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탐정의 창자 ㅣ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월
평점 :
‘이 소설은 픽션이며 실재 인물 및 단체와는 일절 관계없습니다.’
시라이 도모유키의 소설 『명탐정의 창자』는 시작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있다. 소설이기에 픽션임을 알 수 있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소설에는 으레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하니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지만 읽을수록 이 소설에는 이 문장이 꼭 필요해 보였다. 차례에 언급된 야에 사다 사건이나 농약 콜라 사건 등은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옮긴이도 이와 이 소설의 세계관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 서두의 ‘기록’에 기재된 여려 사건은 인물명과 발생 지역, 시대 등이 다소 바뀌기는 했지만, 실제 일본에서 과거에 벌어진 엽기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범장치 않은 범행을 저지른 자들이 현대에 되살아나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이러한 ‘특수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418쪽)
『명탐정의 창자』의 주인공은 하라다 와타루라는 젊은이이다. 와타루는 우라노 큐라는 탐정의 조수인데 어릴 적 경찰관에게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데 우라노 큐라는 탐정이 그를 도와준 인연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간노지라는 사찰에서 화재가 발생해 여섯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이 전신 화상으로 중태에 빠지는 사건의 혐력 요청이 들어온다. 그 사것을 조사하던 중 명탐정으로 활약하는 우라노 큐가 칼에 맞아 사망한다. 맞다. 첫 사건임에도 사건을 해결해야 할 탐정이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저자의 특수 설정이 실행된다.
‘간노지 사건’에서 사찰에 일곱 명이 모인 이유는 기지타니 지방의 청년단인 그들이 1월에 간노지에 열리는 구나의식의 준비와 운영을 그들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구나(驅儺)는 귀신을 지옥으로 보내는 의식으로 예전 흉흉한 사건이 발생한 기지타니 마을에서 악귀를 쫓아내는 액막이 의식으로 중요하게 여긴하고 한다.
하지만 구나(驅儺)의식이 있다면 그 반대의식도 있는 법이다. 바로 소나(召儺) 의식이다. 귀신을 현세로 소환하는 걸 말하는 소나 의식을 행한 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일곱의 인귀가 현세에 강림하게 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인귀는 다음과 같다.
현세에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사후 지옥에 떨어진다. 하지만 엄청난 악행을 저지른 자는 염라대왕에게 뽑혀 귀신으로 일하도록 명령받기도 한다. 이것이 인귀다. (157쪽)
악이 생겼으니 그를 응징하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80년 전에 활약했던 명탐정인 고조 린도가 우라노 큐의 몸을 빌려 되살아난다. 고조 린도는 소나 의식으로 지옥의 인력이 부족해지자 염라대왕과의 거래로 잠시 현세로 돌아왔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명탐정의 창자』의 세계관이 완성된다.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인 줄 알았는데 미스터리 3에 호러 7이 가미된 새로운 소설이었다. 그리고 그로데스크한 표현이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 잔인한 표현에 거부감이 있다면 아마 『명탐정의 창자』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소설을 발견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이 소설은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시대와 이름 등을 변경했다고 하지만 그와 관련한 피해자들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궁금했던 『명탐정의 창자』라는 제목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작중에 옮긴이 주석으로 간략히 설명한 것처럼 ‘창자’의 일본어 발음은 ‘하라와타(하라와타는 하라다 와타루의 별명이다)’입니다. ‘간노지 사건’후반부에 우라노 큐의 배에서 창자가 흘러나오는 모습을 본 스즈무라 아이지가 “명탐정의 창자다”라고 중얼거리는 대사와 작품 마지막에 하라다 와타루가 “탐정 하라와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대사는 사실 같은 구조의 문장입니다. 명탐정 우라노 큐의 조수로서 그가 해결하는 사건을 ‘창자처럼’ 소화해 내기에만 급급하던 히라와타가 드디어 탐정으로 진화했다는 사실을 이중적 의미의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저자의 천재성을 엿 볼 수 있습니다. (4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