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
산다 치에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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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산다 치에 / 이소담 역 / RHK)


고등학교 때 자습시간이었다. 자습시간에는 반드시 교과서나 문제집 관련 책을 읽어야 했는데, 그때 특별한 책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댔다. 책을 좋아하는 몇몇 친구들 사이에 자습시간에 읽는 책을 서로 돌려보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무협소설과 판타지소설을 많이 읽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것은 연애 소설이다. 대만 작가 경요의 몇몇 작품들이었는데,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사랑이야기는 그 뒤로도 나의 은밀한(?) 독서 취미다. 


일본 작가들의 연애 소설은 꽤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에쿠니 가오리, 스미노 요루, 이치조 미사키 등, 이 작가들의 책은 정말이지, 따뜻하고 아름답고,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이 든다.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에 모여들면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책을 덮기가 아쉬울 정도다. 이런 작가들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면, 산다 치에의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도 추천한다.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결말을 보여준다.


“한 가지 미리 말해두고 싶은 건, 이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것. 주인공인 내가 최고의 행복을 손에 넣었으니. 최고의 가족과 절친, 연인과 함께 보낸 근사한 청춘의 나날들… 신이시여, 그의 이야기도 부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해주세요.”

리나는 해피엔딩이라고 말하지만, 말하는 뉘앙스에서 이미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이 이야기의 결말은 배드엔딩이다…. 끝부분은 인상에 안 남을지 모르지만 진한 감동을 주는 멋진 장면이 분명히 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이니까.”

쇼타는 배드엔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리나와 함께 있었던 열두 달 동안의 이야기가 행복했나보다.


이쯤되면 결말을 알지만, 입구와 출구만 아는, 이 거대한 미로에 들어가고 싶어 진다. 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리나는 보석병(국한성 심근경화증)을 앓는데, 종양이 보석처럼 아름다워서, 생물 유래 보석으로 분류되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수억 엔을 호가한다고 한다. 리나는 자신의 불치병을 위한 수술보다, 힘든 가족에게 그 보석으로 보탬이 되고 싶어, 병을 내버려 둔다. 리나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고른다. 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하고, 절친을 만들고 연인이 생기는 것이다. 리나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며, 해야 할 일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리나의 이런 상황과 어울리게도, 미사토의 집은 진주 양식을 한다. 조개 안에 이물질을 넣어, 아픔과 불편을 통한 진주를 만들어낸다. 전학 온 리나에게 첫 친구가 되고, 봉사위원으로 함께 활동한다. 리나는 미사토의 따스한 마음을 고마워하고 절친이 되기로 한다.


리나는 쇼짱이라는 연인도 생기는데, 죽기 전에 해야 할 것을 모두 다 이룬 느낌이다. 그런데 다른 여자애가 쇼짱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본 리나는, 쇼짱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마지막을 행복하게 준비하려는-그래서 더 아름다운 보석을 남기려는- 이기심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진짜 자신의 마음과 마주하고, 생의 끈을 잡아당기려 한다. 과연 리나는 진정한 연인을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은 총 두 번 읽었다. 물론 두 번째는 빠른 속도로 훑어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 놓쳤던 사소한 디테일을 만나며, 책의 전체 퍼즐이 잘 맞춰진다. 사소하게는 이름부터 시작하여, 작은 물건과 인물, 관계와 뜬금없던 말 속에, 큰 의미와 깊은 마음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해피엔딩에서 너를 기다릴게>는 연애 소설의 정석을 잘 따른다. 그래서 너무 걱정하며 읽을 필요도 없고 가슴졸이거나 긴장하지 말고, 그냥 읽으면 된다. 이미 결말을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용이 무척 모범적(!)이다. 죽음을 앞둔 여고생이, 절친과 연인을 만들고, 열심히 공부한다. 공부하다 만난 친구와 또 절친이 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한다. 또한 리나는 자신의 죽음으로 얻어질 보석이, 가족에게 여유 있는 생활로 쓰이길 바란다. 뭐하나 나무랄 데 없이 모범적이어서 편안하다. 물론 누군가에겐 식상하고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그조차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여야 하고말고.


