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내 안의 죄 죽이기 - 개정증보판, 죄의 속성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열망하라
존 오웬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안의 죄 죽이기 - 존 오웬

책 제목에 솔깃하면서도 사실상 ‘죄 죽이기’란 말은 부담되었다. 죄를 죽이는 것은 내가 노력하고 결단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영적 거장은 그런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원제목은 Mortifications of Sin이다. Mortifications이란 단어는 고행, 금욕, 시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존 오웬은 누구를 향헤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나 그분의 성령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그들은 자신들이 주창한 외형적 노력, 육체적 연습, 자기 공로적 행위, 그리고 율법적 의무 등을 마치 죄를 이기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자 방편인양 떠들어댔다(p.49)

존 오웬은 이러한 로마 카톨릭 수도사들의 거친 베옷, 맹세, 고행, 훈련, 수도생활 등에 대해서 하나님은 책망하실 거라고 말한다. 기도, 금식, 철야, 묵상 등과 같은 것들은 샘에서 나오는 물줄기에 불과한 것이나 그들은 이것을 샘과 동일하게 여겼다고 질책한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 뿐 아니라 복음의 빛과 지식을 가진 이들까지 이 방법과 수단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음을 개탄한다. 그를 알고 나니 존 오웬이 왜 ‘죄 죽이기, 죄의 고행’ 등의 제목을 달았는지 알 것 같다. 내가 첫눈에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같이 죄 죽이는 행위, 노력, 방법을 이야기하기보다 그는 죄를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불편했던 ‘죽인다’는 단어를 ‘이긴다, 승리한다’로 고쳐서 읽으니 내게는 훨씬 도움이 되었다.

존 오웬 하면 나는 즉각 ‘육의 생각, 영의 생각’을 떠올린다. 그는 로마서의 이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이 말씀을 글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심주제로 잡고 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13 말씀이다. 죄에 집중하기보다 영의 일을 생각하고 따라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존 오웬은 고약하게도 내 죄, 이 땅을 사는 동안 결코 끊어낼 수 없지만 매순간 이겨야 하는 이 죄를 똑바로 보라고 경고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승리하려면 먼저 내 안의 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라는 것이다.

죄를 이기는 가장 기본적인 필요중분 조건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빼먹지 않고 거듭 강조한다. 모르는 이들처럼 내 열심, 수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후에 죄를 죽일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 9가지를 소개한다. 요약하면 죄를 항상 인식하고 찾아내며 고백하며 거룩함을 사모하며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죄를 숨기려는 것,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이 죄를 죽이는 게 아니라는 것이 새롭게 와 닿았다. 나도 모르게 그게 죄를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싶게 말이다. 존 오웬이 죄 죽이기에 있어 경계하는 두 극단은 역시나 나에게도 종종 발견된다.

한 극단은 굳은 결의로 죄를 이기려는 자세이다. 이것은 결국 율법적인 태도로 남의 흠을 잡고 분노와 시기, 악독과 교만함을 낳는다. 또 다른 극단은 자유함과 은혜라는 핑계로 죄를 죽이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죄를 이기는 삶과 관련해서 진정한 복음적 입장은 이 양극단을 피하는 것이다.(p.38)

이것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내 문제다. 이 중용의 입장이 무엇인지 존 오웬은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결국엔 그의 말대로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를 받은 우리는 마음 속에 주어진 그 은혜를 잘 간직하기 위해 “훈련과 성취”를 계속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비워주시는 분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 안의 죄는 누르면 누를수록 넘쳐나는 쓰레기통 같다. 표지의 일러스트처럼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을 바꾼 31일 기도습관 - 나를 죽이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기도 체험하기 내 인생을 바꾼 31일
이대희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내 인생을 바꾼 31일 기도습관

나를 죽이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기도 체험하기 · 저자 : 이대희

기도에 대한 책은 여러 권 접했으나 이 책은 새로웠다. 기존 책들이 기도의 목적과 이유, 기도하는 법, 응답받는 법,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기도의 능력이나 기도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 풀어 설명했다면 이 책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더 이해하기 쉽게 개요를 짜고 구성을 한 점에서 돋보였다. 구약시대 성막의 모형을 토대로 전체 내용을 구성한 것이다.

