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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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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는 최고 수준의 농업량을 자랑하는 곡창지대인 만큼 농장과 들판들이 광활히 펼쳐진 곳이다. 높은 건물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어서, 미국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여유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듯 보인다. 문보영 저자는 이런 아이오와에 한국 시인으로서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발을 딛는다. 30여 개 국가에서 온 작가들과 3개월간 함께하며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이 행사를 위해 낯선 땅에 도달하며 느낀 점들을 자신만의 온도로 풀어나가는 에세이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그녀의 시간들을 곱씹는 그 시간은 어쩐지 '들판'의 광활함을 상상하도록 해 주었다. 한국과 정반대에 있는 어떤 시골 마을에서 발견한 자유를 곁들여서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공통적인 감상은 아이오와에서의 시간들이 저자에게 아주 오래토록 생경하게 남아 있을 것 같단 거였다. 한 사람이 여태껏 살아왔던 곳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곳에서, 정반대의 깨달음과 감상을 얻는 과정이 독자에게도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떠한 공허를 딛고 나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여정은 무슨 콘텐츠가 되었든 응원하고 싶고, 공감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지 않는가. 제각기의 언어와 사연을 가진 작가들과 한 데 모여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순간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 사이에 동료로서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도 든다. 또, 아이오와에 머무르며 그녀가 애정을 두었던 공간들에 동행하는 느낌을 주는 경험은 독서를 더욱이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특히나 3부의 <자바 하우스>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그녀가 일기를 쓰기 위해 꼬박꼬박 방문했던 커피숍이라고 한다. 일상적인 경험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까닭은 아무래도 '관찰력'에 의거한 섬세한 기록들에 있다. 시인의 고뇌로 점철된 일상을 보내는 방식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는 것만 같아서, 온전히 느끼고 싶은 공간과 인물들이었다. 이런 감상을 곱씹으며 펴낸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 마지막 줄에 이런 문장이 써 있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축지법을 쓰며 사람들을 관찰한다'라고. 그녀 특유의 재치와 익살스러움이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의 모든 문장들 전반에 묻어 있어 한 번씩 웃게 된다. 저자가 운전하는 버스에 타 여러 종류의 감정이 적힌 정류장에서 정차하며 한 번씩 음미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생각하게 됐다. 나의 삶도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또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가치관도 변해가며 성장해 가게 될까 하고 말이다. 익숙해진다는 행위만큼 긍정과 부정을 동반하는 건 또 없는 것 같다. 익숙해진다는 건 능숙해진다는 것과 동시에 한 곳에 고여버린다는 뜻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 그 중도를 찾아가기 위해, 익숙하지만 새로운 콘텐츠들이 가끔씩 등장하는 삶을 그려나가기 위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하나의 목표만을 추구해서는 부족한 시대가 와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서 내 삶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지, 다가올 경험과 시간들에서는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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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딜레마 - 당신의 행복과 소비는 어떻게 은밀히 설계되는가?
윤재영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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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dilemma)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


과연 나의 행복, 그리고 소비는 나의 자유의지대로 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은밀하게 설계되어 한 쪽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고 있으면서, 그걸 현명한 선택이라고 프레임 씌우고 있는 건 아닐까. '보여지는 것'의 영향력이 커진 이 시대에서 '서비스'와 그 안의 '디자인'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될 때가 있다. 『디자인 딜레마』는 비단 소비자뿐만 아니라, 직접 서비스와 디자인을 구성하는 생산자 역시도 떠올려볼 법한 딜레마들을 알아보는 책이다. 과연 편의를 위한 과금 유도, 소름 돋을 정도로 나의 취향과 일치하는 맞춤형 콘텐츠 등이 가져오는 딜레마를 말이다.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법한 사회 이슈들도 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놀이동산의 '익스프레스 티켓'과 같은 것들이다. 이처럼 시간 단축이라는 가치를 돈으로 사는 서비스들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과 그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흥미로웠다. 같은 성격의 서비스를 어떻게 설계하고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유한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게 이 책의 본질 같기도 했다. 어떠한 유형의 서비스는 이런 디자인으로 설계되어 있고, 이런 반응을 얻었는데, 저런 부작용이 있다더라.... 하는 걸 습득하면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올바른 시선을 습득하게 되지 않나.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스토리, 게시물, 릴스 등을 스크롤하며 넘기다 보면 중간중간에 나오는 광고들이 있다. 헌데 신기하게도 내가 사려고 했던 물건이거나, 나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한 것들이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 마치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꼭 들어맞는 광고들이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이 영상을 봐야겠다, 하고 앱을 켜면 가장 상단 추천 탭에 그 영상이 뜰 때가 있다. 나의 스마트폰 사용 기록과 방식을 학습하여 추천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광고를 클릭하고, 영상을 보게 된다. 다만 그 뒤에 있는 알고리즘이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개인정보를 빼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으로. 그리고 실제로 그 부분에 문제가 있음을 이 책은 알리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몇 년 전부터 의문점을 제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단순 의심이라기에는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sns 어플리케이션의 동영상 촬영이나 스피커 기능의 권한을 해제해 두어야 한다 등의 괴담들이 퍼져나가곤 했었다. 이처럼, 『디자인 딜레마』는 소비자가 한 번쯤 깊게 고민해 보았고 실제로 겪어도 보았을 현상들을 주제로 선택해 이것이 왜 딜레마적 현상인지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 육아를 돕는 유아 콘텐츠가 아이에게 '현질'을 유도한다면?

