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사기 열전을 만나다 나의 첫 인문고전 5
장은영 지음, 임미란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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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사기 열전을 만나다>

(장은영 글 / 임미란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학생들과 오랫동안 책을 읽다 보면, 반짝 재미있지만 그 뒤로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 많습니다. 당시에는 흥미롭게 읽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거나 너무 특수한 상황을 다루기에 와닿지 않지요.


하지만 아이들 책 중에서도 십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재미있고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이 있습니다. 이런 책은 아마 수백 년에 지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읽히고 사랑받을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전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권하는 삼국지와 초한지를 비롯해, 한국고전과 세계문학은 어려워도 꼭 읽도록 강요합니다. 그 강요가, 언젠가 감사로 돌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지요.


그래서 조금 힘들어도, 독서력이 좀 부족해도, 어린이들에게 꼭 읽히는 도서가 있는데, 논어, 명심보감이 바로 그런 책입니다. 물론 어른들이 읽는 책이 아니라, 어린이의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각색된 책들을 다룹니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이제 조금 어려운 단계로 올라갈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제 여기에 한 권 더 추가될 것 같네요.


바로 <열 살, 사기 열전을 만나다>입니다.


‘어린이 나무 생각’ 출판사에서 나온, ‘장은영’ 작가가 쓴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 중 <열전> 부분을 다룹니다. 물론 열전을 제대로 다룬다면 열 권의 책도 부족할 것이기에, 친구와 가족, 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주된 내용은 3학년 ‘강동식’과 그의 라이벌 ‘우진’, 동식이가 좋아하는 ‘혜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그 속에 동식이 부모님의 빵집 ‘맛나당’과 ‘혜미’의 부모님과 할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우진이의 꿈 이야기가 겹쳐지며, 그 사이의 어려움과 갈등이 꼬이는데, <열전>의 인물 이야기로 그 매듭이 하나씩 풀리는 과정을 다룹니다.


읽다 보면, 익히 들었던 고사성어가 등장해서 반갑고, 열전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 하며 눈을 크게 뜨고 따라가게 됩니다. 아이들 사이이의 일이, 그저 아이들 일이 아닌 것이, 장사가 안 되는 빵집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고, 임대료를 내지 못해 절절매는 상황에서 부상까지 입는 아빠의 모습은, 엎친 데 덮치게 되는 우리의 삶과 비슷해서입니다. 그것이 우리 어른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숙제는 밀리고 학원에서는 꾸중듣고, 엄마에게 폰을 빼앗기는 우리 아이들의 사정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주는 것이 다름 아닌, ‘사기 특공 무술’의 관장님입니다. 이름이 믿음직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그 사기가 그 사기가 아닌 만큼, 관장님의 비술은 어쩌면 무술이 아닌 ‘사기 열전’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동화라, 아이들이 집중해서 잘 읽을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 들어간 ‘사기 열전’ 이야기도 대화 형식으로 또렷하게 풀어내어서, 두세 번 읽는 친구들이 잘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좋습니다. 중요한 내용은 여러 번 찾아봐야 하잖아요.


열 살 수준에서는 고사성어는 좀 어렵겠지만, 그래도 함께 읽는 어른이나 선생님이 있다면, 관용표현에 대해 설명하면서, 몇몇 고사성어를 소개해도 좋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 ‘열 살’을 특정하긴 했지만, 저학년에서 고학년까지 두루 읽을 만한 책입니다. 이 책 시리즈를 보니, 채근담, 논어, 목민심서, 도덕경 등 좋은 고전을 꾸준히 다루는데, 이 책을 마중물로 하여, 인문고전 시리즈를 찬찬히 읽고, 조금 두꺼워도 어린이를 위한 사기 열전 도서를 구해서 읽어보면, 더 깊은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 책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관중과 포숙처럼 타인을 이해하고, 인상여와 염파처럼 갈등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좋은 책으로 큰 깨달음을 준 ’어린이 나무 생각‘ 출판사에 고맙습니다.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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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노블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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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독자 대상 역시 그 연령대로 설정하고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작가가 일본의 유명 아이돌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이 독특했고, 문학적 가치보다는,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쉽게 읽고 수긍하도록 썼다는 작가의 말에도 수긍이 갔다. 🏅그래서 나오키 상을 받은 것이 의외라는 작가의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 이 책은 엔메이 학원 고등학교 아이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끌어가는 작품이다.