세계문학과 한국문학, 문학상 수상작들과 멋진 아동문학, 청소년 문학을 읽다 보면, 사실 조금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 여유 있는 독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아련해지는 읽기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한다.


2023.01.19

*출판사에서 제공한 소중한 도서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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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어느 날 밤, 하늘에 뜬 으스름달을 바라보며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그를 생각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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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치킨쇼 - 2022년 제28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106
이희정 지음, 김무연 그림 / 비룡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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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치킨 쇼> (이희정 글 / 김무연 그림 / 비룡소)


문학상의 가치는 주최나 출판사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에 있고, 이전에 수상한 작품 그 자체로 탄탄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야, 그 문학상에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에 주는 문학상 중, 우리나라 3대 문학상을 고르라면, 나는 ‘창비 좋은 어린이책’과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그리고 ‘비룡소 황금도깨비상’이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세 문학상을 받은 책을 매년 챙겨보고, 그 수준의 아이들과 늘 읽고 강의하고 교안을 만들기에, 나에게 이 세 문학상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비룡소에서 매년 수여하는, ‘황금도깨비상’은 가장 오래된 어린이 문학상이기에, 절대 빠지지 않고 챙겨 읽는 어린이 문학상이다. 황금도깨비상을 받은 <건방진 도도군>, <강남 사장님>, <담을 넘은 아이>, <으랏차차 뚱보 클럽>, <플루토 비밀결사대>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은 뚜렷한 주제 의식과 재미,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체성이 분명한 작품이다. 



<천하제일 치킨 쇼>는 아동문학에서 유래가 없는 특별한 동화다. 이런 책은 처음이다. 처음 보는 작가와 처음 보는 이야기, 그리고 스타일이 매우 독특하다. 정말 재미있는데, 너무나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아동의 삶과 교육이 가진 의미,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관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제목처럼 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보여주는 ‘천하제일 치킨 쇼’가 시작된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루트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듯,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 서술된다, 결말에서 이야기가 한 데 모이고 떠오른다.


1.유이(아마도 작가의 조카)는 장래희망이 ‘치킨왕’이다. 친구들은 의사와 과학자를 얘기하지만, 유이는 세상 모든 치킨을 다 맛보고, 치킨 맛을 제일 잘 아는 치킨왕이 꿈이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랗다. 치킨을 좋아하니 살이 찌고, 이제는 치킨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도 살 때문에 고민이고 아빠는 직장에서 위태롭다. 유이가 가장 좋아하는 냠냠치킨에서 열리는 ‘천하제일 치킨 쇼’에 참가하고 싶은 유이는 친구 건우와 치킨을 시켜먹으며, 황금 티켓을 찾으려 치킨 박스를 긁지만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과연 유이는 ‘천하제일 치킨 쇼’의 어린이 평가단이 될 수 있을까?


2.시골 양계장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던 일공일호 닭이 ‘천하제일 치킨 쇼’에 참가한다. 101마리의 닭 중 101호인 일공일호 닭은, 철저히 관리받은 여타 브랜드 닭과 다르지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그저 치킨이 될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들처럼, 냠냠치킨 회장이 정해준 운명대로 살아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날개를 펼친다. 일공일호 닭은 101마리 닭 중 황금닭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황금닭이 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1과 2의 이야기는 교차 서술되는데, 뒤로 갈수록 하나로 모이기에, 두 이야기의 교차 서술을 꼼꼼히 읽고 따라가야 한다. 아이들과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다.



아동 대상으로 한 동화지만, 책에서 어떤 문장을 하나 똑 떼와도 몇 시간씩 얘기를 나누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깊이 와닿은 몇 가지 문장이 있다.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누구냐가 중요한 법.”


