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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수록 선명해진다 - 내 안의 답을 찾아 종이 위로 꺼내는 탐험하는 글쓰기의 힘
앨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월
평점 :
어떤 일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요령과 방법이 생기기 마련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보면 자신만의 취향이 생긴다. 그 취향은 장르가 될 수 있고, 작가도 될 수 있으며 책이 다루는 어떤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긴 하지만 나에게도 그러한 취향이 있는데, 오랫동안 눈을 끄는 주제는 바로 글쓰기이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을 글로 남겨보려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조금 더 잘 해보려고 찾는 것이 글쓰기 책인 것을 보면 일종의 순환 같은 것 같다. 그럼에도 글을 잘 쓰는 팁을 하나라도 얻으려 꾸준히 찾아보곤 한다. 앨리슨 존스의 『쓸수록 선명해진다』도 글쓰기 팁을 배우기 위해 고른 책이다.
『쓸수록 선명해진다』의 원제는 ‘Exploratory Writing’이다. 책의 본문에도 자주 언급이 되지만 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읽게 될 ‘추천의 글’에서부터 언급이 된다. 바로 ‘탐험쓰기’이다. 여기까지만 밝혀도 얼추 이 책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같다. 맞다. 이 책은 글쓰기 스킬이 아니라 자기계발의 도구로 글쓰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총 3부에 걸쳐 다양하게 알려주긴 하지만 저자가 언급하는 ‘탐험쓰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아무런 규칙도 방해도 없이 6분 동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쓰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법을 따른다.
① 타이머를 6분으로 맞추고, 떠오르는 생각을 제한 없이 써내려간다.
② 문법, 맞춤법, 글의 완성도를 신경 쓰지 않는다.
③ 주제나 목적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적는다.
④ 글을 다 쓴 후, 자신이 쓴 내용을 읽으며 새로운 발견이나 해결책을 찾아본다.
⑤ 꾸준히 반복하면 글쓰기의 힘과 자기 이해가 깊어진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기위한 방법으로 글을 쓴다는 점이다. 대게 글이란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최종적인 형태이기에 생각이 정리된 뒤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나 저자는 쓰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며 글을 써야 생각이 정리된다고 말한다. 일종의 초안을 깊은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끊임없이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쓸수록 선명해진다』에서 ‘쓰기’만큼 자주 언급되는 단어로는 ‘마법’이 있다. 해리 포터의 친구들에게 고급 마법을 가르치는 ‘필요의 방’을 언급한다. 그들에게 마법지팡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종이와 펜이 있다며 탐험쓰기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마법에 필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효과가 마법과도 같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내는 ‘마법’보다는 자신에게 내재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마중물’이 탐험쓰기에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요즘 민생쿠폰과 관련하여 자주 뉴스에서 언급이 되는 단어인 마중물이 맞다. 마중물은 펌프 내부의 공기를 제거하고 물 흐름을 유도해 펌프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해 펌프질을 할 때 붓는 물을 의미한다. 어릴 때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데 물을 퍼내기 위해 물을 붓는 것이 신기해 펌프질을 하는 어른에게 왜 물을 붓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시 투박한 경상도 삼촌은 ‘에아(Air)를 빼내야 한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을 해보면 그 삼촌도 자세히는 몰랐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제는 실제의 뜻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마중물이 탐험쓰기의 가장 큰 효과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시쳇말로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각이 나는 대로 쓰는 탐험쓰기이기에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좀 더 생생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6분 동안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까지는 좋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막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무엇을 쓰냐이다. 글에서도 첫 문장이 어렵듯이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단서가 있다면 탐험쓰기가 좀 더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저자도 한 모양이다. 무엇이든 쓰면 된다고 했지만 글쓰기의 허들을 조금 낮춰주기 위해 온라인 모임에서 테스트를 거친 ‘일단 첫마디’를 책의 후반부에 소개한다. 그 중 몇 가지를 옮기면 이렇다.
∙오늘 내게 활기를 불어넣어 중 것은…
∙이번 주를 되돌아보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 딱 1퍼센트의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방법은…
끝으로 ‘탐험쓰기’라는 단어 때문에 어려워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6분 동안 아무것이나 쓰는 것이니까. 숏츠와 릴스를 엄지손가락으로 하나씩 올리며 쓰는 시간에 비하면 6분은 금방 지나가니까. 심지어 글자가 아니라 두들링에 가까운 이상한 그림을 그려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점도 큰 장점이다. 그러니까 뭐라도 한 번 써보는 것이 어떨까? 자신도 몰랐던 속에 숨겨진 어떤 것을 끄집어 낼 수 있는 행운이 찾아 올 수도 있으니까. 글쓰기 스킬을 배우려 집은 책에서 뜻하지 않은 자기계발 스킬을 하나 배운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