⭐️이 책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내세우는 내용이, 고등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얼터네이트’ 앱이며, 그 앱으로 자신과 딱 맞는 이성을 찾아준다는 내용을 소개하는데, 정작 이 책에는 그 내용이 ¼ 정도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표제로 밀고 있는 내용과 책의 전체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에,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흥미로웠다.


📖주요 인물로는, 요리 동아리 부장인 나미 이루루와 원예부인 반 나즈, 그리고 다라오카 나오시가 있다. 각 인물의 특징에 맞게, 이루루는 요리 대회 이야기로, 나즈는 얼터네이트 앱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나오시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책의 표제이기도 한 ‘얼터네이트’ 앱에 관한 내용이다. 고등학생들만 가입하고, 유전자를 제공함으로써 일치율을 높이는데, 나즈에게 가장 높은 일치율을 보인 가쓰라다는, 나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드는 당황하고, 급기야 앱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그 뒤로 나오는 반전에 반전은 책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루루의 ‘원 포션’ 요리 오디션 이야기는 매우 생생하다. 요리 경연대회를 하는 과정 묘사가 매우 뛰어난데, 요리 대회를 직관하는 듯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리 과정은, 정말 요리해보고 싶게 만든다. (일본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에는 이 책 구매자들에게 작품 속 요리 레시피를 주기도 했다고 하니 부럽다.)


🌲<얼터네이트>는 최근 읽은 책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책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가지고, 일어난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혹은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도 아니다.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 친구, 관계, 성장의 모습을 엿보듯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말한 대로, 뭔가 크게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친근하게 독서 경험을 해내고, 또한 자기 삶을 바라보고 잘 읽히도록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일본 원작에도 그렇게 되어 있겠지만, 인물의 성과 이름을 그때그때 따로 쓰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초반에는 누구를 말하는지 헷갈렸다. ‘반 나즈’에 대한 이야기에서, ‘반’이라고 했다가 ‘나즈’라고 하는 등, 우리 정서와 문장에는 어울리지 않아 어색했다. 


🤔독서를 통해서 더 깊이 이해하거나 나누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 다소 부족한 점도 아쉬웠다. ‘얼터네이트’ 앱은 왜 고등학생만 가능한지, 학교를 중퇴한 나오시는 어떻게 가능한지, 도대체 앱 개발회사는 왜 이렇게 하는 건지 등에 관해서 설명이 부족했다. 요리 대회 과정은 재미있지만, 왜 그 요리 대회가 중요한지, 요리부나 인물의 가족, 관계, 인물 설정에 대해서 치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산뜻하고 재미있다. 개성 있는 인물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상황으로 매끄럽게 풀어가는 점이 좋다. 훌륭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애정을 갖고 읽게끔 잘 끌어주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독서에 관한 부담이 아니라, 흥미를 유발할 책으로, 이렇게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만한 좋은 책이다.


‘얼터네이트’ 앱 또한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 앱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여지가 많다. SNS로 연결된 사람들이 정말 나와 맞는 사람인지, 그것이 진짜 관계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나즈가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가쓰라다에 대해서, 다시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관계는 누가 대신 만들어주거나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이렇게 긴 책에 자신이 없는 청소년들이 도전해볼 만한 재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22.11.20

(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쓴 글입니다.)

