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미란다 복제하기 사계절 1318 문고 143
캐럴 마타스 지음, 김다봄 옮김 / 사계절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미란다라는 완벽한, 아니 완벽했던 소녀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미란다는 공부도, 발레도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소녀이다. 부모님의 안정된 자산과 명석한 두뇌, 뛰어난 신체능력과 건강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미란다에게 갑자기 종양이라는 시련이 찾아온다. 하지만 부모님은 미란다가 앓는 병에 대해 지나치게 의아해하다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확신에 찬 태도는 왠지 의심스럽다. 이 의심은 미란다가 병원에서 자신의 복제인간인 아리엘을 만나며 해결된다. 아리엘은 자신이 아플 때를 대비해 복제된, 또다른 미란다이다.


어쩌면 그냥 모른 척했을 수도 있지만, 미란다는 아리엘을 만난 이상 또다른 자신인 아리엘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미란다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개척해 나가는 순간이다. 복제인간이라는 SF적 환상에 기반한 전개가 이루어지지만, 미란다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는 과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항상 어떤 틀에 맞춰진 채로 완벽하게만 존재했던 것이 과거의 미란다라면, 지금의 미란다는 부모님의 말에 거역하기도 하고, 아리엘을 배려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 아리엘 이후의 이브를 만나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간다.


네겐 영혼이 있어. 그건 너만의 것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단다. 설령 네가 영혼을 믿지 않느다 해도, 너와 이브, 미란다는 분명히 달라. 과학이 설명해 내지 못하는 면에서 말이야(323). 이 말은 소설의 주제를 관통한다. 누군가에 의해 복제되었다고 해서 그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란다, 아리엘, 이브는 모두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각자의 선택을 하고 주어진 삶을 맞이한다. 이제 그 삶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고유의 삶이 된다.


교실 속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과서를 펴고 줄지어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각자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너희의 삶을 살라고 말하면서도 획일적인 것을 가르치는 현실, 주어진 목표와 운명에 순응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이 책은 어쩌면 이상적인 뜬구름 잡기일 수도 있으나, 삶의 부조리를 생각해 보게 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소설일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괜찮다. 고유하니까. 그런 말을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전해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로기완'의 행적을 좇는 '나'의 시선에서 서술된다. 방송작가인 '나'는 얼굴에 큰 혹을 달고 살아가는 '윤주'에게 큰 연민을 느끼고,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녀의 삶을 다룬 방송을 추석 연휴로 미룬다. 연휴에 후원금이 많이 걷히리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달이 미뤄지는 동안 '윤주'의 얼굴에 달린 혹은 악성 종양으로 바뀌고, '나'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이후 우연히 접한 잡지에서 로기완의 이야기를 접하고 무작정 그가 탈북 이후 머무르게 된 벨기에로 떠난다. '나'의 여정은 로기완의 흔적을 좇는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으로 설명된다. '나'는 항상 '윤주'를 생각했으나, 그렇기에 '윤주'에게 차마 연락할 수 없고 그녀의 삶을 마주할 수 없다. '나는 윤주의 시간도 궁금하다. 항상 그애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높은 강도의 수치심과 분노를 배우게 했고, 결국엔 악성으로 변해 목숨까지 위협하게 된 거울 속의 그 혹을 그애가 어떤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있을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타인의 무분별한 시선에 놀란 마음과 상처 입은 눈물로만 이루어져 있던 종양이 악의를 잔뜩 품은 암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 그 과정을 납득하고는 있는 건지 정말이지 알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전화기를 들지 못한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로기완의 발자취를 따라 밟는다.

로기완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나, 홀로 벨기에로 밀입국한 왜소한 청년이다. 어머니는 그와 함께 북한 국경을 넘었으나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로기완은 어머니의 시신을 팔아 마련한 돈을 가지고 브뤼셀로 온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현실은 사뭇 차갑다. '그때껏 '헬로'나 '봉주르'조차 제대로 발음해 본 적 없는 동양에서 온 키 작은 청년은 서둘러 운동화를 구겨 신은 채 이곳을 나서면서 이 도시에서의 삶이 이처럼 누군가의 반복되는 무시와 경멸, 그리고 자신을 향한 과장된 경계심과 불필요한 오해로 채워질 거라는 걸 예감했다.' 이후의 서술들은 로기완이 타국에서의 삶을 어떻게 힘겹게 살아냈는지에 대한 기록들이다. '나'는 로기완의 힘겨운 삶을 반추하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나'가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타인의 고통과 위로, 연민에 대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란 실체를 모르기에 짐작만 할 수 있는, 늘 결핍된 대상이다. 누군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나는 무력했고 아무것도 몰랐으며 항상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했다.'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윤주'로 인해 자신이 타인의 고통을 너무 쉽게 여겨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나'가 스스로에 대해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 메마른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라든지, '나 자신의 슬픔에까지 진심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 어리석은 검열을 했'다고 평가하는 것이라든지.

