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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자리 ㅣ 별숲 동화 마을 50
박현정 지음, 김다정 그림 / 별숲 / 2023년 5월
평점 :
<할머니의 자리> 제목을 본 순간, 그 자리가 얼마나 클지, 혹은 그 빈자리가 얼마나 커다란지 생각했다. 표지 그림은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차가 씽씽 다니는 횡단보도 한 가운데, 양산으로 얼굴을 가린 채 멀뚱히 서 있는 할머니. 바쁘게 살아가면서, 혹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내리쬐는 햇빛을 우선 막으며 살아내는, 할머니의 혼란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해봄이 주변에 갑자기 낯선 할줌마가 나타난다. 아줌마라기엔 나이가 많고, 할머니라기엔 젊은 할줌마는 학교에서부터 해봄이를 따라온 것 같은데, 해봄이가 재영 아저씨의 킥보드에 치일 뻔한 걸 온몸으로 안아 구해준 할줌마는 양산을 검처럼 휘두르며 재영 아저씨에게 따진다. 오늘 얘가 생일인데 큰일날 뻔 했다며.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친구들과 앉아 간식을 먹던 해봄이에게 다가온 할줌마는 이웃 사촌이니 한턱 쏘겠다며 간식을 사주기도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진주 목걸이를 한, 마치 여왕같은 이 할줌마는 누구일까?
할줌마의 집은 이미 고급 가구로 꽉 차고, 현관 복도까지 나올 정도인데, 해봄이가 가구를 중고 마켓에 팔도록 도와주면서, 할줌마의 집이 좀 정리된다. 할줌마가 고맙다며 건넨 김치와 무말랭이는, 해봄 엄마의 입맛에 너무나도 잘 맞는데, 도대체 이 할줌마는 누구일까?
해봄이네 엄마는 결혼을 않고 혼자 해봄이를 키운다. 모든 가정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해봄이네도 그러하다는 설명에 해봄이는 곧잘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빠에 관해, 할머니에 관해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을 테다. 그런데 아빠는 어디에 있으며, 머나먼 남쪽에 사는 할머니는 정말 멀미 때문에 해봄이네로 오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엄마와 할머니에게는 어떤 일이 있는 걸까?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책의 내용이 뻔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흔하디흔하고 뻔하디뻔한 설정이 없다. 세상에 맞서 홀로 해봄이를 키우는 당찬 엄마, 험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세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에게서 벗어나려 외국으로 떠나버린 이모와 외삼촌.
엄마와 할머니의 화해 과정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을 이해하려 하는 해봄이의 모습이 기특하고, 엄마가 된 후에야 엄마 마음을 이해한 해봄이 엄마의 품도 따뜻하다.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대해서 소중한 딸만 생각했던 할머니는, 사랑하기에 옧죄던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해봄이가 마음을 열길 기다린다. 상처는 곧 아물 것이고, 아픔은 점점 옅어질 테니, 남는 건 결국 사랑하는 마음 뿐일 것이다.
가족 이야기 중에서도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동화들이 늘 할머니의 따뜻한 품, 넓은 마음, 희생을 보여주는 데 급급했다면, 이 책 <할머니의 자리>는 할머니의 욕심으로 자식들을 힘들게 키웠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할머니를 다른 방향에서 보게 한다. 무조건적인 할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할머니 또한 삶을 배워가고 살아가는 어른임을 일깨운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반성하고 기다리며, 그렇게 사랑을 배워가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엄마 없는 사람은 없고, 할머니가 없는 사람도 없다.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않는 손주들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이 책 할머니처럼 멋진 할줌마는 아니었지만, 늘 푸근했던 우리 할머니. 나또한 어릴 적 할머니가 나를 살렸다는 소리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그게 싫었다는 게 아니고, 내가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이다. 분유조차 먹지 못하는, 힘이 부치는 아기를 들쳐업고 이 병원 저 병원, 여러 한의원을 다니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다는 우리 할머니. 그 빈자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할머니의 자리가 그러할 것임을 잘 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품에도, 늘 할머니가 한 자리쯤 차지하면 좋겠다. 빈 자리가 아니라 꽉 찬 한 자리였으면 좋겠다.
초등 4학년 이하 아이들에게 매우 적극 권할 만한 도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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