#소미미디어

#얼터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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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네이트 (일반판) - Alternate
가토 시게아키 지음, 김현화 옮김, 반지수 일러스트 / ㈜소미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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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독자 대상 역시 그 연령대로 설정하고 쓰지 않았나 생각한다.

🎤작가가 일본의 유명 아이돌 출신의 작가라는 이력이 독특했고, 문학적 가치보다는,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쉽게 읽고 수긍하도록 썼다는 작가의 말에도 수긍이 갔다. 🏅그래서 나오키 상을 받은 것이 의외라는 작가의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 이 책은 엔메이 학원 고등학교 아이들과 그 주변 인물들이 끌어가는 작품이다.


⭐️이 책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내세우는 내용이, 고등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는 ‘얼터네이트’ 앱이며, 그 앱으로 자신과 딱 맞는 이성을 찾아준다는 내용을 소개하는데, 정작 이 책에는 그 내용이 ¼ 정도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표제로 밀고 있는 내용과 책의 전체 분위기가 많이 다르기에,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흥미로웠다.


📖주요 인물로는, 요리 동아리 부장인 나미 이루루와 원예부인 반 나즈, 그리고 다라오카 나오시가 있다. 각 인물의 특징에 맞게, 이루루는 요리 대회 이야기로, 나즈는 얼터네이트 앱으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나오시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책의 표제이기도 한 ‘얼터네이트’ 앱에 관한 내용이다. 고등학생들만 가입하고, 유전자를 제공함으로써 일치율을 높이는데, 나즈에게 가장 높은 일치율을 보인 가쓰라다는, 나즈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 나드는 당황하고, 급기야 앱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그 뒤로 나오는 반전에 반전은 책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루루의 ‘원 포션’ 요리 오디션 이야기는 매우 생생하다. 요리 경연대회를 하는 과정 묘사가 매우 뛰어난데, 요리 대회를 직관하는 듯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리 과정은, 정말 요리해보고 싶게 만든다. (일본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에는 이 책 구매자들에게 작품 속 요리 레시피를 주기도 했다고 하니 부럽다.)


🌲<얼터네이트>는 최근 읽은 책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책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가지고, 일어난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혹은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도 아니다.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 친구, 관계, 성장의 모습을 엿보듯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말한 대로, 뭔가 크게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친근하게 독서 경험을 해내고, 또한 자기 삶을 바라보고 잘 읽히도록 만든 책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힘든 부분도 있었다. 일본 원작에도 그렇게 되어 있겠지만, 인물의 성과 이름을 그때그때 따로 쓰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초반에는 누구를 말하는지 헷갈렸다. ‘반 나즈’에 대한 이야기에서, ‘반’이라고 했다가 ‘나즈’라고 하는 등, 우리 정서와 문장에는 어울리지 않아 어색했다. 


🤔독서를 통해서 더 깊이 이해하거나 나누기 위해 필요한 설정이 다소 부족한 점도 아쉬웠다. ‘얼터네이트’ 앱은 왜 고등학생만 가능한지, 학교를 중퇴한 나오시는 어떻게 가능한지, 도대체 앱 개발회사는 왜 이렇게 하는 건지 등에 관해서 설명이 부족했다. 요리 대회 과정은 재미있지만, 왜 그 요리 대회가 중요한지, 요리부나 인물의 가족, 관계, 인물 설정에 대해서 치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산뜻하고 재미있다. 개성 있는 인물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상황으로 매끄럽게 풀어가는 점이 좋다. 훌륭한 독자가 아니더라도 애정을 갖고 읽게끔 잘 끌어주는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독서에 관한 부담이 아니라, 흥미를 유발할 책으로, 이렇게 두꺼운 책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만한 좋은 책이다.


‘얼터네이트’ 앱 또한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 앱과 관련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여지가 많다. SNS로 연결된 사람들이 정말 나와 맞는 사람인지, 그것이 진짜 관계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나즈가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가쓰라다에 대해서, 다시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관계는 누가 대신 만들어주거나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이렇게 긴 책에 자신이 없는 청소년들이 도전해볼 만한 재미와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22.11.20

(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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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 -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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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 (권정민 그림책)


세계의 여러 나라 말 중에서 시간이 식사가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밖에 없다.

