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사라진 세계에서
댄 야카리노 지음, 김경연 옮김 / 다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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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진 세계에서>(댄 야카리노 저 / 김정연 역 / 다봄)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책이 사라진 디스토피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탈출구


<책이 사라진 세계에서>라는 제목이 낯설지 않습니다. 어른들의 평균 독서량이 1년에 몇 권 되지 않고, 도서관을 찾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듭니다. 초등 시절 읽은 독서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청소년들도,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위한 책에만 손을 댈 뿐입니다.  이미 우리는 책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책이 들려 있어야 할 아이들에 손에 폰이 들려 있으며, 수천 년간 굳건히 지켰던 책의 지위는, 불과 10년 만에 폰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인간은 결국 이에 적응하고 살아가겠지만, 그 세상이 이전보다 더 아름다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책이 사라진 세계>는 제목처럼, 정말 책이 사라진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빅스가 사는 도시에서는 ‘눈들’이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마치 시리와 구글, 빅스비, 챗GPT처럼 공부도, 노는 것도 눈들이 돕습니다. 도와주는 눈들은, 우릴 감시하기도 합니다.


예, 낯설지 않지요? 지금도 유명 식당을 방문하고 나서면, “그 식당은 어떠셨는지?” 폰이 바로 물어봅니다. 폰은 내가 어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얼마나 운동했고 잠을 잤고 서 있었는지를 압니다. 그러고는 더 일어서라 하고, 운동하라 하고, 수분을 섭취하라고 알려줍니다. 이 책의 ‘눈들’처럼요.


빅스는 우연히 만난 찍찍이를 따라 낯선 곳으로 내려갑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지하도시에는 처음 보는 ‘책’들이 있고, ‘작품‘이 있으며,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할 것들이 잔뜩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할 것도 많고, 눈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스스로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눈들의 도움이 없이도요!


가족이 떠올라 보고 싶던 빅스비는 가족에게도 돌아갈 수 있을까요? 돌아간 빅스비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요?


이 그림책의 배경은 두 곳입니다. 눈들이 제시하고 감시하는 지상과, 눈들의 감시가 없지만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옛 도시입니다. 두 세계가 수직으로 이어졌습니다.




지상 도시는 밝고 화사합니다. 노랗고 푸른 색조를 띠며 청결하고 깨끗하며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이 아니라 그저 ‘눈들’만 바라보며 살아가고, 똑같은 옷과 모자를 씁니다. 어릴 적 가졌던 각자의 개성과 특징은 옷과 모자로 사라지고, ‘눈들’에 의해서 모두가 비슷해집니다.


그런데 지하 도시는 어둡고 우중충합니다. 검고 붉은 색조를 띠며 좀 불결하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합니다. 거미와 쥐도 있지만, 몰랐던 아름다움과 흉측함, 예술과 동물, 아름다운 음악과 장엄함이 있습니다. 이곳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저마다의 생각을 존중하며 각기 다른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돌아온 빅스가 바꿔놓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책을 읽으며, 그 변화를 직접 마주하고, 달라질 우리의 모습을 예상해 봅니다. 빅스가 가져온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더 많은 걸 ‘알고 싶어’ 하며, 언니와 세상을 구할 작전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책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책 전체를 꼼꼼히 봐야 합니다. 표지를 한참 본 뒤에, 과감하게 표지를 벗겨내면, 양장 표지에 있는 상징이 이 작품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책을 한 장 펼치면 나오는 맨 앞의 속지와 맨 뒤의 속지의 차이도 꼭 봐야 합니다. 책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변화를 보려면요!


그리고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눈들이 도와주는 지상세계와 스스로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며 알아내어야 하는 지하세계, 그리고 그 두 세계가 충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각 세계의 특징이 분명하며, 변화의 시작이 ‘책’을 통한 읽기와 생각 나누기, 그리고 마음먹기, 행동하기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삶의 주도권이 넘어오는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눈들이 알려주고 놀아주고 안내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배우고 함께하고, 함께 끌어가는 삶을 보여줍니다. 그 한 가운데에 ‘책’이 있으며, 표지에서 보이듯, ‘책’은 자기 앞의 생을 밝히는 불빛임을 깨닫습니다.


주인공 아이의 이름이 ‘빅스’인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숨겨진 커다란 잠재력과 개성을 의미하는 듯하며, ‘눈들’로 인해 우리의 삶과 행동과 사고가 재단되기에는, 우리가 가진 가치는 너무 크고 소중합니다.


