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나라 체언도시 3 - 수사, 순서대로 불러 줘! 국어나라 체언도시 3
진정 지음, 박종호 그림 / 주니어마리(마리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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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나라 체언도시 3: 수사, 순서대로 불러 줘!』는 국어 문법이라는 다소 딱딱한 내용을 한국적 판타지 구조로 풀어내어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작품이다. 국어 문법을 어려워하거나 지루하게 느끼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문법 지식뿐 아니라 문해력과 독서 습관을 함께 길러주려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이 책은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저자가 직접 집필하여 신뢰가 퐉퐉 느껴지고, 국어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잘 보여준다. 단순한 암기식 지식 전달에서 벗어나 국어 개념을 이해하고 사고력과 표현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이 돋보인다.

이 시리즈는 ‘국어나라’라는 상상 속 나라를 배경으로, 여러 도시와 품사 마을을 오가며 언어 개념을 배우는 구성으로 보인다. 이번 권인 ‘수사마을’ 편은 체언 도시의 마지막 모험을 담고 있는데, 앞선 명사마을과 대명사마을에서 기본기를 쌓은 후 수사의 개념을 정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주인공 산이와 달리, 신수 랑이가 검은 안개와 괴물에 맞서 모험을 이어가면서 수사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되는 서사는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학습 몰입을 자연스럽게 이끈다. 그렇다고 앞선 이야기를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3권 내용만으로도 수사에 관한 충분한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수사’는 수량이나 순서를 나타내는 단어로, 양수사와 서수사로 나뉜다. 저자는 이를 고유어와 한자어로 구분해 쉽게 설명하며, 아이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숫자 표현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나, 둘, 셋’과 ‘일, 이, 삼’ 같은 양수사, ‘첫째, 둘째, 셋째’와 ‘제1, 제2, 제3’ 같은 서수사를 비교하여 보여주며, 숫자 ‘0’은 수사에 포함되지 않고 명사로 분류된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려준다. 또 백 이상의 고유어 숫자가 잘 쓰이지 않는다는 깨알 지식까지 담아 아이들이 언어의 특징을 재미있게 익히도록 구성했다.

학습 요소를 모험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도 이 책의 강점이다. 끊어진 출렁다리를 반의어가 적힌 디딤판으로 연결해야 길을 건널 수 있는 장면을 읽으며, 단어의 의미를 추론하고 문맥 속에서 적용하는 힘을 기른다. 사고력, 독해력, 표현력을 종합적으로 기르는 독서 과정으로 이어지며, 통합 학습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야기 말미마다 마련된 ‘어휘 창고’와 ‘국어 지식 창고’는 학습 내용을 복습하고 개념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게 돕는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번 권은 수사라는 개념을 기초 수준에서만 다루고 있어, 보다 깊이 있는 문법 학습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등 과정에서 혼동하기 쉬운 수사와 수 관형사의 차이를 명확히 짚어주는 내용이 보완되었다면 학습적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또한 일부 장면에서는 모험 서사에 비중이 치우쳐 핵심 문법 개념이 흐려지기도 한다.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 중요한 규칙을 놓칠 가능성이 있어, 부모나 교사가 함께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어나라 체언도시 3: 수사마을』은 그동안 영문법과 한자 등에만 맞춰진 이야기를, 국어 문법 학습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국어 공부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아이들이 국어를 즐겁고 쉽게 이해할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 국어와 독서는 모든 과목 학습의 기반이며, 사고를 정리하고 표현하는 힘을 길러 준다. 국어와 독서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첫걸음으로 훌륭한 도서다. 국어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국어를 보다 즐겁게 가르치고 싶은 부모와 교사들에게 이 시리즈는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2025.08.02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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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부 고전 필독서 30 한국문학 편 - 명문대 입학을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생기부 고전 필독서 1
배혜림 지음 / 데이스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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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스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배혜림 저자의 『생기부 고전 필독서 30 한국문학 편』은 바쁜 학사 일정에서 고전을 깊이 읽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 주는 책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과제와 시험 일정에 쫓겨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해지고, 고전을 원전 그대로 읽으며 이해하기란 벅차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잘 이해하는 저자가, 한국문학의 대표 고전 30권을 엄선해 줄거리와 주제, 시대적·사회적 배경, 작품 속 상징과 의미를 꼼꼼히 설명하며 학생들이 핵심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줄거리 요약만이 아니라,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현재의 삶과 연결시켜 보여주면서, 고전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호소력을 지닌 이유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부분은 ‘광장’,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원미동 사람들’, ‘방망이 깎던 노인’이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알려주는 주제와 사뭇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좋은데, 작품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시대적 배경과 사회의 변화, 그 속에서 우리의 가치관과 반성을 풀어내는 점이 크게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그에 비해서 윤동주부터 신동엽까지 이어지는 여러 시인의 작품과, 희곡, 옛시조는 쉽지 않았다. 국어 수업 느낌으로 지나치게 분석적으로 접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작품을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과 시를 보는 안목을 높여준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작품을 단순히 정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깊이 파고드는 저자의 시선이다. 서른 권 중에서 절반 정도는 이미 읽은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원작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학생들과 수업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구체적으로 짚어 주면서, 주요 단어와 상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오늘날에도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해 준다. 덕분에 고전이 단지 오래된 글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임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의 큰 장점은 독서 활동을 실제 생기부 기록과 과세특과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독서를 해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작품을 읽고 생각을 확장하는 방법과 이를 학업 역량으로 표현하는 방향을 차근차근 안내해 준다.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학생의 진로와 연관지어 주기에, 실질적으로 유용하다.