일공일호 닭은 자신의 출신이나 지역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이 바꿀 수 없고 결정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자신을 정하는 것은 자신일 뿐, 나를 가리키는 것은 그저 나일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격에 가치를 둬서 뭐 하는가? 팔리는 순간, 치킨으로 먹히 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치킨 쇼를 통해 닭의 가치를 아무리 높게 매긴다 한들, 결국 닭의 결말은 치킨일 뿐이다. 따라서 닭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어떤 닭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는 닭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 아이의 성적과 다니는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가치는 가치관과 인성,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에 있다.


“만화 영화도 두 배속으로 보면 결말을 빨리 알 수 있어. 그렇지만 재밌는 대사를 다 놓쳐서 결국엔 다시 봐야 해. 너도 좀 천천히 공부할 필요가 있어.”


초등학생이 벌써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으면서 남들보다 더 빨리 결말을 보고 싶은 아이들, 부모님들이 많다. 하지만 초등시절의 재미와 느긋하게 살아가는 삶의 가치, 읽고 즐기고 나누어야 할 수많은 책을 읽으며, 진짜 아이다운 삶을 살아내어야 한다. 삶의 진리를 닭에게서 배운다.


“한번 주문한 치킨은 메뉴를 바꿀 수 없어. 이미 배달이 출발했거든. 선택에 책임을 지고 최대한 맛있게 먹는 수밖에.”


하지만 이미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미 출발했다면, 그에 책임을 지며, 즐기며 나가아면 된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꿈꾸는 삶은 결코 후지지 않지. 삶은 생각하는 쪽으로 스며들거든!”(145~146)


어른들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뭔가 거창한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정해놓은 길의 끝은 결국 애벌레들의 탑이며, 그런 삶은 후지다. 그러나 꿈꾸는 삶은, 꿈을 꾸는 방향으로 스며든다. 후지지 않다.


“치킨은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어. 생각은 바로 행동으로!”


좋은 책을 읽고, 재미있었다면,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뜨거운 치킨처럼, 생각이 가슴을 뜨겁게 했다면 기다리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 문학을 자주 접하지만, 짧은 책 속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깊은 문학 작품의 오마주도 자주 보여 재미있다. 그러나 꿈, 교육, 가족, 가치관 등에 관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다 보니, 책의 끝에는 던져놓은 내용을 다 담지 못한 점은 아쉽다. 유이는 뒤에 어떻게 살아가며, 부모님의 사정은 어떤지, 건우는 어떻게 되었는지, 번개맨 언니는 어떤지, 미래 사장님은 과연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어린 친구들은 이 책을 읽으며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요?”라고 질문할 것 같다. 그걸 함께 나눠도 좋겠다.


<천하제일 치킨 쇼>는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용한 것을 꿈꿀 자유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브랜드 닭으로서 명예롭게 치킨이 되는 일보다 더 훌륭하고 가치있으며, 아름다운 일도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저마다의 가치관과 꿈을 갖고, 당당하게 나아가도록 안내한다.


황금닭이 되길 포기하고, 힘찬 날갯짓으로 창공을 날아간 닭처럼,

이 책이 황금도깨비상을 발판으로,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날개를 펼칠 용기와 희망을 준 것 같아 기쁘다.


풍성한 잔칫상에 놓인 그 어떤 요리를 집어들더라도, 생각지 못한 깊은 맛과 정성에 감동하게 될 작품이다.


초등 전체 학년에 두루 추천한다.


2023.01.16


#천하제일치킨쇼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이희정

#북스타그램

#동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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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도 모르는데 4인조 밴드 VivaVivo (비바비보) 51
마스이 준코 지음, 이현욱 옮김 / 뜨인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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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1도 모르는데 4인조 밴드>

마스이 준코 / 이현욱 역 / 뜨인돌


기타 코드 2개로 시작한, 변화와 성장

작은 변화와 용기가 바꿔놓는 일상의 즐거움


뜨인돌의 ‘VivaVovo’ 시리즈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소개한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부터 가볍고 발랄한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시리즈라, 출간될 때마다 관심을 갖고 읽는다. 청소년 자녀에게 가볍지만 깊이 있게 읽을 책을 권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빈 말이 아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은 <기타 1도 모르는데 4인조 밴드>다.


