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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의 소설
정세랑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8월
평점 :
50m 달리기를 할 때와 1km 달리기를 할 때에는 보폭이나 호흡 등 많은 것이 다르다. 어쩌면 달린다는 것만 공통점이 있을 뿐이고 달리기와 수영만큼이나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읽는 것도 이와 같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앞선 서사와 사건을 곱씹어 가면서 읽게 되는 장편소설과는 달리 단편소설은 단숨에 읽어야 제 맛인 것 같다. 그러면 꼭 되새김질처럼 다시 떠오르는 소설이 생각나게 마련이다.
주로 장편소설을 읽기에 아직 읽은 단편소설을 많지 않지만, 어느 예능에서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단편을 일부만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인 단편은 작가가 한 편을 다 읽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알 수 있다는 말을 이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발견한 정세랑 작가의 미니픽션 『아라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조금 더 들었다.
처음에는 ‘미니픽션’이라는 말이 궁금해서 집어 들게 된 소설이다. 작가가 지난 10여 년간 여러 곳에 발표한 엽편(葉片)소설을 모은 책이다. 소설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말의 일부이다.
원고지 5매에서 50매 사이의 짧은 소설은,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 듯합니다. 저는 좋아하는 쪽에 속합니다. 이렇게 모아보니 10여 년에 걸쳐 각기 다른 지면에 발표했지만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져 신기합니다. 이어지고 닮은 부분을 함께 발견해주셨으면 하고 묶었습니다. 긴 분량의 소설들보다 직설적인 면이 두드러져, 다정한 이야기들은 더 다정하고 신랄한 이야기들은 더 신랄합니다. 부드러운 진입로가 필요 없는 분량이어서 그렇겠지요. 그 완충 없음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213쪽)
그런 완충 없는 이야기가 19편 가운데 시가 2편이 실려 있다. 한 편 한 편 끝맺을 때마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설이 그 작품의 이해를 더 높여주었다. 특히 받침 없는 이름을 찾다가 고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여러 번 쓰게 되었다는 ‘아라’가 자주 나온다. 과감한 주인공에게 자주 붙이는 이름이라고 하는데 각기 다른 ‘아라’이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같은 인물인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말한 이어지고 닮은 부분이 이런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카페인에 민감해져 커피를 점점 못 마시는 몸이 되어버리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A side의 ‘10시, 커피와 우리의 기회’와 출판계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고 하는 B side의 ‘아라의 우산’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단 숨에 읽어가면서도 닮은 듯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이이야기들이 10여 년에 걸쳐 나왔음을 잊을 수 있었다. 이동하는 시간에 웹툰을 자주 봐서 그것을 대체하려 고른 단편 소설이지만 아이러니하게 한 번에 다 읽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정세랑 작가의 글 이렇기에 좋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