성막의 모형을 따라 기도의 뜰, 기도의 성소, 기도의 지성소, 기도의 삶 등 크게 4part으로 나눈 각 장소들을 따라가며 묵상할 때 마치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각 장소를 통과하는 듯한 그림이 느껴졌다. 예배의 거룩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4part 안에 31일 동안 따라갈 수 있는 31개 내용을 담았다. 각 주제에 대해 관련된 말씀을 먼저 보여주고 그 말씀을 붙잡고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실제 기도문의 예를 들어 보여준다. 우리가 묵상이라 부르는 말씀을 붙잡고 생각하는 것을 저자는 기도생각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관련말씀을 기도생각을 통해 주제가 잘 나타나도록 설명하는 구성을 31의 주제 모두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다. 단순한 설명보다는 쉽게 마음에 들어오고 읽히기도 이해하기도 편했다.

그 책을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남김없이 읽은 뒤에 서평을 쓰는데 이 책은 그렇게 다 읽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그날의 분량만큼 31일 동안 천천히 말씀을 음미하고 기도생각을 따라가며 기도실천대로 똑같이 고백하고 싶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도생활이다. 기도방법을 알려는 이유가 응답받기 위해서인 경우가 종종 있다. 저자는 기도는 기도생활이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모든 기도에 관한 책들의 가장 첫 번째 목차가 기도의 목적과 중요성이니 말이다. 이 책의 경우도 1번이다.

기도는 구약의 제사와 같다는 말을 통해 성막과 기도를 함께 떠올려본다. 기도의 뜰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는 곳, 기도의 성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 기도의 지성소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는 곳, 기도의 삶은 종교가 아닌 삶으로 기도를 인식하는 것, 성막의 모형을 기도에 대입시키며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기도임을 다시 깨닫고 그 거룩한 특권과 은혜를 다시 마주 대하게 되었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닌 실제적인 기도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제사장이 성막 뜰에서 성소에 들어가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는 과정처럼 이 책도 그 단계별로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서고 교제하는 습관을 키워주려고 한다. 31일 동안 하루하루 분량만큼의 말씀과 기도를 체험하기 바란다. 성령님과 더욱 친해져서 성령으로 기도하는 체험이 계속되길 바란다. 인생을 바꾸는 습관이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점 -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신앙 습관 길들이기
김병태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관점,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신앙습관 - 김병태

 

정신분석가 칼 메닝거의 말처럼 “사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건에 임하는 우리의 반응과 태도”임이 분명하다. 상황과 사건 속에서 긍정적이고 좋은 반응을 하는 것만이 전부일까? 그것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까. 평안하게 해 줄까. 가치있는 삶의 길로 이끌어 줄까. 관점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은 육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이라는 기본 지식을 알고 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단순한 평안의 길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평안은 거짓평안일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던 게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때도 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영적 분별의 은사를 사모하고 구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의 부제목에서 생각해 보면 이 관점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관점이다. 훈련받고 자라기 전에는 충분히 약하고 지치고 넘어질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는 데 안도감이 든다.

 

책은 보편적인 긍정적인 시선으로의 전환,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배려하는 것 등의 일반적 관계 가치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관점으로 옮겨가고 십자가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십자가를 경험한 이후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긍정적인 시선, 가치관과는 다르다. 내가 힘들게 바꾸는 게 아니라 십자가를 경험하면 인생의 비전과 목적,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가 저절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십자가를 경험하고 선명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 십자가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이 키우기 시작해야 하는 생각의 근육들, 관점들이 Part2부터 시작된다. 그에 따른 부제목만 봐도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빌 게이츠보다 스티브 발머로 살아라, 외모콤플렉스보다 내면의 질서가 깨지지 않았나 돌아보고 영적 콤플렉스를 점검하라. 물질에 있어서 자족하라. 사람의 인정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구하라. 세상적 가치관에 의한 행복 추구보다 정말 가치있는 것에 가치를 두라고 한다. 경건한 삶이다. 세상적 욕심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아갈수록 비워진다고 한다. 하나님만을 주목하는 삶을 살라. 맛보기 신앙이 아니라 푹 잠겨서 영적세계의 깊은 것을 경험해야 신앙생활이 즐겁고 신난다. 기도와 예배에 그분 속에 푹 잠겨라. “대충, 적당히, 나중에, 이번만”이라는 사탄의 유혹에 속지 말자. 억울한 상황 속에서 불평하기보다 찬양을 선택하라.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맏형의 모습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자. 칼을 칼집에 꽂는 게 복음이다.