또한 30권의 필독서에 머무르지 않고 대여섯 권 정도의 후속 도서를 소개해 독서의 폭을 자연스럽게 넓혀준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한 권의 책을 알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책으로 건너가는 탄탄한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한 작품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찾고 싶어지고, 서로 다른 작품들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잡을 수 있다. 독서를 단발적인 과제가 아니라, 길게 이어지는 여행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바쁜 학생들에게는 고전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고, 우리 아들래미만 봐도 그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이 책이 그 부담을 덜고 차근차근 독서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리라 기대한다. 


다만 이번 편이 한국문학으로 한정되어 있어 문과 학생들에게만 특히 유익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분야의 고전을 골고루 접할 수 있다면 더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외국문학 편’이나 ‘과학’, ‘철학’ 분야를 다룬 『생기부 고전 필독서』 시리즈의 다른 책도 꼭 읽어 보고 싶다. 이 시리즈가 학생들에게 분야별 고전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중·고등학생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여러 고전으로 나아가는 탄탄한 징검다리가 되어 줄 이 책과 함께라면, 독서가 더 이상 어렵거나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학생들이 고전을 읽으며 스스로 생각을 확장하고, 책 속에서 길을 찾는 기쁨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2025.08.01



*본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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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언어들 - 세포에서 우주까지, 안주현의 생명과학 이야기
안주현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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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언어들>(동아시아)


