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온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4
정다연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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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살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오늘은 좀더 다정하게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될 때가 많다. 매일매일은 마치 전쟁처럼 느껴지고,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 퇴근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누군가의 인스타를 들여다보거나 이런저런 뉴스를 둘러보는 것뿐. 다정은 어디 가 버린 날들이 지속된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접했다. 아이들과 함께 <햇볕에 말리면 가벼워진다>를 읽은 터라 더욱 반가웠다.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의 일상은 어떨까, 싶어 궁금해지기도 했다.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글을 묶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다정함과 따뜻함을 되찾아가는 여정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다정은 힘이 되어 주고, 누군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며,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게 해 주는 또다른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다정한 대상들을 짚어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에세이 곳곳에 녹아 있는 상냥함이 돋보인다.

작가가 "자기 자신에게 다정해짐으로써 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한 말의 의미가 책 곳곳에 녹아 있다.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을 따라가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일상에 녹아 있는 다정함을 찾아볼 때, 그 다정함이 나에게 어떤 힘으로 다가오는지를 알 때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버거운 순간이 오더라도 나를 버티고 굳건하게 해 주는 다정의 힘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내일은 어제와는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다짐해 본다. 좀더 다정하게 행동해야지. 그리고 왠지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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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자기 자신에게 다정해짐으로써 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 것 같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내 몸에 얽힌 모든 시간에 차등 없이 온기를 내어주길 요청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제야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질 수 있었다. 말할 수 없다고 여겼던 내밀한 상처와도 조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10P)

* 나는 우연과 실수가 만들어낸 그 무늬가 나쁘지만은 않다. 어떤 사건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끔 반드시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사물이나 사람이나 지워지지 않는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나에겐 더 이상하게 다가온다. 삶은 유리컵을 엎지르고 싶지 않아도 엎지르게 되는 일처럼 통제할 수 없으니. (16P)

* 이제 죽지도 못해. 최근에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친구랑 얘기했는데 내가 힘들어서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이제는 죽지 못해. (73P)

* 그렇지만 어느 망각의 지대에서는 한 시절 나를 살게 한 사람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다. 어린 나에게 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을 보여주기도 하고 함께 손을 맞잡아주기도 하면서 (93P)

* 사실 선생님도 사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아직도 가끔 영원히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해. 그렇지만 자꾸 깨어나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 궁금한 게 하나 생겼거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전히 기쁠 수 있는지,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지 기다려보고 싶어. 잠으로 도망치지 않고 삶과 대면하면서.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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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욜로욜로 시리즈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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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아줌마의 부재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12살 소녀 서머의 시점을 따른다. 오갈 곳 없이 친척집에 의탁하던 서머를 선뜻 키우겠다고 나서 준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 밑에서 서머는 사랑받으며 자란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못하더라도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에게는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런 서머에게서 메이 아줌마가 떠난 것이다. 서머에게 있어서도, 오브 아저씨에게 있어서도 그녀의 부재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오브 아저씨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늦잠을 단 한 번도 잔 적 없던 아저씨가 늦잠을 자고, 의지를 잃고, 아줌마의 흔적을 좇고, 서머의 친구인 클리터스에게 메이 아줌마와의 소통을 묻고. 서머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견디기 어렵다. 오브 아저씨도 어느날 갑자기 떠나 버릴까 무섭고 그를 잃을까 두렵다. 하지만 서머는 지나치게 담담하다. 그녀는 아이답지 않게 슬픔을 절제하고 있다.


서머의 친구 클리터스의 제안으로 셋은 메이 아줌마를 만나기 위해 심령 교회까지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 찾아간 교회의 목사님은 돌아가셨고, 그들은 메이 아줌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치 아줌마처럼 느껴지는 올빼미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을 때 서머는 메이 아줌마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마음 깊은 곳에 쌓아 두었던 슬픔을 터뜨리게 된다. 그런 나를 아저씨는 위로하며 "아줌마는 여기 있단다, 아가. 사람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단다."(112)라 말한다.


"나는 눈을 감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가엾은 엄마와 메이 아줌마의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메이 아줌마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분들을 생각하는 것이 아프거나 두렵지 않았다."(112)라는 서머의 말에서, 드디어 서머는 상실 이후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소중한 이들이 부재할지라도, 그들이 남긴 사랑은 계속해서 내 안에 존재하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113쪽부터 116쪽까지 이어지는 메이 아줌마의 시점에서의 서머에 대한 서술은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던 존재인지를 알게 해 준다.


중요한 것은 상실 그 이후이다. 상실이 예정되어 있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이후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남겨진 이들은 떠나간 이의 모습을 기억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슬픔 속에 침잠하기만 한다면 망자의 사랑이 빛나지 않을 테니.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브 아저씨가 바람개비를 메이 아줌마의 밭으로 꺼내 놓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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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수영장 사계절 1318 문고 147
김선정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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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현읍의 고등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의 수영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기현의 웹소설 창작을 위해 영리, 진호가 함께하며 세 명의 학생이 ‘물 없는’ 수영장을 조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왜 수영장에 있어야 할 것이 없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 오는 기이한 울음소리는 무엇일까.