아침에 아침을 먹고, 점심에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 저녁을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먹는 것을 시간과 이어놓았는데, 우리 민족에게 ‘먹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의 제목이 <사라진 저녁>이다. 표지로 보아 그 저녁은 만찬을 뜻하는 듯한데, 저녁만찬이 사라졌다면, 우리에겐 ‘저녁’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식사’는 간소함이고, ‘점심식사’는 사회적이며, ‘저녁식사’는 관계적이다. 식사별로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저녁은 가족과 같은 내 삶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한 식사다. 그런데 저녁이 사라졌다. 관계가 사라진 거다. 가족 관계와 우리 사회의 관계가.


스마트 기기가 우리 신체의 일부가 되었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치면서, 우리는 위생과 안전은 얻었지만 관계가 끊어졌다. 만남이 줄었고, 대면이 줄었고, 외식이 줄었다.


음식을 주문해도 요리사와 사장님과 직원과 배달원, 그 누구와도 만날 필요가 없어졌다. 욕구가 결과로 바로 이어지니, 그 사이의 모든 과정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으니 사라진 거라 생각했다.

책 속에서, 엘리베이터에 빼곡히 들어찬 배달 기사들이 눈물겨워 보인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곤, 폰을 만지고 기다린 다음, 현관문 밖에 놓인 음식을 갖고 오면 된다. 이웃을 만날 필요도, 씻고 나갈 필요도 없다.

그런 의미로, 그림책에서, 음식을 주문한 사람들이 현관문 조금만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제품만 들어올리는 장면이 참 인상깊다.


스마트폰을 자기에게 부착한 채 살다 보니, 우리에게 지식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눠지게 되었다. 하나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고, 하나는 언제든 찾으면 알 수 있는 지식.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고, 굽신거릴 필요도 없고, 어쩌면 배움과 읽기에서 멀어졌다. 하나도 모르지만 다 아는 것처럼 굴고, 그 어떤 논쟁에서도 지지 않게 되었다. 시간만 있다면 소크라테스에게도 말싸움으로 지지 않을 사람들이 온라인에는 널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아는 게 없다. 500년 전 조선으로 간다면, 자신이 가장 똑똑할 거라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아는 게 별로 없다. 자동차를 운전할 줄 알지만, 자동차가 어떻게 구동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고, 책을 읽을 줄 알지만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스마트폰은 누구보다 잘 사용하지만, 스마트폰 안에 무엇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코드를 꽂아 충전하지만,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선을 통해서 도대체 무엇이 오는 건지, 무엇이 충전을 가능하게 하는건지 모른다. 그저 안다고 느낄 뿐, 우리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다. 스마트폰만 들면 다 알 수 있는 지식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작품 속의 주민들이 살아있는 돼지로 요리를 준비하는 장면은 최근 보았던 수많은 책과 드라마 중에서도 우수한 촌극이라 할 만하다.

돼지를 잡으려고,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로 도축 방법과 요리법을 찾아내는데,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눈물나게 어설픈 장면이 인상깊다. 이 장면에 웃으면서도 생각한다. “웃지 마, 내 얘기야.”


마지막 장면에서, 열린 문 뒤 공간에 살짝 숨어, 그 틈으로 상황을 보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일 테다.


——-


사라진 저녁을 오게 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본다.

우리는 위기가 왔을 때 힘을 모으는 민족인데,

코로나 위기는 우리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책의 마지막 그림처럼, 돼지든 코로나든, 그 무언가가 문을 열고 나간 그 뒤에, 우리는 힘을 모아 수습하고 복구하리라 믿는다.

관계도, 만남도 수습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쌓여만 가는 1회용품들도.


