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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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다. 우리는 자연을 설계하려 든다.” 이 한 문장이 이 소설을 가장 잘 요약해주는 문장이라 느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키메라의 땅은 인간이 만든 신의 실험실, 혹은 진화의 또 다른 분기를 그려낸 장대한 서사다. 파리 자연사 박물관의 지하에서 시작된 한 과학자의 실험은 결국 인류의 종말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진다.씨앗뿌리줄기가지열매로 구성된 여섯 개의 장은 마치 한 생명의 성장과 순환을 닮았다.


주인공 알리스 카메러는 변신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과학자다.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고 다른 종을 지배한다고 믿는 인류의 오만에 회의하며, 그녀는 인간과 동물의 DNA를 결합한 새로운 존재를 만든다.


하늘을 나는 인간 에어리얼’, ‘땅을 파는 디거’, ‘바다를 헤엄치는 노틱이 세 혼종은 인류 이후의 새로운 가능성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창조의 금단선을 넘어선 실험이기도 하다.


알리스가 이 실험을 통해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진화는 자연이 하는가,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과학이 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가라는 오래된 윤리적 물음을 다시 꺼내놓는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에서 알리스와 그녀의 동료 시몽은 지하 생존자 공동체 뉴 이비사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세 혼종과 그녀의 딸 오펠리가 태어나고, 인간과 혼종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생존의 본능과 종족 간의 차이는 다시 갈등을 낳는다. 어른들이 만들어온 종교적 대립과 폭력은 다시 아이들에게 되풀이된다. 결국 혼종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다.

소설의 중반부는 디스토피아적인 묘사 속에서도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과학으로 설계된 세계조차 결국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성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베르베르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드러낸다.


시간이 흐르고, 세 종족은 각자의 문화를 형성한다. 알리스는 그들을 관찰하며 스스로를 창조자로 자처하지만, 세 종족의 분열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전쟁이 일어나고, 알리스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불의 원소샐러맨더 혼종 악셀은 새로운 희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변이의 시작일 뿐이다.


불꽃을 품은 작은 불빛이.”


그녀가 악셀을 창조하면서 그렇게 말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진화의 희망이 아니라 자연을 거스른 인간의 집착처럼 들린다.


마지막 장 열매에서 알리스는 80세의 노인이 된다. 그녀가 만든 세상은 여전히 갈등 속에 있고, 혼종들은 인간을 가두며 자신들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키메라의 땅은 단순히 SF적 상상력을 넘어, “진화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라마르크의 변이론이 교차하며, 인간이 창조된 존재에서 창조하는 존재로 넘어갈 때 생기는 윤리적 혼란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짜 의도일 것이다. 인류의 오만, 과학의 윤리, 생명의 순환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생명의 사슬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자신이 정점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키메라의 땅은 그 믿음이 얼마나 위태로운 착각인지 천천히 증명해간다.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이 혼종들을 창조한 건 잘한 일이야.”


알리스의 마지막 독백은 과학자의 확신이라기보다, 인간의 자기합리화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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