대학 진학으로 도쿄에 간 형이 준 기타를 통해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탄탄한 전개와 매끄러운 문체, 일상 속의 재미와 변화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오히로는 이제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새로운 학교와 반, 학생들을 만나기가 부담스럽다. 소심해서 나서지 못하며 망설이고 주눅드는 아이 나오히로는, 담임 선생님 때문에 얼떨결에 문화위원을 맡는다. 그러면서 적극적이고 잘 나서는 가이토와 문화위원을 하는데, 음악실을 청소하던 나오히로, 가이토, 홋타, 이렇게 셋은 즉흥 연주로 밴드에 관심을 갖는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엉뚱하고 재치있는 가이토의 가사와 나오히로의 단 두 개 뿐인 기타 코드 연주로 재미와 망신을 함께 얻지만, 학교 축제에 나가기로 마음먹으면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거기에 홋타의 드럼과 키보드를 치는 다자키가 들어오면서, 밴드 연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사람이 얼굴 없는 멤버로 베이스를 담당한다. 과연 이들의 밴드 연습과 공연은 잘 이뤄질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에게 뭔가 대단한 걸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단히 복잡한 사건도 아니고, 엄청나게 고민해야 할 내용도 없다. 누구나 새로운 변화 앞에서 망설이듯,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자신과 겹쳐보게 되고, 그런 성격의 반대편에 있는 가이토를 통해서, 무모하고 과감하며 무턱대는 모습또한 괜찮다고 말해준다.


철없는 유치원생이 초등학교에 갈 때는 뭔가 진급하는 느낌이라면, 초등학생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정말 긴장되고 떨린다. 이미 많은 친구와 관계를 경험하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아이들은 새로운 관계와 제도 앞에 주눅들기 마련이다. 그런 모습이 책 속에 아주 잘 나와 있다. 그래서 초등 고학년 아이들과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깊이 공감하며 읽으리라 생각한다.


일본 작가 특유의 문체가 잘 드러나며, 화자인 나오히로의 입장에서 그 속마음과 고민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점도 좋다. 아이들다운 솔직하고 정직하며 풋풋한 느낌이 잘 살아 있고, 실수와 잘못, 걱정과 고민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물론 일본 작품을 자주 접하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일본식 이름도 어렵겠지만, 이름과 성을 번갈아 부른다거나, 이름조차 재치있게 바꿔 부르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물이 나올 때마다 작은 메모지에 이름을 적어두면서 읽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제목에서 아쉬움이 컸다. 누가봐도 제목에 내용이 다 들어 있어서다. 일본 원작 제목은 “F가 전혀 안 돼” 정도인데, 책 내용 속 노랫말과 어울리기에, 이러한 제목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예측불가능한 상황을 싫어하고, 그런 상황에 처하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그건 수백만 년간 우리를 지배해 온 본능이기에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큰 변화의 시기에 아이들은 당황하고 주눅들고 망설이며,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골드버그 장치’처럼, 작은 변화가 큰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작은 변화와 시도로, 일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바꾸고 성장시킬 수 있다.


주인공 나오히로가, Em, Am 단 두 개의 기타 코드로 기타를 시작하여 공연하고 밴드를 만들어, 결국에는 학교 축제 공연과 그 어려운 F 코드를 성공한 것처럼, 변화하려는 마음과 작은 시도가 우리를 바꾸어놓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 <기타 1도 모르는데 4인조 밴드>가 책을 어려워하는 많은 아이들에게 F코드로 나아가는 Em, Am 코드가 되길 바라 본다.