  •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 줄 서지 않고 놀이기구를 타도 될까?

  • 챗봇이 사람인 척 말하고 행동해도 될까?

  • 뷰티필터는 왜 마음을 병들게 할까?



이처럼 소비자들의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서비스로부터 생기는 의문점, 그 안의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주제 선정'이 『디자인 딜레마』의 가장 큰 강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그대로 휘둘릴 것인가, 아니면 나의 의지를 첨가하여 휘두르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줄 책이라니. 이심왕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다면 무언가 직관적으로 나를 이해시켜 줄, 많은 것이 남는 책이었으면 하지 않나. 현대를 살아가고, 디지털 플랫폼과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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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뇌 - 더 좋은 삶을 위한 심리 뇌과학
아나이스 루 지음, 뤼시 알브레히트 그림, 이세진 옮김 / 윌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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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뇌를 꺼내 보고 싶다' 등의 굳어진 표현이 어째서 이토록 많은 것인가. 이는 뇌라는 신체기관이 그만큼 인간의 삶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신체 외적인 부분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서도 이런 인간의 뇌가 돌아가는 원리를 활용한 곳이 많지 않은가. 그게 특정 상품의 마케팅이든, 영상 플랫폼의 콘텐츠이든간에. 그렇다는 건 뇌에 지배당하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 역시도 크다는 말이 된다. 충동구매, 도파민 중독 등등.... 정녕 내가 생각하는 대로 뇌가 굴러갈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여기 있다.

책은 뇌의 진화, 그 기원에서부터 출발한다. 뇌는 어떻게 진화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사피엔스의 뇌는 왜 커진 것인지, 뇌가 더 커지면서 어떤 비범한 변화를 맞이했는지 등등.... 뇌과학이라는 다소 진입장벽이 있는 소재의 책일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펼쳐 보니 굉장히 친절한 방식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만화 형식의 일러스트가 이해를 돕고, 이해하기 쉽게 쓰인 텍스트가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뇌가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채택한 주제들이 흥미 유발에 아주 용이했다.

인간은 왜 꿈을 꿀까?
꿈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왜 내가 서는 계산대 줄이 제일 늦게 빠질까?
마술사들이 우리를 속이는 감각의 방식

이처럼 평소에 궁금해했을 법한 물음표들을 주제로 채택함으로써 뇌과학이라는 어려운 주제와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또한, 알면서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걱정과 같은 감정들을 해소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다는 '잡학사전' 같은 형태로 흘러가는 듯했다. 과학 분야의 도서는 읽다 말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친절한 텍스트는 정말 내 삶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끝까지 읽게 됐다. 평소 생각이 많은 것과 후회를 반복하는 것, 그러면서도 같은 행동을 또 하는 것에 대한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런 지침서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럼에도 뇌과학 책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낄 순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책에 쓰인 김대수 카이스트 뇌인지과학과 교수의 추천사처럼 '뇌를 이해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뇌과학 책이지만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의 습득이 주된 목적으로 읽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나의 뇌와 평생을 살 것이라면 어떤 방향성을 추구하는 게 좋을지를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독서에 임한다면 더 큰 귀감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카피라이팅과 추천사 모두 '참신함', '더 나은 내일'을 일관성 있게 강조하고 있다는 건 이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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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좋은 사람 - 누구에게나 하루 한 송이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에이미 메릭 지음, 송예슬 옮김 / 윌북아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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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 그 가운데에 꽃이 있는 경우가 많다. 외가는 뒷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이었고, 할머니는 그 공간을 자신만의 정원으로 활용하셨다. 그 정원에 심기 위한 씨앗이라든지 모종 같은 것을 사기 위해 할머니 손을 잡고 오일장에 갔던 날도, 정원에서 직접 기른 봉숭아로 손톱을 물들인 날도 있었다. 『꽃이 좋은 사람』의 저자가 꽃을 대하는 태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때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누구보다 꽃을 진심으로 대했던 할머니에게는 그 꽃이 하나의 세상이었을 것이고, 어린 손녀에게 그 세상의 즐거움을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았다. 그 정원에 있던 꽃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길을 지나다 비슷한 모양새의 꽃을 마주하면 마음 한켠이 반응한다. 이 부분에서 할머니의 세상을 조금 떼어 받았고, 내가 그걸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꽃을 주고받는다는 건 서로의 세상을 나누어 주고픈 마음에서 오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꽃이 좋은 사람』은 이런 마음에서 출발한 책이다. 길을 가다 멈춰 꽃을 바라보고 향을 느낄 시간조차 없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꽃을 보여 줌으로써 어떠한 새로운 감각을 깨워 주고 싶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저자 에이미 메릭 역시도 바쁘고 딱딱한 도시에서 느꼈던 바쁨을 통해 역설적으로 꽃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척박함은 그녀에게 새로운 흥미, 그 흥미를 통해 업으로 삼고 싶은 순간을 가져다 주었다. 꽃꽂이 방법과 요령을 필두로 꽃 애호가를 위한 공간, 꽃을 통해 바라본 나라와 도시, 꽃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 등을 알려 주는 이 책은 그야말로 꽃에 진심인 사람의 어떠한 결정체 같았다. 어느 플로리스트의 꽃에 대한 가치관과 지나온 시간들을 잡지로 엮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특히 눈이 즐거운 책이었다. 알록달록한 꽃의 실사, 일러스트, 각양각색의 화병 등 제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도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각 자료들이 흥미롭다. 좋은 의미로 꽃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는 기분이었달까. 이런 경험이라면 한 번 더 겪어도 괜찮을 것 같았던 향기로움이었다.