 

저자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은 매번 자주 들었던 내용들이고 익히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가치관은 바뀌었지만 감정과 행동이 쉽게 따라주지 않는 문제가 있음도 시인한다. 그래서 근육 키우기 훈련이 필요하다고 독자를 달래주기도 한다. 관점도 훈련이라는 것, 평생 계속 그 근육을 단련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 간절히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이해하기 위해, 맞대응하지 않기 위해, 보복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기 위해, 그 기도의 관점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 삶의 관점이다. 성령의 채우심과 이끄심이 있어야만 우리는 세상과 다른 성품의 삶을 살 수 있다.

 

Part3는 미래의 삶에 중점을 둔다. 거시적으로 보라고 충고한다. 미래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에 현재에 집착하며 살지 않는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미리 보고 사는 삶이라 강조한다. 이것이 허풍도 몽상도 긍정적 생각도 아닌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는 삶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예가 책 전반에 퍼져있다.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었던 바울의 모습은 귀감이 되기에 넘칠만큼 충분하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에 투자했고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스도 앞에 서는 날을 준비하며 달려갔다. 성공과 출세, 번영을 형통이라 생각하지 마라. 고난의 깊은 곳에 숨겨진 다른 얼굴을 보라. 바울의 삶은 자족을 배워야 했고 자족을 배웠으며 그 능력을 체험하는 삶이었다. 믿음은 행동이고 실천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건 실천적 영성이다.

 

하나님의 관점 훈련은 상당한 도전이다. 자기를 포기하겠다는 의지적 결단이다. 유익이냐 불이익이냐를 따져서도 안된다. 계산하면 하나님의 관점을 따라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 순종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문제는 하나님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기 싫어하는 우리의 부패한 마음이다(P241). 하나님의 관점을 훈련하기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올인, 다 걸기다(P242). 하나님의 관점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한다(P245). 무의식의 세계가 하나님의 관점을 따를 수 있도록 평소에 의식적으로 집중하는 훈련,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다.

 

신앙적인 관점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영적 분별력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소통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생을 해석하기 전에 내 관점부터 점검하자는 것이다. 사도행전10장의 내용처럼 우리는 내 관점을 고집할 수 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학적 지식이나 내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을 수용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와 순복하는 태도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과 소통하며 언제나 새롭게 깨닫고 언제나 자기 생각을 조정할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오류에 빠져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내렸던 내 결정이 오류일 수도 있겠구나 그럼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베드로처럼 정확하게 말씀을 듣고 싶다. 저자는 방법은 소통이라고 말한다. 기도와 성경을 통한 소통이다.

 

저자는 책의 끝에서 고통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회복력이라고 말한다. 그의 다른 저서 회복 레시피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이 회복의 비결도 관점에 있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인생의 거센 파도도 주님이 다스리신다. 죽음도 책임지시는 주님이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 인간이 느끼는 최고의 행복이라는, 블리스(Bliss)를 꿈꾸며 주님과 동행하며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하나님의 관점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신앙은 당연히 관점의 변화이고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과는 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뻔하고 늘 들어오던 이야기였지만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며 정리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렇게 살기 위해, 즉 관점을 바꾸기 위한 방법과 달라진 관점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진실되게 잘 설명하고 충고하고 권면하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 - 세계사에 숨어 있는 흥미로운 기독교 이야기
유재덕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

 

