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 쇼펜하우어 소품집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박제헌 옮김 / 페이지2(page2)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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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산수로 2+35이다. 이렇듯 수학은 답이 명확하여 5가 아니라 다른 답을 말하면 틀리게 된다. 이런 명확성 때문에 학창시절에는 수학을 다른 과목보다 좋아했었다. 하지만 인간관계사 사회에는 틀린 것보다 나와 다른 것이 더 많다. 내가 보기에는 틀린 것 같지만 상대가 보기에는 맞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와 나는 다른 지점에서 출발을 하고 있어 그것부터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이들이 세상에는 모래알만큼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 나와는 다르다.


세계는 원래 불합리하여 비애로 가득 찬 곳으로서 행복이나 희열도 덧없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세계관이 염세주의이다. 그리고 이 염세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꼽는다. 경제가 불안해지면서 물가가 오르는 등 삶이 팍팍해져서 인지 작년 말부터 쇼펜하우어의 책이 여느 때와 다르게 많이 출판이 되고 많은 이들이 읽고 위로를 받고 있다. 소위 요즘에 핫한 철학자가 바로 쇼펜하우어이다.

 

쇼펜하우어의 저서 소품과 부록중 소품 부분에 해당하며 독일어 원서 제목이 삶의 지혜에 대한 격언이라고 하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는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선택한 책이다. 책은 행복론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견해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생각보다 어려워 많지 않은 양이지만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게다가 저자의 견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냥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의 생각을 조금 엿본 것으로 일단 만족하려고 한다.

 

먼저 저자는 인간의 운명을 차이를 만드는 부분을 세 가지로 나눈다.

 

1. 개인의 본질 :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인격이다. 여기에는 건강, , 아름다움, 기질, 도덕적 특성, 지능과 교육 수준이 포함된다.

2. 개인의 소유물 : 모든 범위 내에서 재산이나 소유물로 인식하는 것들이다.

3. 개인의 외면 : 이 단어 속에는 익히 타인의 생각, 즉 인간이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들어 있다. 개인의 견해에 따라 이것은 명예, 지위, 평판으로 세분된다.


그리고는 개인의 본질, 소유물, 외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한다. 다소 과격한 표현(속물이란 정신적인 욕구가 없는 인간이다.’, ‘타고난 바보를 생각하는 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절대 불가능하다! 바보로 태어난 자는 바보로 죽는 길밖에 없다.’)도 등장하긴 하지만 읽다가 보면 설득력이 있는 문장이었다. 삶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데 이에 필요한 요소로 건강과 고독을 꼽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먼저 건강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를 행복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사물이 아니라 사물을 대하는 우리의 견해다. 이에 관해 에픽테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인간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견해에 따라 움직인다.’ 대체로 행복의 90퍼센트는 건강에 달려 있다. 건강은 모든 향락의 원천이다. 반면에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그 어떤 외부의 자산도 누리지 못한다. 정신적 특성, 심성, 기질에 있는 주관적 자산도 병약함 탓에 침체하여 쇠약해진다.

 

저자가 인용한 에픽테토스의 말을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행불행을 만드는 것이 사물에 대하는 우리의 견해라는 부분에 공감이 갔다. 물론 건강해야지 자신의 자산을 누린다는 점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다음으로 고독에 대한 부분이다.

 

마음의 참되고 깊은 평화와 완벽한 내면의 평정은 이 세상에서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자산이다. 이 자산은 고독에서만 찾을 수 있고 철저한 은둔을 통해서만 변하지 않는 정서를 가질 수 있다. 이때 자아가 위대하고 풍요로운 인간이라면 그는 불행한 세상에서 자기가 찾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를 즐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인간이 우정, 사랑, 결혼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지만, 결국 완전히 정직하게 대하는 상대는 자기 자신뿐이다.

 

고독에 대하여는 건강처럼 직접적인 요소라고 하지는 않지만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마음의 평화와 내면의 평정은 고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이 있으면 즐겁지만 혼자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에서도 언급되는 내용인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50년이 넘은 1851년에 출판된 저서이기에 몇 가지 견해는 지금의 정서와 맞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그러했다. 다음은 돈에 대한 저자의 견해이다.

 

다른 재화는 오직 소망 하나에 욕구 하나만을 채울 수 있다. 음식은 배고픈 자에게, 와인은 건강한 자에게, 약은 환자에게, 모피는 겨울에, 여자는 젊은 남자에게만 좋다. 이것들은 모두 특정한 목적을 위한 것이다. 오로지 돈만이 절대적으로 좋다. ‘돈은 구체적인 욕구하나가 아니라 욕구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재화와는 달리 돈은 욕구 전반에 걸쳐 있다는 견해는 탁월해 보이지만 여자는 젊은 남자에게만 좋다는 말이 턱하니 걸린다. 그리고 여성보다 남성이 본래부터 육체적이고, 정신적 능력이 우세하는 문장도 발견할 수 있다. 여성의 인권이 미미한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주장일지 모르나 지금은 성별이 아닌 사람의 차이라는 인식이 더 크니 걸러 읽으면 좋을 듯 했다.

 

그럼에도 대화할 때 아무리 우호적인 말이라도 지적하는 발언을 삼가야 한다.’라든지 인생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다른 모든 시간의 길이를 측정하는 척도이기 때문에 인생은 길다고도 짧다고도 할 수 없다는 글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문단은 물건의 가치에 대한 문장이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보면 쉽게 이런 생각을 한다. ‘저게 내 것이라면 어떨까?’ 그러고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보다는 종종 이렇게 질문하는 편이 좋다. ‘저게 내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나는 인간이 가진 것을 잃고 난 뒤에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재산, 건강, 친구, 사랑하는 사람, 아내, 자녀, , 개 등 무엇이든 간에 자기가 가진 것을 잃는다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대체로 상실만이 물건의 가치를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다거나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에 상실만이 물건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장밋빛의 인생을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잿빛인 경우가 많다. 희망은 물론 좋은 것이긴 하지만 마냥 밝기만 하는 헛된 희망보다는 때로는 냉혹하기까지 한 쇼펜하우어의 말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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