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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평점 :
모두 3부로 이루어진 톨스토이의 『부활』은 제1부에서 카츄샤의 불공정한 재판에 환멸을 느낀 네흘류도프의 의식변화를 그리고 있다면 제2부에서는 그의 실질적인 실천과 카츄사에 대한 구명활동이 그리고 제3부에서는 카츄사의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녀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자 그녀를 따라 나선 네흘류도프가 그곳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소설 『부활』은 1881년 톨스토이가 이후의 저작권을 포기 선언 후 집필된 소설이다. 그러한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네흘류도프는 공작인 귀족으로 큰 토지를 상속받지만 사유재산제도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진다. 카츄사에 대한 상소를 준비함과 동시에 상속받은 토지의 농민들을 살펴보면서 네흘류도프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농민들이 죽어간다. 그들은 이 죽음에 익숙해져버렸다. 아이들의 죽음, 여성들의 과중한 노동, 기아, 특히 노인들의 기아 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농민들은 점차 이런 상태에 빠져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불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농민들에게는 이런 삶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39쪽)
그리고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농민들의 주 수입원인 토지를 지주에게 약탈되었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고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다. 바로 상속받은 광활한 토지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농민에게 토지를 임대하기로 결정한 것인데 농민의 이익을 위해 조합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까지 생각을 한다. 자신은 카츄샤를 따라 시베리아로 갈 결심까지 한 상태였기에 더욱이 쉽게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그는 귀족의 삶에서는 감지조차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 둘 깨닫게 되는데, 카츄샤의 상소를 준비하면서 잘못이 적거나 없는 농민과 평민들이 구금되거나 잡혀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러시아정교회로부터 탄압을 받은 이들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만난 관리와의 대화에서 그는 그러한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작가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네흘류도프는 이 사람들이 체포되고 감금되고 유형 보내지는 것이 이들이 정의를 파괴하거나 불법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저 관료들과 부자들이 민중으로부터 긁어모은 부를 유지하는 데 이들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명확하게 머릿속에 들어왔다. (165쪽)
관료들과 부자들이 민중으로부터 긁어모은 부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므로 체포되고 감금된다는 시대를 초월한 말에서 『부활』의 출판연도를 확인해 보았다. 무려 100년도 전인 1899년에 출판된 소설이지만 현대에서도 그대로 통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 지배층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층을 억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톨스토이는 『부활』을 완성하고 2년 뒤 교회 비판을 이유로 정교회에서 파문을 당한다. 네흘류도프의 통한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교회까지 이어진 것이 문제가 된 듯하다. 곳곳에 교회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도하선에서 기도를 올리지 않던 노인과의 대화가 아닐까한다. 그 노인은 네흘류도프에게 자신이 기도를 올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남을 믿으니까 종교가 발생하는 겁니다. 저도 남을 믿던 때가 있었고 타이가에게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가 있었죠. 벗어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방황했습니다. 구교, 신교,.. 모든 종파는 모드들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모두 눈먼 개처럼 각자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종교는 많아도 영성을 하나입니다 당신 안에도, 제 안에도, 저 삶아 안에도 똑같은 것이 들어 있어요.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자기 안의 영성을 믿으면 결국 모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해야. 그래야 만인이 하나가 됩니다. (355쪽)
황제가 다스리는 재정러시아 시대에 지주들에 의한 토지 약탈의 사유재산제도와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의 비판만으로도 인상적인 소설이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소설을 맺는 방식이었다. 『부활』은 다음으로 끝이 난다.
그날 밤을 기점으로 네흘류도프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의 생활이 새로운 환경에 들어섰기 때문이 아니라 그후로 일어난 모든 일이 그에게는 예전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의 새로운 인생이 어떻게 끝날지는 더 지켜봐야 알 것이다. (398쪽)
밤새 성서를 읽고 깨달음을 얻은 네흘류도프의 행보를 독자들에게 맡긴 것이다. 시베리아에까지 따라 갔지만 카츄샤와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네흘류도프의 앞으로 삶을 소위 열린 결말로 맺으므로 그는 지금껏 다양하게 살아왔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것에 내가 생각한 그의 삶을 하나 더 추가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