이 책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은 ‘책’입니다. 읽고 생각하고, 나누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삶의 주도권을 찾는 과정이 모두 책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이 편리와 이기를 마냥 포기할 수도 없지요. 책과 폰 사이에 분명 어떤 길이 있을 것임을 믿습니다. 


유치원 아이들부터 초등생까지, 부모님과 함께 읽을 만합합니다.


2023.06.11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책이사라진세계에서

#댄야카리노

#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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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반양장) - 천 개의 종이학과 불타는 교실 창비청소년문학 118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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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이종산/창비)


종이 접기와 관련한 책은 두 번째 읽는다. 첫 번째는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인데, 이민자 어머니와 다문화 가정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중국 한 지역의 전통 문화인 종이접기에,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종이 접기에 투영한 작품이다. 두 번째가 바로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인데, 두 작품 모두 종이접기 속에 인물의 깊은 마음을 고스란히 담는다는 점에 있다.


생각해 보면, 종이접기에는 접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뜨개로 만든 엄마의 수세미에는, 한땀한땀 그 엄마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으며, 접은 종이의 겹쳐진 주름 하나마다 접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니 종이접기 이야기 속에는 꾹꾹 담아놓은 마음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신비로운 책이다. 도서실과 종이접기, 역사와 이별 이야기를 빼곡히 담았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현실에 한쪽 발을 굳건히 둔 채, 판타지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여자중학교 도서부 학생들이 종이접기를하는데, 도서실에서의 종이접기는 다른 시간대와 연결되는 열쇠다. 세연과 모모, 소라는 세연이 보았던 종이학 귀신을 조사하며, 학교의 괴담을 찾고, 그 괴담의 실체에 접근한다.


그 실체란,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야 했던 아이들이었고, 학교의 사당은 그 아이들을 기다리며 종이를 접어 태웠던, 큰 의미가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종이학 귀신은 여전히 그 아이들을 기다리며, 종이학을 태우고 있다.


초반은 공포스럽지만 진실에 다가갈수록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막연한 역사는 공포일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이야기로 역사는 현실이 되고 현재가 된다. 


종이학 접기에 이런 슬픈 의미가 담긴 줄 몰랐다. 그리움을 멀리 전하고픈 만든 이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고, 죽어서조차 기다리는 선생님의 마음을 마주하면가슴 아프다.


누군가의 말과 추억으로 들을 수 없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이제는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종이접기처럼, 차곡차곡 접어 놓고, 언제든 펼쳐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접고 펼쳐, 또 접으며 종이접기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 역사는 접고 또 펼치며 계속 이어가고, 시간을 건너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싱그러운 세 아이들의 모습과 세상과 주변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 그러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다만 도서부 선배와 지문 선생님, 즐거운 연꽃의 캐릭터 역할은 한정적이거나 축소된 느낌이다. 그리고 종이를 접고 시간을 넘나드는 그 과정과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설득력을 높였으면 어땠을까 한다.


그럼에도 책장이 잘 넘어가고, 뭔가 가르쳐려 하기보다는, 마음을 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문학이 역사 앞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며, 미스터리와 약간의 호러, 역사, 이렇게 셋이 손잡은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청소년들이나 책읽기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시작하기 참 좋은 #소설Y 클럽. 벌써 여덟 권째 책이 나오는데, SF, 판타지, 스릴러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적절한 위치를 잘 선정한 도서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아 보는 눈이 즐겁다.


2023.06.04


*본 서평은 창비 소설Y 클럽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로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도서부종이접기클럽

#소설Y

#스위치

#소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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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 (양장) 소설Y
이종산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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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이종산/창비)


종이 접기와 관련한 책은 두 번째 읽는다. 첫 번째는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인데, 이민자 어머니와 다문화 가정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중국 한 지역의 전통 문화인 종이접기에,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가 겹치면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종이 접기에 투영한 작품이다. 두 번째가 바로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인데, 두 작품 모두 종이접기 속에 인물의 깊은 마음을 고스란히 담는다는 점에 있다.


