다만 그 무게와 파장이 달라질 뿐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는 태도다.
"실수를 인정한다는 건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과 같다." (213쪽)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처럼 오래 남는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둘러싼 무오사화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글 한 편이 원래 의도를 넘어 큰 파장을 낳았던 사례는, SNS는커녕 통신망도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 시대에도 있었다." (83쪽)
수백 년 전의 사건이지만, 오늘날 SNS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무심코 쓴 글 하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시대는 달라도 인간의 소통 방식과 그 위험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책은 ‘신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나 자신의 선택을 믿는 것과 같다." (179쪽)
공민왕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준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기준으로 신뢰를 판단하지만, 이 책은 그 기준을 ‘나의 선택’으로 옮긴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조차, 그 선택을 한 주체로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가장 짧지만 강하게 남은 문장도 있다.
"자존심은 남과 비교해 자신을 높이는 것이고, 자존감은 그런 비교 없이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87쪽)
서얼출신으로 판서의 자리에 오르는 반석평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이 차이는 단순하지만 깊다. 비교 속에서 유지되는 자존심과, 비교 없이도 유지되는 자존감. 역사 속 인물들의 삶을 통해 그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역사를 왜 읽는가.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의 고민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 앞에서의 선택, 관계 속에서의 신뢰, 실수 이후의 태도 등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역사를 읽는 일’은 결국 나를 읽는 일이다.
마흔이라는 나이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누구에게나 의미 있게 다가올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