2023.01.15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솔직한 서평임을 밝혀둡니다.




#기타1도모르는데4인조밴드

#뜨인돌

#vivavivo

#도서협찬

#청소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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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보건실 1 - 당신의 마음을 주세요 큰곰자리 68
소메야 가코 지음, 히즈기 그림, 김소연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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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보건실1> (소메야 가코 글 / 히즈기 그림 / 김소연 역 / 책읽는곰)


독특하고 특별하고 오묘하다.

차원이 다른 주제와 흐름, 문장력이 매우 인상적이다.


수상한 *** 시리즈부터, 전천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화를 읽었지만, 이 책만의 독보점인 점은 이야기의 흐름이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간다는 점이고, 독보적인 문체와 문장 흐름이다. 이 책의 문장은, 그 흐름을 이어간다기보다 문장의 나열이 이어지는데, 순접이든 역접이든 그 어떤 접속사도 사용하지 않는다. 작가가 흡입력있는 문장으로 어린 독자를 들쳐메고 책 속으로 들어간다. 아무렇지 않게 환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당연하다는듯이 문제를 풀어간다. 손에 따개비가 생기고, 커튼에서 잎이 자라며, 머리에 더듬이가 생기고, 미니어처 닭이 꼬꼬댁 뛰어다니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마술적 리얼리즘보다는 몽환적 판타지라 할 만한 작품이다.


—-


저마다의 아픔과 고민을 지닌 다섯 아이들이 보건실을 찾는다. 가나는 춤을 잘 추는 하나를 질투하는데, 손바닥에 시샘 따개비가 자라기 시작한다. 온몸을 덮을 정도인데, 과연 수상한 보건실 선생님은 어떻게 치료할까?


그 외에도 마스크 뒤에 숨으려 하는 에리, 메트로놈의 저주에 거려 남들과 꼭같아지려고 하는 소헤이, 재해도 집을 떠나게 된 상황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짜증나’만 내뱉게 된 나호,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가 자기 사촌에게 준 쿠키가 배아픈 다이치까지.


아이들이 가진 고민은, 딱 아이들이 할 만한, 경험이 잘 녹아든 고민이다. 그저 아이들의 고민이 아니라 얼마나 괴롭고 마음이 힘든지, 왜 그런지를 잘 풀어내었다. 아야노 보건 선생님은 그저 ‘치료’를 하지 않고, 아이들이 ‘극복’할 힘을 준다. 아이들 스스로가 그런 힘을 기르도록 도울 뿐이다.


—-


책에서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치려 하지 않는 점이 좋다. 무엇보다 어른으로서의 교훈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하는 것, 우린 각자 다르고 부럽고 아쉽고 귀찮으며 예민할 수 있음을 받아들인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진지하지 않게 잡아 읽기 좋고, 그 어떤 편견과 고정관념 없이 보아 좋다. 그 누가 읽어도 자기다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 차례의 몽환의 꿈을 꾸는 듯한 ‘수상한 보건실’에 한참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살 만한 힘을 얻고, 자신감 액기스 한 컵을 마신 듯하다.


독특하고 특별하고 오묘한 이야기와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모든 독자에게 권한다.


2023.01.04


-이 글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수상한보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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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동화

#초등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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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소녀의 비밀 직업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스테이시 리 지음, 부희령 옮김 / 우리학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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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소녀의 비밀직업 (스테이시 리 지음 / 부희령 역 / 우리학교)


이 책의 지리적 배경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애틀란타, 온갖 것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시절이 이야기다.

주인공은 17살 ‘조 콴’인데, 동양인(중국) 소녀다. ‘올드 진’이라는 노인과 함께 사는데, 그는 조를 돌봐주는 사람이다.