생각해 보면, 종이접기에는 접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뜨개로 만든 엄마의 수세미에는, 한땀한땀 그 엄마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으며, 접은 종이의 겹쳐진 주름 하나마다 접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니 종이접기 이야기 속에는 꾹꾹 담아놓은 마음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도서부 종이접기 클럽>은 신비로운 책이다. 도서실과 종이접기, 역사와 이별 이야기를 빼곡히 담았으면서도, 깊이가 있다. 현실에 한쪽 발을 굳건히 둔 채, 판타지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여자중학교 도서부 학생들이 종이접기를하는데, 도서실에서의 종이접기는 다른 시간대와 연결되는 열쇠다. 세연과 모모, 소라는 세연이 보았던 종이학 귀신을 조사하며, 학교의 괴담을 찾고, 그 괴담의 실체에 접근한다.


그 실체란, 일제 강점기에 강제동원되어야 했던 아이들이었고, 학교의 사당은 그 아이들을 기다리며 종이를 접어 태웠던, 큰 의미가 있던 곳이었다. 그리고 종이학 귀신은 여전히 그 아이들을 기다리며, 종이학을 태우고 있다.


초반은 공포스럽지만 진실에 다가갈수록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막연한 역사는 공포일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이야기로 역사는 현실이 되고 현재가 된다. 


종이학 접기에 이런 슬픈 의미가 담긴 줄 몰랐다. 그리움을 멀리 전하고픈 만든 이의 깊은 마음이 담겨 있고, 죽어서조차 기다리는 선생님의 마음을 마주하면가슴 아프다.


누군가의 말과 추억으로 들을 수 없는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이제는 시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종이접기처럼, 차곡차곡 접어 놓고, 언제든 펼쳐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접고 펼쳐, 또 접으며 종이접기를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 역사는 접고 또 펼치며 계속 이어가고, 시간을 건너 마주해야 하는 일이다.


싱그러운 세 아이들의 모습과 세상과 주변을 바라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 그러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다만 도서부 선배와 지문 선생님, 즐거운 연꽃의 캐릭터 역할은 한정적이거나 축소된 느낌이다. 그리고 종이를 접고 시간을 넘나드는 그 과정과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 설득력을 높였으면 어땠을까 한다.


그럼에도 책장이 잘 넘어가고, 뭔가 가르쳐려 하기보다는, 마음을 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문학이 역사 앞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며, 미스터리와 약간의 호러, 역사, 이렇게 셋이 손잡은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청소년들이나 책읽기가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시작하기 참 좋은 #소설Y 클럽. 벌써 여덟 권째 책이 나오는데, SF, 판타지, 스릴러 요소를 적절히 가미한, 적절한 위치를 잘 선정한 도서들이 계속 나오는 것 같아 보는 눈이 즐겁다.


2023.06.04


*본 서평은 창비 소설Y 클럽에서 보내주신 소중한 도서로 작성한 서평임을 밝힙니다.


#도서부종이접기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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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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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자리 별숲 동화 마을 50
박현정 지음, 김다정 그림 / 별숲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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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자리> 제목을 본 순간, 그 자리가 얼마나 클지, 혹은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커다란지 생각했다. 표지 그림은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차가 씽씽 다니는 횡단보도 한 가운데, 양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멀뚱히 서 있는 할머니. 바쁘게 살아가면서, 혹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내리쬐는 햇빛을 우선 막으며 살아내는, 할머니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해봄이 주변에 갑자기 낯선 할줌마가 나타난다. 아줌마라기엔 나이가 많고, 할머니라기엔 젊은 할줌마는 학교에서부터 해봄이를 따라온 것 같은데, 해봄이가 재영 아저씨의 킥보드에 치일 뻔한 걸 온몸으로 안아 구해준 할줌마는 양산을 검처럼 휘두르며 재영 아저씨에게 따진다. 오늘 얘가 생일인데 큰일날 뻔 했다며.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앉아 간식을 먹던 해봄이에게 다가온 할줌마는 이웃 사촌이니 한턱 쏘겠다며 간식을 사주기도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진주 목걸이를 한, 마치 여왕같은 이 할줌마는 누구일까?

 

할줌마의 집은 이미 고급 가구로 꽉 차고, 현관 복도까지 나올 정도인데, 해봄이가 가구를 중고 마켓에 팔도록 도와주면서, 할줌마의 집이 좀 정리된다. 할줌마가 고맙다며 건넨 김치와 무말랭이는, 해봄 엄마의 입맛에 너무나도 잘 맞는데, 도대체 이 할줌마는 누구일까?

