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없는 개, 복이 - 생명의 소중함을 호소하는 떠돌이 개 이야기 즐거운 동화 여행 68
조희양 지음, 임종목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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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없는 개, 복이>(조희양 글 / 임종목 그림 / 가문비어린이)


요며칠 아팠다. 아플 땐 또 책 만한 위안이 없다.


학생들이 읽고 추천하는 책은 빠짐없이 읽는다. 지난 주에 초등 3학년 아이들이 꼭 읽어보시라고 권한 책인데, 그날 수업 때 구매한 책이 도착했는데, 책을 받고 앉은 자리에서 절반을, 자기 전 침대에서 나머지 절반을 읽었다. 아이들이 추천하는 책에 실패란 없다.


2023년에 읽은 수백 권의 책 중에, 읽고 눈물을 흘린 유일한 책이다. 그걸 12월에 만나다니.

게다가 초등 저학년 도서라기엔, 매우매우 깊이 있는 작품이다. 수많은 문학적 가치와 상징, 작품 속 인물들의 상황과 아픔,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까지, 어느 하나 비판할 것이 없는 완전무결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참 오랜만이다.


< #혀없는개복이 >에는 이미 제목에 주인공과 특징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이 책의 화자도 ‘복이’인데, 복이는 혀가 없다. 누군지 모르는 나쁜 사람이 복이를 잡아서 혀를 끄집어내어 잘라버린 것이다. (혀가 잘린 이야기는 두 번째다. 다른 책은 바로 < #족제비 >) 혀가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수많은 생각과 짐작이 가능하다. 혀가 없이에 말하기 어려울 것이고,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털을 다듬지 못하고, 암컷인 복이는 새끼를 낳아도 태를 벗겨내지도, 털을 고르지도, 분비물을 처리하지도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복이. 그러나 이름은 복이다. 복이 이야기를 담담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고 아파온다. 내가 고작 감기 걸리고 앓는 소리한 걸 분명 알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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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는 진 셰퍼드이지만, 떠돌이 개다. 혀가 없는 복이는, 늙은 개로부터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고, 아기에게 줄 첫 선물로 따뜻하고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으려 한다. 어느 골목을 찾은 복이는 ‘은비’라는 눈 먼 개를 만난다. 가정집 마당에서만 지내는 은비는, 복이와 아기들을 돌봐 줄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은비와 혀가 없는 복이. 이 조합은 정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 두꺼운 문을 사이에 두고, 문틈으로만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지만, 둘은 서로를 통해 큰 위안을 얻는다.


그런 복이에게 ‘숲 속 빌라’의 한 아주머니가 손을 내민다. 신기하게도 개의 말을 알아듣는 듯한 아줌마에게 고깃국을 대접받는데, 혀가 없기에 입에 물고 하늘을 쳐다보며 씹어먹어, 옆으로 음식물과 침이 줄줄 새는 복이의 침을, 아줌마는 꼼곰히 닦아준다. 복이를 병원에 데려간 아줌마는 그제야 ‘복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복이를 어떻게 돌볼까 마을 주민들이 고민하다, 결국 숲 속 빌라 지하 공간을 내어주는데, 그곳에서 복이는 세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힘겹게 새끼를 돌보는 복이. 새끼들은 쑥쑥 자라면서, 엄마 복이에게 감사해 하고, 엄마의 침을 닦아준다. 행복한 것도 잠시, 새끼들을 다 돌보기 어렵기에, 아주머니는 새끼들을 분양하고, 복이는 아픈 시간을 보낸다.


복이를 돌보는 것에 불만이 있던 몇몇 빌라 주민들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던 아주머니는, 결국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복이를 보낸다. 복이도 보고, 어머니도 자주 뵐 겸, 시골을 자주 찾는 아주머니와 복이. 둘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그리고 작가의 마을 들으며,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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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보면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지만, 삶의 진실은 본디 그런 당연한 곳에 숨어 있다. 당연하기에 잊고 살았던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새끼를 낳았지만, 태에 싸인 새끼들을 혀로 핥아 태에서 나오도록 하지 못한 복이. 아주머니가 없었다면 큰일이 날 뻔 했다. 새끼들은 곧잘 커서 그런 엄마를 돌봐준다. 자식에게 부족한 어미이고, 자식에게 도움받는 어미이지만, 그것이 가족이고 사랑임을 깊이 깨닫는다.


혀가 없기에 하늘을 바라보며, 침을 흘리며 먹어야 하는 복이는, 먹을 때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감사해한다. 빼앗긴 것에 슬퍼하는 것만큼, 가진 것에 행복하는 마음이 있다. 눈이 보이지 않지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복이를 달래주고 희망을 주는 ‘은비’는 말 한 마디가 주는 도움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숲 속 빌라 아주머니의 헌신은, 복이만이 아니라 어머니까지 바꾸어놓는다. 우리가 도움을 주면서, 정작 스스로 도움을 받았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으며 눈물을 쏟는다. 이 책이 실화이며, 작가가 복이를 되살려놓는 일이 바로 이 책이었음을 밝힌다. 도와주었지만, 도와줄 수 있었기에 감사한, 받은 것이 더 많음을 알고 작가는 고마워한다.


복이는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간다. 자신을 혐오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난하지 않는다. 자신의 혀를 자른 것이 사람이기에,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지만, 복이 또한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한다. 복이가 바라본 사람은 무엇이었을지 고민하게 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아주 아름다운 도서다.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여러 모순적인 잣대가 있지만, 그 모순을 받아들이면서도 동물과 함께 하고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것도 옳은 일이다. 아이들과 동물의 생명에 대해 함께 나눌 만한 매우 깊이 있는 책이었다.


<일곱 번재 노란 벤치>, <꽝 없는 뽑기 기계>, <리보와 앤>에게서 느낀, 아동 문학의 진수를, <혀 없는 개, 복이>에게서 또다시 발견한다. 이 좋은 책을 애들만 읽힐 순 없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수많은 어른이들이 이 책을 읽고 가슴 깊은 감동과 성장을 경험하길 바란다.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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