조는 올드 진과 함께 벨 씨의 인쇄소 지하에 숨어 산다. 그곳은 겉으로 찾기 힘든 장소인데, 과거 흑인 노예들이 몰래 만들어 놓은 곳으로, 위층 인쇄소에서 말하는 소리가 아주 잘 들린다. 조와 올드 진은 이곳에서 몰래 살며, 신문사를 운영하는 벨 씨 가족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엿듣는다. 조는 그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 관심을 갖고 많은 것을 배운다.


모자점에서 일하는 조는 모자와 매듭에 재능이 있지만, 유색인종이라 일터에서 해고된다. 조는 예전에 하녀로 일하던 페인 씨 저택에서 다시 일하는데, 올드 조도 그곳에서 마필 관리사로 일하는 중이다. 페인 씨 집에는 페인 부인과 그녀의 아들, 딸이 있는데, 딸 캐럴라인은 유독 조를 못살게 군다. 조는 캐럴라인의 하녀로 일하게 된다.


벨 씨의 인쇄소에서 만드는 신문 ‘포커스’는 경쟁 업체에 밀려 구독자가 줄어들고 있어서 위기에 처한다. 경쟁 업체에 대항할 필진을 구하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줄 사람을 찾는다. 지하에서 그 이야기를 들은 조는 벨 씨 신문사에 자신이 쓴 글을 보내고, 포커스 신문사에서는 ‘스위티’라는 필명으로 조의 글을 싣는다. 사람들은 스위티의 의견에 놀라고 세상을 앞서 가는 생각과 여성의 권리, 참정권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조, 즉 스위티의 칼럼으로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에 관심을 갖는다. 낮에는 저택의 하녀이지만 밤에는 지하실에 숨어 사는 칼럼리스트로. 과연 이런 위태로운 상황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이 책은 20세기 초의 미국 상황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낸다. 활력있는 도시, 성장하는 미국의 근대사의 현장에 주인공과 함께 와 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면에 숨은 빈부격차,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참정권 문제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흑인에게는 물건을 팔지 않는 모습과 그보다 더 큰 차별을 받는 동양인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 참가하는 조는, 그 ‘여성’은 백인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또 경악한다. 조는 그래도 꿋꿋하게 싸워나간다. 여성들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바로 ‘스위티’인 조인데, 여성들은 유색인종인 조를 외면하려 한다. 조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 책의 인물 관계가 무척 촘촘하다. 처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읽지만, 중반 이후가 될수록 인물의 관계가 더 좁혀지고, 바로 옆의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고 놀란다. 마님은 마님이 아니었고, 아가씨는 아가씨가 아니며, 올드 조는 그냥 올드 조가 아니다. 그것을 알게 된 순간, 백인 중심의 사회, 그들이 지하실에 꽁꽁 숨겨두었던 추악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허울뿐인 명분이 우스워진다.


이쯤 읽고 나서야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는 왜 지하실에 숨어 살며, 왜 지하실에서만 엿들을 수 있었을까? 쓸모없다고 여긴, 혹은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지하실에 방치되어 있다. 꺼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것들이 말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비밀스런 지하실이 있다. 쉽게 보여주지 못하는 지하실 공간. 그 공간에 감추어두었던 것이 어쩌면 누군가의 보물이고 꿈이었을 것이며, 삶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공간이 스스로 뽐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지하실이 두 손 높이 받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를 여자로서 살기도 벅찬데, 동양인으로 살아야 했던 조. 그러나 좋은 이웃들도 분명 있었으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조를 봐준 사람들, 바로 벨 씨 가족들이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보면, 백인과 흑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 문제였음을 깨닫는다.




“정의와 공평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고, 정해진 사람에게만 씌워지는 우산이다.”


하지만 조는 이미 알고 있다.

비가 쉽게 그치지 않으리란 것을.

그리고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것을.




2023년에는, 내 마음 속 지하실에 깊이 가둬버린 모순이 없는지 찾아보겠다.


2023.01.01


#아래층소녀의비밀직업

#우리학교

#북스타그램



정의와 공평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고, 정해진 사람에게만 씌워지는 우산이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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