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소설을 중간이나 끝부터 읽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니 그 소설의 첫인상을 만드는 것이 그 첫 문장이니까. 그리고 그런 흡인력이 있는 첫 문장을 가진 소설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소설 중에 한 편을 더 해야 할 것 같은 소설을 만났다.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이다. 1장을 시작하는 첫 문장은 따로 있지만 소설의 시작은 여러 개의 조각난 글로 시작한다. 그것이 무척 신비롭게 다가온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시작했지만 재미있게도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빛이 이끄는 곳으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 (351쪽)

 

소설의 줄거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파리에 사는 건축가 뤼미에르 클레제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그는 자신만의 건축을 짓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에 부딪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파리 시내 부동산 시세를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집을 구하려고 남긴 문의에 응답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오래된 고택을 싸게 매입하여 자신의 손으로 고쳐가면서 자신만의 집을 만들려는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위스의 요양병원에 입원중인 집주인 피터 왈처의 초대를 받으면서...

 

그의 초대를 수락한 뤼미에르는 피터의 아버지인 프랑스와 왈처가 수도원으로 쓰이던 건물을 요양병원으로 개조한 왈처요양병원에서 프랑스와 왈처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메시지와 빛이 이끄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아울러 피터에게 남긴 집에서도 그가 남긴 흔적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에게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제는 노인이 되어 버린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메시지를 찾는 것, 어쩌면 집이라는 가족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도 했다. 그렇기에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모든 이들의 기억의 장소는 바로 집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건물을 설계하고 만드는 건축가에게 보이는 집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뤼미에르는 집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수많은 사연이 있듯이 집도 저마다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 사연을 듣고 보고 느끼고 싶다면 천천히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사이에 집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오래된 집은 그만큼 오랜 시간 누군가를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껴줄 사람을……. (90쪽)

 

그리고 그 사연은 그것을 보려고 하는 이에게만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결국 뤼미에르는 아들도 못한 아버지 프랑스와가 남긴 사연을 읽고 부자간의 갈등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의 특성으로 많은 부지가 아파트나 주상복합단지가 되어 가고 있기에 어릴 적 뛰어 놀던 골목길이나 동네는 사라지거나 흔적도 없어진 곳이 많다. 이렇게 보면 뤼미에르가 말하는 사연을 들려줄 집은 우리 곁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마냥 사는 곳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을 하나둘씩 쌓아 올린 공간으로써의 집을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 준 빛이 이끄는 곳으로 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