궁금했던 것, 그리고 그럴 거라고는 전혀 몰랐던 기독교 역사 곳곳에 숨어있을 이야기들이 더 기독교를 잘 이해하게 해 줄 것이라고, 성경이나 신앙에 있어서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산책을 하듯 쉽게 읽을 수 있다니 더욱 환영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역사, 신약의 부분과 중세 근대까지의 역사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져 있었다. 책의 내용이 4부분(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 위험한 기독교 역사, 거꾸로 보는 기독교 역사, 궁금한 기독교 역사)로 나뉘어 있는 것도, 그에 따른 소제목들도 구체적인 내용을 상상하게 하며 흥미를 가지게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넘어선 인격모독에 가까운 당시의 이야기가 마음을 편하지 않게 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혐오사상이나 음악금지, 흑사병 등을 통해 이 과거의 일들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불편했지만 그래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던 1부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교육개혁까지 불러왔다는 것, 소크라테스가 책읽기와 쓰기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기독교 세계관이 중심이었던 중세의 경우, 교회가 권력을 행사하면서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은 2, 위험한 기독교라고 분류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죄악의 시대였다는 점에서 읽어가기가 힘들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황이나 교회의 말로 여겨 자기 이익을 따라 가르치고 행하는 시기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중세의 죄악들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기독교가 탄압받지 않고 국교로 지정해진 뒤 중세의 문화 역시 종교에 의해 찬란하게 꽃피웠다 생각했으나, 이면에는 그보다 훨씬 악한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어지고 있었다니 오류라기보다는 사사기의 연장이고 치명적인 죄라고 생각된다.

 

사형이나 질병, 금주, 안식일 등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신앙 가치관의 충돌(지금은 청교도들의 금욕주의적 신앙에 영향을 미친, 사실은 신앙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의도가 주였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였다. 가장 많이 놀랐던 것은 루터에 대해서였다. 항의문을 교회 문에 붙였다는 오랫동안 알려져 있던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조금 어려웠고, 유대인에 대한 루터의 돌변한 태도태도를 보면서 불완전하고 완벽하게 선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재발견했다. 그가 유대인들에 대해 쓴 말년문서들이 히틀러와 나치에게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활용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니... 가슴아픈 일이었다.

 

3,4부는 쉽게 읽을 수 있었으나 2부의 끔찍함에서 받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해 그다지 편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시대에 따른 시간적 구성이 식상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를 따라가며 흐름대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섞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 끔찍한 2부의 내용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이야기하는 현실에서 종교의 이름으로(사실은 집단적, 개인적 이익을 위한 의도로) 나타나는 이 잔인함들을 각성하고 회개하는 시간이 되지는 않았을까? 단순한 역사 속 기록들이 아닌 저자의 생각, 의견을 말해 주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역사는 아름답지 않다. 죄성을 가진 인간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라고 해서 다를까? 아쉬운 것은 기독교역사 그 자체인 중세이야기와 근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와 정치가 혼합된 역사가 재미와 흥미 위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커피 마시며 산책하며 읽는 역사라는 취지답지만, 기독교 역사인만큼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관점도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내게는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헌신 -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릇으로 온전히 빚어지게 하는 책
앤드류 머레이 지음, 김창대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헌신

 

