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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5년 6월
평점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 책 제목만 보아도 묘한 이질감이 먼저 다가온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연을 경험했을 때 이불 속에서 한없이 웅크리고 눈물을 삼키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들고, 아침이 오면 또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무거운 마음에 눌려 일어나기도 힘든 게 보통이다. 그런데 백영옥 작가는 그 고통스러운 실연의 시간을 ‘아침 일곱 시 조찬 모임’이라는 낯선 풍경 속에 담아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실연과 조찬이라는 단어의 조합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이 모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각자의 상처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작은 의식 같은 것임을 알게 된다.
소설 속 배경은 SNS를 통해 알려진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 모임’이다. 모임은 단순한 아침 식사 자리가 아니다. 함께하는 조찬, 영화 상영, 실연의 기념품 교환 이렇게 세 가지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가장 상징적이고 독특한 것은 ‘실연의 기념품 교환’이다. 실연의 흔적은 늘 애매한 위치에 놓인다. 버리기에는 추억이 너무 선명하고, 간직하기에는 상처가 여전히 아프다. 그래서인지 기념품을 가지고 오는 순간, 그것은 곧 각자의 고통을 정리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소설의 주인공인 항공사 승무원 윤사강과 컨설팅 회사 직원 이지훈은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난다. 우연히 서로의 기념품인 로모카메라와 책을 집어 들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작은 우연은 단순한 교환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에 닿는 첫 순간이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실연’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두고도 인물들이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가 극명히 다르다는 점이다.
윤사강은 실연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여긴다. “치유도, 용서도 결국 자기 몫”이라는 태도 속에는 체념과 동시에 단단한 자립심이 엿보인다. 그는 타인의 위로에 쉽게 기대지 않으려 한다.
반면 이지훈은 연애를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정의한다. 사랑은 우연히 찾아오는 환상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치열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의 태도는 냉철하지만 동시에 진지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가 안고 있던 실연의 무게를 조금씩 내려놓는다. 상처를 드러내고 들어주는 과정에서,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
이야기 중반부에 등장하는 또 한 명의 인물 정미도는 조찬 모임의 분위기를 뒤흔든다. 그녀는 남의 슬픔을 보며 위로받는다는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누군가의 아픔은 때로 타인의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자기중심적 욕망이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정미도의 존재는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단순히 함께 울고, 함께 치유되는 따뜻한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인간 관계의 이중성과 솔직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 시 조찬모임』에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문장들이다.
“인간은 슬픈 쪽으로만 평등하다. 어쩌면 행복한 쪽으로는 늘 불평등했다.”
이 문장은 실연의 본질을 간명하게 드러낸다. 행복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그 크기와 모양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불행과 상실은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또 잔인하게 찾아오는 것이 바로 실연이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구절은 미도의 대사다.
“사람은 태어나서 수도 없이 많은 오답을 써. 실연은 살면서 쓰게 되는 대표적인 오답인 거야. 오답이 대수야? 오답은 그냥 고치면 되는 거야!”
실연은 잘못된 선택이자 아픈 기억일 수 있지만, 결국 그것은 ‘고칠 수 있는 오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독자에게 강한 위로를 건넨다.
소설은 실연을 둘러싼 인간의 다양한 태도와 본성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누군가는 아픔을 회피하고, 누군가는 집요하게 파헤치며, 또 누군가는 타인의 불행을 위안 삼는다. 그 모습들은 때로 불편하지만, 우리 자신의 그림자 같아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실연을 경험했기에 다음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진부할 수 있지만, 작가는 이를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낸다. 실연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삶 속에서 수없이 쓰게 되는 오답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은 많은 위로가 된다.
실연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 속 문장들이 가슴을 아프게 찌르면서도 동시에 위로를 줄 것이고,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랑과 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사랑은 질문이고, 실연은 그 질문에 대한 오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오답을 고쳐가며 결국 자신만의 정답에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