최근에 <유퀴즈 온 더 블럭> 정영선 조경가님 출연 에피소드를 봤다. 84세 현역 조경가로서 에버랜드, 아산병원, 디올 성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등의 조경을 맡아오셨다고. 이중에서 아산병원 조경을 할 때 어떤 걸 신경 썼는지, 그 과정에서 뭘 느꼈는지를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많은 걸 느꼈다. 특히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들로 가득한 조경인데, 자연의 변화와 꽃이 피어나는 걸 보면서 '내년 봄에도 나는 살아서 나가야지' 하는 느낌을 들게끔 구성했다고 한다. 또한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공간도 될 수 있으면 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자연물을 통해 사람의 내면을 돌보는 공간을 설계하는 자의 마음가짐이 말이다. 자연물 앞에서 완연한 쉼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더 의미가 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표지에 쓰인 '누구에게나 하루 한 송이 아름다움이 필요하다'는 한마디 문장처럼, 지나쳐간 나무와 꽃도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어 보는 것 어떨까. 잠시간의 여유로 삶은 세 배로 풍요로워지리라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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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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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감정을 깨닫고 발산하는 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게 사랑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말이다. 사계절 안에는 온도 차이가 있고, 그게 날씨로 나타난다. 이렇듯, 사람의 안에도 온도 차이가 있다. 바로 감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발상을 머금은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뚜렷한 계절감과 그 안에 있는 인간의 희노애락이 대비되고 대조되며 때로는 은유와 비유로 존재하기도 하는 그 순간을 담은 문장들이 인상 깊었다. 이상하리만큼 다정하기도, 그래서 마음을 쿡쿡 찔러대기도 했다. 


​싱그러운 봄과 끈적끈적한 여름 이야기,

쓸쓸한 가을과 고즈넉한 겨울 이야기


싱그러움과 끈적끈적함, 쓸쓸함과 고즈넉함. 계절이 주는 느낌을 담은 표현들이다. 그 표현들과 어울리는 감정의 일대기를 그리는 구조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더 풍부한 감상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어떠한 확신이 들었다. 말하자면 사람의 삶에 있는 희노애락의 순환을 절기로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미워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성장한다. 이 중심에 있는 게 바로 사랑이며 그것이 작가가 내내 강조하고 싶었던 키워드일 것이다. 띠지에 쓰인 카피조차도 ‘사계의 소설가 장은진이 그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특히 신선하게 느껴졌던 건 표제작 <가벼운 점심>이었다. 가출한 지 10년이 지난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그 설정부터가 호기심을 불러오기 딱 좋아 보였다. 거기다가 가출한 이유는 같이 살았던 아내를 진정 사랑하지 않아서였다는 것.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 당장 부부가 갈라서지 않았으며 그래서 비뚤어지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다는 걸 자식의 입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분명 이 가족들의 내부에 끊임없이 문제가 도래했고 일명 콩가루 집안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 집 안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첫째로는 남편이 본인을 사랑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집을 나간 이유도 그게 맞았지만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아내이자 어머니가 있다. 또,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에 당장 집을 떠날 것을 결심할 수 있었을 듯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머물렀던 남편이자 아버지까지. 어찌 보면 망가진 사랑을 향한 합리화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잘잘못을 따지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닌 듯해서 도덕성은 배제하고 읽었다. 


특히 이 작품이 신선하게 다가왔던 건 마지막 페이지에 있다. 그 반전이 말이 안 돼서 놀라웠다기보다는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색안경을 끼고 독서하고 있었구나, 하는 데에서 오는 신선함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는데 왜 그걸 상상하지 못했을까. 이런 깨달음이 시야를 넓혀 주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사랑은 재난처럼 예상치 못한 때에 온다는데, 그 재난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 같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 가운데에 사랑이 있는 것 아닐까. 평생을 해도 제대로 알 수가 없어서 계속 알고 싶게 만들고, 집착하게 되는 것….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라면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가장 건강할 듯이 느껴졌다. <가벼운 점심> 속 아버지가 봄을 싫어했지만 진정한 봄을 만나 자기자신을 찾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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