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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마지막 공중전화
피터 애커먼 지음, 맥스 달튼 그림, 김선희 옮김 / 더블북 / 2023년 12월
평점 :
<뉴욕의 마지막 공중전화>(피터 애커먼 글 / 맥스 달튼 그림 / 더블북)
- 약속의 징검다리.
- 동전 몇 푼을 집어 넣으면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 컵씩 마실 수 있는 음성 자판기.
이외수의 ‘감성사전’에 나온 말이다. 동전 몇 푼으로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기대하는 음성 자판기는 무엇일까? 바로 공중전화다. 작가의 아름다운 표현과 달리, 이제 공중전화를 보기가 참 어려워졌다.
약속 장소에 늦을까 친구에게 연락하려, 공중전화로 찾아가 긴 줄에 한참을 기다렸던 일은 90년대 이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한 일일 것이다. 동전을 넣으며 들리던 ‘뚜~’하는 소리와 그리고 ‘뚜뚜~’하며 나는 연결음, 그리고 공중전화 속 동전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들리던 그리운 목소리.
더 이상 공중전화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공중전화가 사라지는 건 뭔가 나의 삶의 한 부분이 잘려나가는 듯한 상실감이 든다. 겉으로는 재난이나 정전 상황에서 공중전화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런 이유보다 이웃처럼 늘 곁에 있던 공중전화가 사라진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헛헛한 것일 테다.
<뉴욕의 마지막 공중전화>는 바로 그 지점을 다루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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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배경은, 뉴욕시 웨스트엔드 대로와 100번 가가 만나는 거리에 있는 공중전화다. 항상 회의에 늦은 회사원,
쿠키가 더 먹고 싶은 걸스카우트소녀,
시멘트를 더 주문해야 하는 공사 현장 감독,
코끼리를 잃어버린 동물원 관리인,
첼리스트, 발레리나, 어릿광대, 그리고 비밀요원 등.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바로 공중전화다. 이따금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필요하고 그리운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곳이 공중전화인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공중전화를 찾지 않고 저마다 가진 작은 물건에 이야기를 하자, 공중전화는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사람들한테 다들 휴대전화가 있으면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을 거야.’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중전화는, 유리창에 금이가고 갈수록 꾀죄죄해진다. 이따금 트럭에 실려가는 다른 전화박스를 보며,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던 공중전화에게, 얼마 뒤 어마어마한 폭풍이 내리친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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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마지막 공중전화>는 어린이 그림책이다. 어른들에게는 추억 돋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이런 게 있었어?’하는 마음이 들 테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공중전화가 있었다는 것, 아직 그 쓸모를 다하지 않았으며 역할이 남았음을 알게 한다. 그저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풍경, 배경이 아니라, 내가 모르고 잊고 있던 때에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존재가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그리고 동네마다 있는 작은 문화재처럼.
나는 이 책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읽으면 좋겠다. 부모님도 함께 보면 좋겠다. 조금 불편하지만 정감있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불편함이 주었던 따스함을 얘기하면 좋을 것이다. 부모님 손을 잡고 공중전화를 이용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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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처럼, 변화와 발전은 막을 수 없다. 터져나오는 새로운 제품과 과학 기술 앞에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한때 우리와 함께 했던, 정겨운 그것들은 어느 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손에 익어서 손때가 묻은 그 물건들이 사라지는 게 마냥 가슴 아픈 까닭은, 어쩌면 그 안에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발전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창고 깊숙이 들어갔다가 폐기물로 처리되는 물건처럼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어디 나뿐이랴. 나이를 먹으며 모든 이들이 겪는 같은 감정일 것이다.
변화는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며, 그 사이 적응하지 못할까 봐, 도태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은, 사라지는 공중전화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마냥 옛것을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 그렇기에,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들이 가진 쓸모를 발견하고,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나눠 쓰는 매력을 알기를. 아울러, 대상을 그 쓸모와 가치만이 아니라, 함께 했던 시간과 의미로 판단하길.
초등 저학년 이하 어린이들에게 추천한다. 부모님, 조부모님과 함께 읽으면 몇 권의 책을 함께 읽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2023.12.26
*본 서평은 ‘더블북’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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