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독한 용의자
찬호께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오래된 아파트인 단칭맨션에서 한 시신이 발견된다. 숯불을 피워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40대의 남성으로 타살의 혐의는 보이지 않는다. 사망자는 41세의 셰바이천으로 그의 어머니 셰메이펑에 따르면 20년 동안 화장실이 딸린 그의 방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이다. 단순 자살 사건으로 종결될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은 경찰의 그의 옷장을 열어본 순간 급변한다. 옷장 안에는 토막 난 시신이 보관된 유리병이 발견된 것이다. 유리병은 총 25개로 남자 시신으로 보이는 14개의 병과 여자 시신으로 보이는 11개의 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 사건은 토막 난 시신을 보관한 타살 흔적이 없는 방주인의 사건이 홍콩섬 총구(總區) 강력한 제2B팀에 배정된다. 찬호께이의 소설 『고독한 용의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 『고독한 용의자』는 사회현상을 반영한 범죄추리소설이라고 썼다. 전작인 『망내인』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환상성을 지닌 이야기보다 사회현상을 반영한 이야기가 좀 더 저자의 색에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세상에서 상처를 받고 방안으로 숨어든 은둔형 외톨이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사회현상을 어느정도 반영한 것은 아닐까한 생각과 함께...
『고독한 용의자』는 3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다. 쉬유이 경장을 중심으로 사건을 수사하는 일반적인 시점과 셰바이천이 살아온 과거를 그리고 있는 유서 ‘망자의 고백’, 마지막으로 은둔형 외톨이 주인공 이바이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소녀 L과의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 《(제목 미정)》 발췌’이다. 당연하게도 두 이야기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점차 사건을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반면 소설에서 수사를 하는 쉬유이 만큼 사건에 중요한 인물이 한 명있는데 바로 칸즈위안이다. 그는 셰바이천과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로 그의 유서인 ‘망자의 고백’에 많이 언급이 된다. 그리고 셰바이천이 방에는 무명지 작가의 <살인 예술>이란 책이 자살하기 직전에 읽은 것처럼 놓여 있어 경찰은 셰바이천이 소설을 모방해 살인을 일으켰다는 추리를 하는데 그 무명지란 작가가 바로 칸즈위안으로 밝혀진 것이다. 경찰은 당연히 그를 의심하고 그를 밀착 감시를 하지만 칸즈위안은 줄곧 셰바이천이 살해당한 것이라며 그의 외삼촌인 셰자오후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어느날 칸즈위안을 하루에만 여성을 3~4명씩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이상한 점은 만나는 여성마다 그와 가까워 보인다는 점이다. 그를 따라 다닌 경찰은 자연스럽게 유명 작가인 그가 연인을 만나는 것으로 여기지만 의문은 더해간다. 그러다 문득 경찰은 칸즈위안인 만난 여성들이 ‘렌털 애인’임을 눈치 챈다. 그리고 그가 만난 한 여성이 표본병 속의 여성의 외모와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경찰로서는 당연히 칸즈위안이 다음 희생자를 물색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심증만이 있고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은 그 여성을 설득해 칸즈위안과의 다음 만남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여성은 칸즈위안에게서도 경찰에게 들은 말을 똑같이 듣는다. 토막 살인자가 그녀를 노리고 있으니 그와 만나게 되면 정보를 캐내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 칸즈위안과 경찰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소설의 초반에는 셰바이천의 과거가 드러나는 ‘망자의 고백’의 내용 때문에 범인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심하게 괴롭힘을 당하던 셰바이천에게는 칸즈위안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의 영향으로 토막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범죄소설을 많이 읽은 셰바이천은 숨겨진 폭력성과 잔인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망자의 고백의 시작부터다 이렇다.
인생이란, 개똥이다. 사람의 운명은 태어나는 순간 모든 게 결정된다. 제아무리 발버둥 치고 저항해도 운명의 신이 정해놓은 길에서 도망칠 수 없다. (64쪽)
그리고 칸즈위안이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고 말하는 제목 미정이 소설이야기는 처음보다 후반부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책의 뒤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용의자는 단 한 명! 하지만 그는 방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표본이 된 시신은 누구인가? 시신은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갔는가?
방 밖에 나간 적이 없는 그 용의자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 셰바이천이다.
그렇다면 범인의 사망으로 종결되어야 할 사건이지만 표본이 된 시신을 찾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소설을 다 읽고 생각을 해보면 그 시신과 집 안으로 들어간 과정이 조금 억지스럽게도 했다. 그것은 마지막에 밝혀지는 반전과 진상을 위한 과정인 것 같다. 소설의 초반에 이런 말이 있다.
홍콩이라는 압력솥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정신병을 안고 있다. 그러다가 압력을 못 이기고 폭발해 머리에서 나사가 빠져버리면 잔혹한 범행을 저지르는데, 이 모든 건 주사위를 던지듯 운에 맡길 뿐이다. (52쪽)
이 문장에서 ‘홍콩’이라는 지명 대신 어느 지명이 들어가도 자연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