하지만 소설은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로기완은 거리에서 쓰러진 이후 경찰에 의해 발견되고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이후 '박'의 도움을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박'과의 연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박'은 로기완의 자술서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덧붙인다. '우리가 정치적인 문제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놓치게 되는 것은 개개인의 고통이며, 이것이 우리의 비극임을 부디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박'은 이후에도 로기완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내의 죽음에서 기반한 죄의식을 바탕으로 '박'과 로기완은 연대한다. 이후 로기완은 '라이카'와의 유대를 통해서도, 서로의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삶을 이어 나갈 의지를 갖게 된다. '라이카'를 따라 기존의 난민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으로 떠나는 로기완의 모습은 자신이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로기완이 자신의 삶에서의 상처들을 극복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되듯, '나' 역시 로기완을 만나는 여정에서 자신이 가졌던 상처들을 극복해 나가게 된다. 살아 있음으로서의 가치를 느끼고,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연대의 가치를 느끼는 것. '나'의 여정은 이를 알기 위한 것이다. '박'이 '나'에게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됩니다."라고 말한 것에서 '나'의 삶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또한 '나' 역시 아내를 안락사시킬 수밖에 없었던 '박'에게, 아내의 가는 길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을 주게 되며 '박'을 돕게 된다. '나'는 미뤄 두었던 '윤주'와도 관계를 회복한다. 울음 끝에 '윤주'가 '충분하다'고 말해 준 것, 그것으로써 '나'의 생애는 잘 마무리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고통을 다는 알 수 없을지라도,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의 마음을 지니는 것, 그럼으로써 타인의 생애를 자신의 것처럼 돌아보고 타인과 연대할 필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가 로기완을 통해 결국 알게 된 것은 탈북자 로기완뿐 아니라 '나'이기도 했으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로기완을 통해, 소설 속 '나'를 통해 우리를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날을 세우고 서로 달려드는 요즘의 사람들에게도 로기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유월의 바다, 생동감이 넘치는 휴양지의 해변이 아니라 적막하고 고요한, 사람이 거의 찾지 않는 해변의 여관. 그런 곳을 상상하면 이 소설의 분위기가 금방 설명된다. 후Hu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계, 뜨거운 태풍이 불어오는 42도의 여름, 잦은 국지전과 시위가 일어나는 국제 정세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은 위기로 지칭되나, 이 세계에서의 위기는 '뻔하고 상투적이고 고리타분하고 그러므로 무감각한 주제(48쪽)'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장욱은 '재난이나 종말이 아니라 '재난 이후' 또는 '종말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182쪽, 작가의 말).'라고 밝힌 바 있는데, 팬데믹을 겪고 난 지금의 모습과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프로젝트 시집 『지구에서 스테이』에 실린 「적의 위치」에서도 이장욱은 이미 재난의 일상화에 주목한 바 있다. '헤이, 나의 적은 공산주의나 제국주의인 줄 알았는데...... 외계인이나 악몽인 줄 알았는데...... / 당신이었군요. / 어째서 나의 적은 행복마트에 세기세탁소에 침울한 날씨에 / 거리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 안녕, / 하고 인사를(이장욱, 「적의 위치」 중)'이라 말하는 데에서 재난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상이 되어 버렸음을 예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재난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하지만 소설 속 네 인물의 삶은 그런 일상화된 위기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는 일기 쓰기나 연극 속 인물에 천착하고, 여전히 누군가는 떠나간 사람을 추억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한다. 모수는 '일기광'으로 매일매일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 중독되어 있다. 일기와 자신이 구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연은 그런 모수를 관찰한다. 천은 연극 배우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이 역시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흐려져 있다는 점에서 배역에 중독된 인물이다. 한나는 그런 천을 관찰하고, 이물감을 느끼고, 천을 떠난다. 한나가 떠난 이후 천은 바다를 찾아 해변여관에 간다. '바다는 아름답지 않고 낭만적이지 않고 그립지 않겠지만 어쩐지 더 피폐하고 가혹하고 무정한 바다를 보고 싶었다. 바다는 황량할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 바다는 두려울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 바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수록 바다 같을 것이었다(136쪽).'와 같이, 바다를 찾아 떠난 천은 해변여관에 머문다. 소설의 제목은 여기에서 왔을 것이다.

이들은 소설의 원제처럼 '침잠'해 간다. 침잠해 가며 서로 간의 경계도 없이, 구분도 없이 사라지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제 네 사람의 이야기가 해변여관에서 다같이 이어진다. 해변여관에서 '연의 중얼거림을 따라서 천이 중얼거렸다. 언젠가 자신이 해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 말을 한 것이 한나였다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154쪽).'라는 기술과, 연이 중얼거린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가 모수의 일기에 있었던 문장이었다는 점을 종합하면 네 명의 인물은 서서히 경계 없이 구분되지 않는 셈이다.