 

해봄이네 엄마는 결혼을 않고 혼자 해봄이를 키운다. 모든 가정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해봄이네도 그러하다는 설명에 해봄이는 곧잘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빠에 관해, 할머니에 관해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다. 그런데 아빠는 어디에 있으며, 머나먼 남쪽에 사는 할머니는 정말 멀미 때문에 해봄이네로 오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엄마와 할머니에게는 어떤 일이 있는 걸까?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책의 내용이 뻔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흔하디흔하고 뻔하디뻔한 설정이 없다. 세상에 맞서 홀로 해봄이를 키우는 당찬 엄마, 험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세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에게서 벗어나려 외국으로 떠나버린 이모와 외삼촌.

 

엄마와 할머니의 화해 과정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을 이해하려 하는 해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엄마가 된 후에야 엄마 마음을 이해한 해봄이 엄마의 품도 따뜻하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대해서 소중한 딸만 생각했던 할머니는, 사랑하기에 옧죄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해봄이가 마음을 열길 기다린다. 상처는 곧 아물 것이고, 아픔은 점점 옅어질 테니, 남는 건 결국 사랑하는 마음 뿐일 것이다.

 

가족 이야기 중에서도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동화들이 늘 할머니의 따뜻한 품, 넓은 마음, 희생을 보여주는 데 급급했다면, 이 책 <할머니의 자리>는 할머니의 욕심으로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할머니를 다른 방향에서 보게 한다. 무조건적인 할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할머니 또한 삶을 배워가고 살아가는 어른임을 일깨운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반성하고 기다리며, 그렇게 사랑을 배워가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엄마 없는 사람은 없고, 할머니가 없는 사람도 없다.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않는 손주들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책 할머니처럼 멋진 할줌마는 아니었지만, 늘 푸근했던 우리 할머니. 나또한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살렸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게 싫었다는 게 아니고,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분유조차 먹지 못하는, 힘이 부치는 아기를 들쳐업고 이 병원 저 병원, 여러 한의원을 다니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다는 우리 할머니. 그 빈자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할머니의 자리가 그러할 것임을 잘 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품에도, 늘 할머니가 한 자리쯤 차지하면 좋겠다. 빈 자리가 아니라 꽉 찬 한 자리였으면 좋겠다.

 

초등 4학년 이하 아이들에게 매우 적극 권할 만한 도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할머니의자리

#박현정

#김다정

#별숲

#초등권장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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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괜찮아 마을에서 온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울림 장애공감 그림책
안드레스 게레로 지음, 남진희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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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마을에서 온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안드레스 게레로 저 / 남진희 역 / 한울림스페셜)


‘한울림스페셜’에서 좋은 도서를 보내주셨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여유로워지며,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책의 배경은 제목에서 볼 수 있듯, ‘그래도괜찮아’ 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에서,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명확하게 잘 드러나지요? 그래도괜찮아 마을에 사는 ‘행복한 사람’이라니. 아마 천국이 있다면, 그가 살고 있는 곳일 겁니다.




그래도괜찮아 마을에서는, 벽돌공이 짓는 집은 완성되기도 전에 무너지곤 했고, 제빵사가 갓 구워낸 빵은 며칠 지난 빵처럼 딱딱했습니다. 그 중 백미는 스쿨버스 운전기사입니다. 자꾸만 길을 잘못 든 기사는, 아이들이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사흘이 걸린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괜찮아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이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실수도 많고 못하는 것도 많지만, 늘 많이 웃고 행복했습니다. 축구 시합에서 스무 골도 넘게 먹었는데, 열다섯 골을 먹은 다음부터는 한 골을 먹을 때마다 모두 다 함께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즐기고 재미있게 시합한 일이 더 행복합니다.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안 괜찮은’ ‘안 괜찮아’ 이장님을 본 주인공은 또 다른 마을을 찾아 떠납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자신의 마을과 정반대인 ‘그러면못참아’ 마을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참 완벽하고 꼼꼼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그러면어때’만 빼고요.


주인공과 ‘그러면어때’는 결혼합니다. 주인공이 실수해도 ‘그러면어때’는 화내지 않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아니까요. 과연 두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두 사람에게서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첫째는 ‘깐깐해’, 둘째는 ‘뾰족해’입니다. 얘들이 어떨지 짐작이 가죠? 주인공과 ‘그러면어때’는 나이를 먹고도 늘 행복합니다. 어느날 뾰족해가 낳은 아이 이보르가, 자신처럼 서툰 아이라는 걸 알고, 주인공은 행복해합니다. 이보르의 삶도 행복해질 걸 알고 있습니다.