최근 과학 유튜브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학자들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분야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쉽게 설명하면서, 그리고 자연과 우리 사회, 인간을 과학적 관점에서 풀어내기에 재미있기까지 하니, 과학 프로그램은 티비 프로그램으로도 속속 만들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과학도서를 권하려고 하면 막상 고르기가 쉽지 않다. 전문서는 어렵고, 그림책이나 어린이 과학도서는 좀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생명의 언어들』은 어린이부터 청소년까지 과학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과학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이다. 유튜브 방송이나 쇼츠를 보는 듯한데,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옆에서 직접 설명해주는 쉽고 친근한 문체와 흥미로운 주제는, 과학이 따분한 ‘공부’가 아닌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주 마시는 딸기우유의 붉은색이 사실은 선인장에 붙어 사는 연지벌레에서 추출된 ‘카민 색소’(코치닐) 때문이라는 초반의 이야기는, 단번에 독자의 호기심을 사로잡는다. 그 외에도 바늘 없는 주사기, 루돌프의 빨간 코에 관한 과학적 설명은 흥미가 과학적 토대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이 책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샬롯의 거미줄』에서 새끼 거미들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가는 장면을 아이들이 궁금해했지만, 그동안 동화적 상상력으로 넘겼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거미들이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유사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람 방향으로 거미줄을 길게 뽑아 이동하는 방식은 마치 행글라이딩 같고, 나무 사이에 거미줄을 치는 데도 활용된다고 하니 이제는 아이들에게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기후변화로 인한 동물들의 식습관이 바뀐 사례도 기억에 남았다. 북극 툰드라 지역의 순록들이 기후변화로 지의류를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해안가로 내려와 염분이 높은 해초를 섭취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기후 변화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행동과 식습관에도 변화를 준다는 놀라운 사례였다.


또한 뾰족한 바늘이 없는 주사기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주사 맞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텐데, 고압으로 약물을 분사하는 제트 인젝터부터, 서울대 연구팀의 레이저 제트 주사기, 그리고 마이크로니들처럼 미세 바늘을 이용한 방식은 주사의 따가운 느낌 없이 인체 내부로 약물을 주입하는 방법으로, 점차 상용화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또한 푸른 피를 가진 투구게의 이야기는 과학발전의 슬픈 이면이었다. 투구게의 피는 헤모시아닌을 가진 푸른색 피인데, 이 혈액에는 내독소가 감지되면 겔 상태로 응고되는 특이한 면역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의약품의 내독소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투구게 혈액의 과도한 사용으로, 투구게가 불임이 되거나 죽고, 심지어 멸종위기종이 되어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그 외에도 혈액형과 수혈, 열수분출공, 동굴벽화, 품종개량과 우장춘의 이야기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이자 역사이기도 하기에, 아이들에게 소개하기에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런 주제에 대해서 가벼운 이야기로 다루지 않고, 새로운 지식에 걸맞는 최신 연구 동향을 알려주는데,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만든다. 


‘생명의 언어’라는 저자의 통합적 시각은, 세포에서 우주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 신호와 몸짓을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학제 간 융합적 접근은 아이들의 과학적 사고를 넓게 하고, 과학을 바라보는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과학 교육자다운 탁월한 설명 방식이 돋보이는데, 복잡한 과학 개념을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전문적이다. 짧지만 깊고, 쉽지만 묵직하게 풀어내는, 저자의 역량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특히 비슷한 책을 읽다 보면, 책마다 반복되는 비슷한 사례와 비유가 많은데, 이 책은 낡은 사례를 되풀이하지 않고, 지금 과학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사례를 보여주기에, 현재 최신 과학의 현장과 연구, 특히 대한민국 학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반영한 점도 인상 깊다.


『생명의 언어들』 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는 과학적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최신 연구 동향과 관련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2025.07.14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생명의언어들 #안주현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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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은 사과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1
김지현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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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분은 사과』(김지현/다산책방)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나누기 힘든 도서가 있다. 반드시 함께 읽고 나눠야 할 책이지만, 그걸 풀어가기가, 어쩌면 설명하거나 묘사하기가 힘든 내용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과 이해를 다룬다면 더 그렇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 그것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수업과 강의로 풀어내기가 너무 어렵다. 추상적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그것이 공기처럼 우리를 애워싸고 있지만, 정작 손에 잡히지는 않고 살결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아이들에게 적극 추천하지만, 함께 읽고 나누자고 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수업과 강의가 아니라 독서모임이나 토론이라면, 잘 어울린다. 인물의 감정에 자신을 대입하기도 하고, 여러 인물 중에서 자신은 누구와 닮았는지, 혹은 인물의 성격이 가진 배경과 행동을 분석하기도 하며, 작품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이 가능한 친구들을 만나는 건 참으로 귀한 일이다.