어쩌면 재난은 모든 것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외부는 외부인데 내부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 내부이면서 동시에 외부인 곳에서 / 도무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곳에서 / 격리된 곳에서 / 우리는 살아갔다 … 오늘의 바다는 영원의 바다라서 하늘과 구분되지 않습니다(이장욱, 「적의 위치」 중).'라는 시 구절이라든지, 소설 속 인물들이 구름과 안개와 연기의 구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든지, 조금씩 바다에 잠식되어 가는 공간인 해변여관. 이장욱은 계속해서 경계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사실 나는 진실의 일면이고 양면이고 하는 것은 관심 없어요. 진실의 온 모습 따위가 뭐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시간의 수많은 차원이라는 것도 웃기고 우스워. 우습고 웃기지(54쪽).'에서 경계의 무의미함을 진작 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침잠하는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영화 <애프터 양>에서 끝은 곧 시작이라는 말을 믿느냐는 카이라의 질문에 양은'저는 괜찮아요.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요.'라 말하며, 그래서 슬픈 적도 있냐는 질문에는 '무無가 없으면 유有도 없으니까요.'라 말한다. 이 영화의 구절을 함께 계속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그 아무것도 남지 않음은 역설적으로 이전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가. 소설의 제목이 바뀐 것처럼, 침잠하는 가운데에도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침잠하고 나서도 또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모른다. 모수가 모수의 유령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허무와 절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든 생각해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기회로 이번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우주의 속삭임』을 읽어보게 되었다. 어린이문학상 대상 중 하나인 『긴긴밤』을 학생들과 함께 감명깊게 읽었던지라 더 반가웠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 대상 수상작은 다섯 편의  SF 동화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흡이 짧은 동화 다섯 편이 각각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반짝이는 별먼지」의 '나'는 할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할머니는 50년 전, 지구에 우주선이 오고 우주 호텔이 생긴다는 것을 예측함으로써 오로타 행성으로 가는 우주 항공권을 받게 된다. 우주 복권에 당첨된 할머니는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지. 별먼지처럼."(29쪽)이라는 말과, "이 아이는 내가 지구에서 당첨된 최고의 복권이었네."(32쪽)라는 말을 남기고 긴 여행을 떠난다.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고, 우주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결말이다.

이처럼 다섯 편의 작품들은 시종일관 '우주먼지'일 뿐인 우리가 어떻게 사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들어오지 마시오」에서의 우주는 주인공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기제인 '무아무아족'으로 형상화된다. 증오와 폭력에 대한 억제, 그리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모두 우주적 존재를 통해 이야기한 점이 흥미로웠다. 작품의 말미에 그려진 푸른 하늘과 주인공과 고양이의 밝은 모습과는 달리, 「지나3.0」의 주제는 조금 무겁다. 태양의 폭발을 피해 우주선을 타고 탈출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 동생은 동면에 들어가고, 아버지와 지나는 항해를 계속한다.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나는 사이보그가 되고, 아빠는 컴퓨터에 자신의 정신을 결합하게 된다. 하지만 지나는 "나는 영원보다 지금을 함께 견뎌 줄 사람이 필요해요."(144쪽)라는 말로 자신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표현한다. 영원히 산다는 것, 그렇지만 그 삶이 의미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겠다. 「달로 가는 길」 역시 반전과 함께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의 삶을 보여 준다. 자식을 대체하기 위해 들인 대체 로봇과, 그 대체 로봇을 대체하기 위한 또다른 로봇이 등장하게 된다. 작가는 로봇에게 감정을 부여함으로써, 로봇이 인간과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같다면 우리는 로봇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타보타의 아이들」은 생명을 위해 희생하는 로봇의 이야기를 담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봇이 사유하고 자신의 주관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그 행동의 결과가 이와 같을까? 묻게 된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인간과 함께 사는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주의 먼지일 뿐인 우리가 우주 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다섯 편의 작품 모두는, 네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어떤 삶을 살지라도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조금은 뻔한 주제를 담고 있다. 우주를 유영하다가도 결국은 나와 내 옆의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이 작품과 작가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우주먼지인 우리도 어쩌면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우리에게도 행운이 찾아올지 모르니까. 

맞다. 우주먼지라고 자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주의 일부분이니까. 2021년에 나사 인스타그램이 올려 준 게시물을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 Remember: you are made of star-stuff and nobody can take that away. 🙅‍♀️


https://www.instagram.com/p/CSH_dM-J_zi/?utm_source=ig_web_copy_link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일곱 살의 인생론 - 성장을 위한 철학 에세이
안광복 지음 / 사계절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대한민국 1세대 철학 교사이자 현재까지 교직에서 여러 학생들을 만나 왔다. 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의문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루며, 그만의 지혜를 쉬운 언어로 들려 준다.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해 오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어른이 돼서도 잘 모르는데. 괜히 이상적인 이야기를 했다가 소위 말하는 '꼰대'로 나를 여기지는 않을까, 그렇다고 친구처럼 나도 고민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멘토 같지 않은 무책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 고민들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녹여 내어 답한다. 


여러 철학 책들이 갖는 일반적이고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저자만의 진솔한 생각, 저자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이를 자신 나름대로 정리한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아닌 어른에게도 따스한 위로가 되었다. 늘 '진솔한 글'을 강조해 온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진솔하게 표현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멘토니 뭐니 생각하며 뻣뻣하게 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개정판인 만큼 주제의 수정이나 옛 표현들이 다듬어져 있고, 따뜻한 감성을 담아낸 디자인의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학교 생활에서 책에 실린 주제로 고민하는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고민하지 않더라도, 건강히 자라날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슬며시 권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