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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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수업이든 첫 수업의 시작은 대게 선생님의 소개로 시작을 한다. 고등학교에서 맞는 한국사 첫 수업시간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을 그 첫 시작이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칠판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쓴 선생님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아래 자신의 가족의 이름(결혼을 하여 딸이 있는 가정이었기에 이름은 3개가 되었다)을 적고는 말했다. 이렇게 자신은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고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이와 비슷하게 사셨다고... 한국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야기라고... 아마 암기과목으로 분류되어 있는 한국사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꿔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다. 바로 다음 시간부터 선사시대의 토기와 유물의 이름 외워야 했으니 그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지만... 고등학교에서 배운 한국사는 거의 잊어버렸지만 부모님, 조부모님의 이야기가 역사라는 그 이야기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이제는 여기에 하나 더 붙이고 싶다. 역사는 단순히 부모임, 조부모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기억해야하는 우리들의 몫까지라고...


소설 속 인선의 이야기를 듣는 경하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이 누구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녀들의 주위에는 침묵하는 나무들과 눈뿐이다. 역사를 잇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침묵하는 주위와 그것을 덮고 밀봉하려는 시간의 흐름이다. 물론 침묵을 선택한 이들을 비난 할 수는 없다. 누구나 자신의 생채기가 가장 쓰라린 법이고 그들도 자신의 역사를 부지런히 쓰고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밀봉하려는 눈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안타까웠다. 전하지 못 한 이야기가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아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발자국을 금세 덮어버리는 눈과 같이 말이다. 눈을 보고 섬뜩해지는 것은 군대에서 눈을 치울 때 이래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일수록 똑바로 봐야 한다. 아니 아픈 것일수록 더 똑바로 봐야한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경하가 인선을 찾아간 병원에서 절단된 손가락과 발가락 사진을 보았듯이 말이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봐야 한다. 먼저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린 인선은 봉합 수술을 하고 삼주동안 삼분마다 바늘로 찔러 봉합 부위에 계속 피를 흘려야 하는 재활을 받는다. 잘린 손가락을 포기한다면 절단된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로 끝이 날것이지만 신경을 잇기 위해서는 삼분마다 고통스러운 재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사고가 없었던 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고통이 없는 때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라니...


아픈 역사를 잇는 것도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잇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바늘로 찔러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작별하기 위해서는 그 고통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제대로 기억하기 전에는 작별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알고 기억하기 위해 필요한 한 마디를 인선이 경하에게 한다. 그 말을 나도 꼭 하고 싶다.


너한테 지금. …… 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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