오랜만에 깊이 있는 문학 작품을 만났다. 『고요한 우연』, 『나는 복어』, 『율의 시선』을 읽으면서 느꼈던 벅찬 감동을 상큼하게 넘어서는 작품인데, 바로 『오늘의 기분은 사과』다. 『우리의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김지현 작가의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김이경’은 너무나 선하고 착한 아이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할 때가 많다. 영화를 좋아하고, 마음에 든다면 여러 번 반복해서 보기도 하며, 자기만의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하는, 무척 섬세한 아이다. 그러나 그런 꿈을 아무에게도 내보인 적이 없다. 그런 이경이에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그저 동화책 속 인물이라면 착한 아이가 좋은 결말을 맞고 행복해지는 이야기겠지만, 현실에서 착한 아이는 먹잇감이 되기 쉽다. 그것도 약삭빠른 아이들 앞에서 말이다. 조별과제에서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주어져도 이경이는 거절하지 못하고, 묵묵히 그 일을 해낸다. 이런 이경이의 마음을 알고 도와주는 ‘강유림’이 등장하는데, 유림은 정의롭고 올바르며, 친구 관계가 원만한, 그야말로 학교 인싸다. 


그런데 이경이에게 그런 친구는 또 있다. 중학교 때 절친이었던 세 사람 중 하나만 같은 고등학교에 왔지만, 다른 반이 된 ‘규리’. 규리는 이경이와 급식을 같이 먹고 많은 것을 함께하지만, 그만큼 이경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이런저런 부탁도 서슴없이 하고, 말도 함부로 하는 편이다. 그런 규리가 이경이는 이제 좀 힘들어지지만, 그것을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 그런 이경이에게 규리는 역사 수행을 보여달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 전학온 ‘전솔’은 과거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이경과 서서히 친해진다. 솔이의 개 ‘시루’와 만나며 둘은 가까워지고, 서로의 비밀도 조금씩 공유한다. 솔이는 모두와 웃으며 잘 지내고, 적극적이지만, 이경이가 모르는 비밀이 솔이에게 있는데, 그걸 알고 있는 아이들은 이경이가 전솔과 친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런 친구들 틈에서 이제 이경은 조금씩 성장한다.


이경이가 평가해달라고 보낸 시나리오를 유림이는 국어 수행평가에 인용하고는, 그저 생각이 난 것 뿐이라며 별일 아닌 듯 대한다. 솔이의 말에 용기를 낸 이경이가 유림에게 따져 묻자, 유림이는 이경이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녹음 중이냐고 따진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이경은, 유림에게도 남들의 시선과 평가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역사 수행을 빌려달라던 규리에게는 싫다는 의견을 분명히 하고, 규리와 잠시 소원해지지만, 규리는 그런 이경의 변화와 성장을 이해하고 또 함께한다. 이경은 스스럼없는 규리의 그런 면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품이 생긴다. 그러나 이경이는 유림이를 ‘파악’하지만 그런 모습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다른 영역이었다.


한편 이경은 전솔이 전학 온 경위와 솔이에게 있었던 진실을, 솔이에게 직접 묻고 듣는다. 그동안 솔이가 보였던 행동과 그 뒤에 숨은,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모습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픔을 대하는 방식이 모두 같지 않음을, 그것을 받아들일 시작이 더 필요하다는 걸 충분히 깨닫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파악’과 ‘이해’라는 단어가 가장 크게 와닿았다. 누군가를 파악한다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는 것과 이해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세 친구를 만나면서, ‘파악’과 ‘이해’의 영역을 정확히 구분하면서, 이경은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멋대로인 규리를 파악하면서 애기같은 점을 이해하고, 똑부러진 유림을 파악하지만 이기적이고 두려움에 떠는 유림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당당하고 밝은 솔이를 알고 나서는 솔이의 슬픈 과거와 통과하지 못한 어두운 터널을 이해하고 손을 내민다. 이 과정에서 이경이는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좋은 안목이 생긴 듯하다.