스마트 기기와 발달한 사회 시스템 덕에 우리는 근사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연약함과 무뎌진 감정, 심각한 개인주의, 수동적인 태도는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숙제인 듯하다.


2022.11.16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로 쓴 리뷰임을 밝힙니다.)

#창비그림책 #사라진저녁 #사라진저녁가제본 #가제본서평단 #유아그림책 #100세그림책 #그림책추천

#권정민 #필독서 #그림책필독서 #창비그림책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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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선
티머시 내프먼 지음, 야니프 시모니 그림, 김경희 외 옮김,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 해와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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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손을 대었다 만 작품이 너무 많아섭니다.

읽은 책이란 게 고작해야 4대 비극과 5대 희극, 거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극작가의 작품을, 각색된 소설로, 그것도 요약본으로 읽는 건,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때도 있고, 자랑할 만한 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선>을 읽으며, 그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어려운 걸 억지로 읽어내기보다는,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정도면 다 읽은 거지, 라는 자신감이 드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해와나무 출판사에서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선 - 햄릿>을 보내주셨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여럿 읽고 아이들과 나누기도 하지만, 이 책은 좀 남다르네요.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하기에 내용을 모르시는 분들은 별로 없을 테지요. 그래서 이 글에서 <햄릿>의 내용은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1.구성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선 - 햄릿>은 실제 극본의 구성대로 진행됩니다. 실제 작품도 5막이며, 이 책도 5막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실제 극본의 방향과 함께 이어지지만, 정치와 종교, 심리를 끌어가는 깊이 있는 내용은 대폭 빼고, 사건 위주로 갑니다. 햄릿은 정치적이고 종교적이며 심리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추리와 복수극으로 이해될 정도로 사건 위주로 빠르게 전개됩니다. 따라서 전체 내용을 이해하고, 사건의 인과관계와 결과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상황 설명과 묘사가 구체적인 점도 칭찬할 만합니다.


2.명구절 및 삽화

“죽느냐 사느냐~”하는 명문장은, 극본으로 읽을 때, 연극으로 볼 때 느껴지는 큰 울림과 감동이 있는데, 원작에는 이런 명구절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야기 중심으로 끌어가다 보면 그런 문장과 표현은 소홀해지기 쉽지요. 출판사에서도 이 점을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품 곳곳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장과 표현, 명구절을 예쁘게 남겨놓았습니다. 함께 읽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있다면, 그 구절이 말하는 상황과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고 나누어도 좋겠습니다.


3.전문가의 설명

마지막의 작품 설명이 자세합니다. <햄릿>의 내용에 숨은 의미, 책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내용, 그리고 햄릿이 했던 행동과 결정의 이유가 드러납니다. 셰익스피어 전문가의 부연 설명을 통해서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아이들과 읽을 때는 기본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되, 햄릿의 행동을 단계별로 나누어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연극 장면

햄릿이 했던 살인과 실수, 그로 인한 사건들

햄릿이 돌아오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처참한 복수극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처받기 쉬운 요즘, 아이들은 받은 상처를 더 크게 돌려주고 싶어 하고, 상처받지 않으려 움츠려들기도 합니다.

함께 살아가면서 부딪치지 않을 수 없고 상처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충돌과 오해는 불만을 일으키고, 분노로 발전하면 사고가 납니다.

내가 가진 감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분노를 풀어내는 이성적인 힘이 필요함을 아이들과 나누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언제든 햄릿이 됩니다.

햄릿의 심리와 행동을 이해하면서,

분노에 찬 햄릿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다운 모<햄릿>을 생각하면서,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선> - <햄릿>은 초등 중학년 이상의 아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또한 세계문학을 접할 시기가 된 아이들을 둔 선생님들께서 참고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를 읽고 자유롭게 쓴 글임을 밝혀둡니다.)

2022.11.12


#처음읽는셰익스피어걸작선

#해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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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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