작가는 웹소설 형식을 조금씩 빌려 사건의 전개 양상을 독자들에게 알려 준다. 소설을 읽어 나가다 보면 물 없는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비밀이 점차 명확해진다. 구제역과 그로 인한 수많은 생명의 떼죽음. 누군가에게는 TV 속의 뉴스나 신문 기사로만 접했던, 나와는 그저 먼 이야기일 수 있었겠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이로 인한 비극을 함께하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영리는 아빠와 이별하고, 체육 선생님은 오빠를 잃었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로. 심지어 삼총사와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상구마저도 살처분 과정에서 복실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죽음이 조용히 파묻혀져 있는 목현리. 표지의 그림은 이제 다르게 느껴진다. 귀엽게만 보였던 키링 속 돼지는 어딘가에 파묻힌 복실이처럼 보이고,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어둡다. 하지만 올려다보는 하늘이 완전히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약간의 별이 조금씩 빛난다.

뉴스를 켜면 어른들이 하는 말 //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 ”기계가 작동하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 ”사람이 거기 있는지 몰랐습니다.“ // ”이런 참사가 일어날 줄 정말 몰랐습니다.“ // 변명만 하는 티브이를 끈다 // 사과하는 어른 한 명 없다 (정다연, <사과> 전문)

소설을 읽으며 위 시를 떠올렸다. 사과하는 어른 한 명 없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늦게나마 우리 사회의 비극을 돌아보고 바로잡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소설에 깊이 녹아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움직임이 빛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와 위안이 되어 주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어두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목현리의 수영장에 맑은 물을 채울 주역인 미래 세대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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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를 좋아해? 사계절 1318 문고 146
김지현 지음 / 사계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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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올해 한 달에 한 번 ’채식의 날‘ 식단을 운영한다. 기대되는 마음도 잠시, 식단표를 붙여 주니 아이들은 금방 채식이라는 글자를 캐치하고서는 온갖 말을 쏟아낸다. “쌤 이런 거 대체 왜 하는 거예요?” “아 맛없겠다” “이날 밥 안 먹어!” “학교가 돈이 없나?” 그러면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줘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리고 좀 야속해지기도 한다. 딱 하루인데, 그걸 못 참나?


<브로콜리를 좋아해?>는 좋아하는 대상이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채식을 시작하게 된 유진의 이야기이다. 또래 남학생이랑은 사뭇 다른 희원이 고기를 먹지 않고, 그 때문에 급식 역시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선뜻 채식을 시작한다. 유진이 채식을 결심하자, 친구 수현도 유진을 따라 채식에 동참한다. 이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채식이 왜 좋은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채식을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서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시되며 셋만의 채식이 시작된다.


그 외에는 평범한 성장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을 소신껏 지켜나가지만, 자신의 선택에 어떤 당위나 명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내 옆의 누군가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식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채식을 이어나간다. 이 소설은 채식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 힘을 싣지 않는다. 인물이 한 선택에 대해 그 인물이 각자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이를 어떻게 이어나가는지를 따라갈 뿐이다.


어쩌면 소설은 채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인공이 갖는 사려깊음과 단단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사려깊은 시선을 따라가면, 그곳에는 학교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은오가 있고, 고양이로 인해 채식을 결심한 희원과, 동물을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수현을 두루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각자의 삶을 선택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단단한 모습 역시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인물들 속에서 독자는 그동안 당연히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고기를 안 먹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설 속 아이들처럼 말이다.


이제 독자가 작가의 질문에 답할 차례다. 넌 브로콜리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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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의 너에게 - 제10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45
김문경 외 지음 / 사계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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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이라 하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만 같아 소설을 고를 때 쉽게 선택하진 않는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 보면 과학 이면의 것들을 좀더 생각하게 된다.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때 인간의 위치와 역할은 어때야 하나. 작품집 속 소설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공통적인 내용은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대상 수상작인 「시간 속의 너에게」는 시공간을 초월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폐 섬유화와 사이보그화 등등 많은 변화를 겪는 가상의 미래 사회에서 주인공은 은하와의 기억을 추억하며 영상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은하의 모습을 확인한다. 꼭 만나지 않아도, 시공간이 달라져도 서로를 기억하는 그대로의 마음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담아낸 소설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작가의 신작인 「영원이 손을 내밀 때」에서도 드러난다. 영혼과의 소통을 통해 은조의 소중함을 인식한 소년은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은조의 영혼을 이식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은조가 그토록 원했던 '초콜릿을 먹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함이었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아도 마음이 있다면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그 외의 우수상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영의 자리」는 안드로이드의 마음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 주었고, 「소년들, 소년들이」는 우주 너머의 존재들이 사투하는 현장을 상상하여 그려낸 점이 흥미로웠다. 「호르헤 행성의 음모」는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호르헤인의 음모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청소년들의 흥미를 끌기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테고사우루스병」을 그중에서도 감명깊게 읽었다. 등에 뿔이 자라는 주인공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내내 뿔을 갈지만, 외계인이 지구에 등장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어려워지게 된다. 하지만 친구들의 "하지만 어쩌겠어? 이상한 친구가 생긴 거지 그냥."이라는 말은 자신이 그동안 숨기고 싶었던 약점을 더 이상 약점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는 힘을 부여한다. 청소년들의 자기정체성 형성에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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