———-


책이 친절합니다. 마을과 인물의 이름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책 내용을 잘 몰라도 괜찮습니다. 이들의 이름을 읽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읽는 내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도괜찮아’ 마을의 ‘안괜찮아’ 이장님을 걱정하는 주인공은 “정말 안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요?”라고 묻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하는 말 같습니다. 매사에 신중하고 꼼꼼하고, 실수를 용납할 수 없고, 작은 실수가 커다란 흉터처럼 남는 우리에게 묻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우리는 정말 안 괜찮은데, 괜찮은 걸까요? 그래도 괜찮은데, 우리는 스스로 쳐놓은 그물에 걸린 채로 아등바등 대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의 그림도 매우 인상깊습니다. 전혀 복잡하지 않게, 단순하게 그려내면서 인물의 심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단 세 가지 입모양만으로 기분을 나타냅니다. 주인공의 입모양이 처질 때가 있는데, 아들 깐깐해가 다르팀을 204대 0으로 이겼을 때입니다. 주인공은 왜 슬퍼졌을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또 인물마다 쓰인 색의 종류에 따라 인물이 겪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인공의 옷이 딱 한 번 변하는데, 아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참 의미있는 장면이지요?


글과 그림을 읽다 보면, 이 책이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와 조금 다른 이들을 향해 있음도 깨닫습니다.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고 완벽하기 힘든 이들입니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나 경계성장애를 가진 이들,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이들 모두가 이 책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들을 보며 ‘안괜찮아’를 연발하는 모습은 우리와 꼭 닮았습니다.


——————




이 책을 읽으니, 아이들 얼굴이 많이 떠오르네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공부하고 놀다 보면, 아이들의 개성만큼이나 뚜렷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공부나 놀이를 할 때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아이들이 있는데 ‘지고는 못 사는 아이들‘입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놀이를 예로 들자면, 지고는 못 사는 아이들은 자신이 이길 때까지 놀아야 합니다. 한 번 더를 계속 외치면서, 이길 때까지 해야 하고, 이기려고 하고, 이기려고 연습하고 훈련합니다. 물론 이는 공부나 책읽기에도 적용되는데, 이 친구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을 ‘경쟁’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발짝 물러선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 친구들은 지는 것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이겨도 엄청 기쁘지 않지만, 져도 불쾌해 하지 않습니다.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친구들은 놀이를 ‘재미’로 여깁니다.


물론 지고는 못 사는 아이들과 상관 없는 아이들, 모든 아이들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지만, 대상을 대하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은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복해야 할 대상, 이겨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다른 하나는 즐거운 대상, 함께 노는 대상으로 이해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같은 일을 하는데 한쪽은 그것을 ‘경기’라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놀이’로 여깁니다. ‘경기’라 생각하는 아이는 경쟁하고 승리하려 하지만, ‘놀이’라 생각하는 아이는 즐거워하고 만족합니다.


과도하게 이분법적으로 여겨서 본다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내가 하는 일을 ‘즐기기’보다는 ‘성취’하려 노력하고, ‘행복’하려고 뭔가 시도하기보다는 ‘획득’하려고만 합니다. 이기려고, 획득하려고,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실수를 용납하기 어렵고 실패해선 안 되며, 대상을 이기고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즐기며 하는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으며, 이겨내지 못 하면 또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여깁니다. 해내지 못한 것은 ‘패배’가 아니라, 해내지 못한 한 가지 방법을 알아낸 것 뿐이지요.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요? 네,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남보다 더 앞서야 하고, 남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자신의 삶과 행복보다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그 틀과 기준에 맞추려 사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결코 한가해지지는 않습니다.


대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른데, 그것이 아이의 기질인 것 같기도 하고, 가정 환경이나 경험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모든 것의 해결방식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괜찮아’가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이 아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를 일으키고 잘못한 일에 대한 회피수단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로 여겨야 합니다. 또한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임을 알면 좋겠습니다.


———


‘그러면 어때?’

‘그래도 괜찮아.’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문입니다. 


모두가 잘난 곳에서는 서로 관심이 없습니다

모든 게 완벽한 곳에서는 서로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서툴고 모자란 곳에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집니다.

이 단순한 진실을 알아내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삶과 실수와 잘못을 범했던 걸까요?


우리 아이들은 이 진실을 품에 안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작은 책 한 권이 주는 삶의 진실을 부여잡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한울림스페셜이 선사하는 가슴을 크게 울리는 아름다운 그림 동화를 통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의 여정을 행복하게 걸어가실 거라 생각합니다.


2024.04.27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로 작성한 주관적인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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