『오늘의 기분은 사과』를 읽으면 말할 수 없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관계 속에서 흘려보내기만 했던 마음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이경이의 성장은 비단 착한 아이가 용기를 낸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파악’하는 것에서 ‘이해’하는 쪽으로, 조용히 타인을 분석하는 위치에서 손을 내미는 위치로 옮겨가는 내면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다. 이경은 솔직해지기로 용기를 내며, 유림과 규리, 솔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해 다가선다. 이 모든 변화는 이경 혼자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의 기분은 사과』는, 겉보기와 과육이 다른 사과처럼 하루하루 달라지는 감정들, 떫거나 달거나 상처 난 그 마음을 감추지 않고 꺼내어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결국 성장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읽고 이야기해야 할 이유라는 걸보여준다. 아이들과 나누기 조심스러웠던 이 이야기를 이제는 함께 읽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은 설명하거나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고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2025.07.06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오늘의기분은사과 #다산북스 #북스타그램 #청소년소설  

#성장소설 #감정의이해 #감성소설 #공감소설 #책추천 #독서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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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문지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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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문지나/문학동네)


여름이, 너~~~~~~무 더워지면서, 이제는 여름에서 잊히는 것들이 많다. 창문 넘어 비쳐오는 깨끗한 햇빛, 저녁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할머니가 해주시던 부채질, 철컥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서 온가족이 함께 먹던 수박화채, 한낮의 놀이터, 분수대의 아이들, 쏟아지는 땀방울, 한낮의 소나기에 반짝이던 물방울, 그리고 무지개.


요즘 여름에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밖으로 나오기를 주의하라는 재난 안전 문자이고, 뜨거운 태양 아래선 그늘에 숨기 바쁘며, 스물네 시간 돌아가는 에어컨 아래서, 각자 휴대폰을 바라보며 여름을 견딘다. 가뜩이나 답답한 아파트 단지에서, 서로 문을 꼭꼭 닫고 쏘이는 에어컨 바람이 시원할지 몰라도, 아이들의 반짝이던 눈망울과 반짝반짝 흐르던 땀방울은 쉽게 보지 못한다.


여름의 세상은 여전히 반짝이는데, 우리는 회색 건물에 들어 앉아, 뜨거운 공기를 내뿜는 실외기가 만들어낸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여름을 견딘다.


그림책 『반짝반짝』은 바로 이런 여름의 반짝임을 찾아내는 책이다. 여름의 풍경과 정서를 섬세하게 시적으로 포착한 이 책은, 잊히는 것들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일상의 소소한 장면에서 반짝이는 여름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감성적으로 길어 올려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반짝이는 마음을 건넨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여름을 온전히 느낀다. 여름의 일상 속 특별함을 조용히 일깨운다.


그러나 여름이 더워졌어도, 재난의 위기까지 치달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반짝반짝 하다. 운동장의 빛나는 돌멩이, 그늘에 앉아계신 할머니들의 은빛 머리카락, 정원에 뿌려지는 물줄기, 그리고 어두운 밤 창밖의 불빛들. 창문을 열고 마음을 열고 바라보면, 우리 주변은 여전히 반짝인다.


길가에 펼쳐진 작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깜빡깜빡, 반짝반짝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 이야기를 주워 너에게 달려가면, 마주 오는 너의 모습에, 우린 함께 반짝인다. 반짝반짝.


우리가 여름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아이들이 누려야 할 여름을 꽁꽁 숨겨놓은 건 아닌지 미안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얼굴이 벌개지도록 뛰어놀고, 물놀이하고, 물장구하며 반짝이는 물방울을 튀기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하루종일 동네를 다니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가져오면 좋겠다. 그 이야기가 서로에게 닿기를, 반짝이는 마음마다 포개어지기를.


2025.07.06


*이 책은 문학동네 그림책 읽기 ‘뭉끄 5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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