저자인 앤드류 머레이는 책의 첫 부분인 프롤로그 첫 문장에서부터 단정지어 결론부터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최고의 하나님을 위한 최고의 헌신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거룩함이다”. 거룩이 헌신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거룩하라는 말씀은 늘 명령으로 다가왔고, 내가 수행해야 할 과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머레이는 헌신이라고 말한다. 구원과 거룩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구원받은 자는 거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존재론적인 거룩이다. 그러나 내가 더 초점을 맞춘 것은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 거룩하라는 말씀에 어떤 행위를 가져야 할지였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론적인 거룩과 행위적인 거룩, 모두를 전반적으로 말하려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거룩함부터 말하게 되며, 필수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받음으로 거룩해진 우리의 존재의 거룩을 다시 확정지어 알려준다. 내가 궁금해 하는 행위론적 거룩은 세상으로부터의 구별됨이었다.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것이 쉽지 않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지만 존재론적 거룩으로 인해 넉넉히 이기는 사람들, 이 거룩함은 늘 내게는 버겁게 느껴져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중, 이루어가는 중”이라는 과정적 용어로 거룩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버리곤 하던 것이었다. 저자도 “거룩함은 전 생애에 걸쳐 이루어져야 하며, 마지막 날까지 수행해야 한다(P189)”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거룩해지는 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주께 나의 전 생애를 드리는 것 뿐이라고 한다. 거룩의 행위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다(고전1:2)”로 정의하며, 그분의 보혈로 인해 그분의 거룩하심이 전해져서 우리 안에 능력 있게 역사한다는 것이다. 너무 쉬운 말 같다. 힘을 빼고 있으면 저절로 물결 따라 그 흐르는 대로 흘러간다는 내용 같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힘 빼기가 쉽지 않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저자는 다시 충고한다. “당신의 존재나 행동에서 거룩함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라. 또한 하나님의 선물로서 거룩함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 자신, 그분의 내주하심을 구하라(P76)”. 그렇다면 행위의 거룩은 예배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일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스랍들의 쉬지 않는 경배와 찬양이 내 일상에서도 계속되어지는 것일까? 저자는 다시 이야기한다. 그것이 거룩함이라면 구원과 거룩함을 이어줄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거룩함에 관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도, 믿음도, 경배도 아닌 오직 “순종”을 요구하셨다고 말한다. 거룩함은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들어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임하시려면 우리의 뜻이 소멸되어야 한다고 꼬집는다. 그 방법으로 십자가에 못박힘을 말한다. 그리고 덧붙여 그 십자가는 내가 아직도 못 박히지 않은 십자가가 아니라, 죽이는 권세가 있는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고후4:10~11, 빌립보서1:20). 이것이 거룩한 삶의 비밀이며 진정한 성화라 한다.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 있는 것이라 한다.

 

거룩해지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갈망과 목표가 된다면 세상으로부터의 구별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주의 보혈로 인해 이미 거룩한 존재인 내가 거룩하라는 말씀을 이루어갈 때 행위로서의 거룩이 내 삶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하나님이 그것을 최고의 헌신으로 보아주신다. 거룩을 위해 우리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회개의 은총을 주심 역시 너무나 감사한 일임을 다시 깨달았다. 우리를 거룩으로 인도하는 것은 회개와 순종이었다.

 

모든 것을 ‘거룩’에 초점을 두고 말하는 이 책의 내용은 거룩에 대한 갈망을 다시 새롭게 하고, 불가능하다는 느낌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릴수록 더욱 성취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존재 뿐 아니라 행위로서 흠없는 자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 대하여와 인간에 대하여, 십자가의 종과 획을 이야기한다. 균형된 삶을 말한다. 거룩함은 구별됨과 자유와 기쁨과 생명이다. 또한 헌신이며 소망과 사랑이다. “가장 거룩한 사람은 예수님의 구원 때문에 다른 이에게 가장 겸손하고, 가장 이타적이고, 가장 온유하며, 자신을 부정하며, 가장 친절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p199)". 이 말씀에 다시 돌아가 한숨 짓는 내게 저자는 ”훈련하라”고 한다. 매일 선택하는 것을 훈련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삶의 양식이 될 때까지 하라는 것이다.

 

최고의 헌신은 거룩이며 거룩은 성화이다. 결국 이 책은 아주 광범위한 주제를 말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의문에 답을 해 주듯 친절하게 내용을 전개시켜 나가며 구원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분히 정확하게 짚어가며 설명해 주고, 대안을 제시한다.

 

‘거룩한’이란 단어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가? 실제로 거룩한 삶이 가능하다고 믿지 못하는가? 그래서 ‘거룩함’이란 말에 흥미가 없는가? ‘모든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 아직도 비밀스럽게 느껴지고 부담스러운가?

저자는 베드로의 말로 끝을 맺는다. 심판의 때에 어떻게 주 앞에서 흠없는 자로 설 것인가. 주의 오실 날이 어떠할지, 그날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이 어떠할지를 다시 돌아보라 요청한다. 근래에 묵상한 고후13장의 말씀도 생각이 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에수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게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너희를 나로 고쳐 읽으며 거룩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거룩함을 내 삶의 기쁨으로 삼으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