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에르난 디아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래스카의 얼음판이 떠도는 좁은 해역으로 배를 몰아 그곳에서 갇혀버린 임패커블호의 승무원들은 어느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호칸 쇠데르스트룀으로 스웨덴에서 이주해 온 인물이었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스웨덴인을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호칸이 활약하는 때는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간의 다툼이 치열하고 불법 금광 채굴이 활발한 때였다. 에르난 디아즈의 소설 먼 곳에서의 주인공 호칸과 그를 둘러싼 상황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고립된 그들이 만난 호칸은 인간성을 유지하는 선에서 가능한 최대의 몸집을 가지고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옷차림만으로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생가죽 레깅스에 닮아빠진 블라우스,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모직 천 몇 겹을 걸치고, 그 위에 스라소니와 코요테, 비버, , 카리부, 뱀 여우, 프레리도그, 긴코너구리, 퓨마, 그 외에 알 수 없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코트를 입고 있었다. (15쪽)

 

이윽고 호칸 자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호칸은 스웨덴의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형 리누스와 함께 아메리카로 가는 배에 오른다. 뉴욕을 목적지로 하지만 두 사람은 포츠머스에 잠시 내리고 그곳에서 호칸은 형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때부터 호칸은 뉴욕으로 가서 형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하지만 호칸이 탄 배는 샌프란시스코에 당도한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한 채로 동부 뉴욕으로 향하는 여정이 이어진다.

 

걸어서 미 대륙 평원을 횡단할 계획을 세우는 호칸은 여정도중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사건에 휘말린다. 금광을 찾아 건너온 아일랜드인 가족들과 함께 움직이며 짐꾼노릇을 하고, 이름 모를 여인이 이끄는 단체에 납치를 당하기도 한다. 그곳을 탈출한 뒤에 로리머라는 박물학자를 만나 의술을 배운다. 뿐만 아니라 짧은 머리를 가진 인디언도 만나고 이주를 하는 행렬을 만나 동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호칸은 자신의 일행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은 살인을 하고 영웅과 현상수배범이라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소설 먼 곳에서 속에 진하게 녹아있는 두 가지는 생존과 외로움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인생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땅에 홀로 남겨진 호칸에게는 뉴욕으로 가 형을 만나려는 목표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에게는 호의를 가진 이들도 접근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심지어 어느 보안관은 법집행이라는 명목으로 호칸을 잡아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한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줄기 희망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에 호칸도 그에게 닥친 수많은 적의 속에 몇몇의 호의를 가진 인물이 있어 살아갈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박물학자 로리머가 있었다. 인생이라는 여정을 단순하게 말하면 생존이다. 일단 살아있어야 뭐든 할 것이니 말이다. 그 여정 속에서는 호칸의 경우처럼 많은 이들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호의를 가진 이들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호칸과 같이 삶의 목표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가며 전진할 수 있는 것도 인생인 것 같다.

 

이러한 호칸의 여정 곳곳에는 외로움과 고독이 짙게 깔려있다. 사막과 평원과 협곡은 끝없이 광활하고 평평하며 언제나 똑같은 모습을 지만 평원과 사막이라는 배경은 이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호칸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이미 황폐한 땅에 새로운 황량함이 한 겹 더 내려앉았다. 점점 늘어만 가는 칸으로 이루어진 생기 없는 평원은 여전히 똑같았다. 태양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게, 또 뭉툭하게 찔러오며 만연했다. 그 물러서지 않는 단조로움에서 달라진 것, 납작하고 점점 더 납작해져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깊이를 갖춘 것은 단 하나, 호칸의 외로움뿐이었다. (106쪽)

 

단조롭다는 것은 외로움을 수반하는데 그중에서 유일하게 깊이를 갖춘 것이 외로움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자에서도 각각 외로움과 생존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흰 하늘과 섞여들어가는 흰 평원을 어지럽히는 건 그 구멍, 얼음 위의 깨진 별뿐이었다. 바람도, 생명도, 소리도 없었다. (9쪽)

 

호칸은 자기 발을 그 다음에는 다시 위를 보더니 백색 안으로, 가라앉는 태양을 향해 길을 나섰다. (352쪽)

 

황량한 배경에서 호칸의 삶을 담담히 그리는 소실이기에 어쩌면 소설을 읽으며 침잠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삶을 외롭게 생존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런 기분을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것도 좋은 경험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