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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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2011년에 유행했던 1Q84를 시작으로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로 이어졌다가 이번에 세계의 끝과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로 네번째 만남을 이어오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왠지 판타지풍의 느낌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책의 표지 뒤에 나오는 지도역시 그런 느낌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판타지 소설은 과연 어떤 느낌일지 기대되었었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이 의뢰인을 만나러 가는 장면 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의 직업은 계산사이다. 생소한 직업이지만 정보에 대한 암호화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좀더 이해가 빠르겠다. 하지만 암호화하는 작업이 아주 생소하다. 암호라는 것이 일반인에게 생소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주인공이 처한 환경은 정보전이 치열하다. 정보를 지키고자 하는 계산사와 정보를 빼앗아 이익을 얻으려는 기호사라는 집단간의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다툼이 치열한 상태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보의 암호화에 대한 회기적인 방법이 어느 과학자에 의해 연구개발되었고 그 방법을 주인공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또 다른 세계가 소설 속에 존재한다. 그곳은 마치 완전함만이 존재하는 도시이다. 그 도시에 한 남자가 들어오게 되며 생활하게 된다. 이 남자는 도시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이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도시 특별한 곳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만이 살 수가 있고 그림자 역시 그 도시엔 가져갈 수없다.
첫번째 세계는 '하드 보일드 원더랜드'이며 두번째 세계는 '세계의 끝'이다. 이렇게 두 세계가 서로 교차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풀이는 무라카미의 여러 소설에서 발견된다. 처음엔 두 이야기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으며 서로 평행선을 달린다.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품게 만든다. 그러다 이야기가 진행 될 수록 두 이야기는 점점 가까워지다 어느 한 곳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 때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으며 그게 바로 무라카미의 힘이다.
무라카미의 소설에는 또 다른 예술작품을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1Q84의 클래식음악 야나첵의 '신포니에타'가 그러했고 상실의 시대의 '노르웨이 숲', 해변의 카프카는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가 그렇다. 하지만 이번 소설에서는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언급된다. 음악, 책, 영화의 많은 작품들이 소설 속에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두 세계를 이어주는 음악은 '대니보이' 였다. 나로서는 생소한 작품들이 많았기에 제대로 이해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소설에 나온 이런 작품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후에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무라카미의 소설은 항상 철학적이며 몽환적 느낌도 든다. 이 소설에는 이중적 세계에서의 각자 자신의 존재에 대해 묻는 것 같다.  마음을 점점 잃어가는 세계 끝의 남자는 결국에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의 주인공의 마음이자 의식이다. 그의 의식이 이런 세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내가 만든 무의식 세상에서의 '나'가 실제의 나인지 아니면 현실세계에서의 나란 존재가 실제 '나'인지 무라카미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과연 나는 마지막 세계 끝의 "남자"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결국에는 선택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을 정의해 주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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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쓰는 아이 심리백과
도리스 호이엑-마우스 지음, 이재금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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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5살 된 딸아이의 떼쓰기와 그에 따른 대응법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애 엄마가 계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대신 내가 나서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영 신통찮다. 어린이집에서나 또래 아이들이랑 놀다가 소리지르는 것을 배워오더니 떼를 쓸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한번은 훈계도중 아이가 계속 씩씩거리며 나의 말을 자르길래 '아빠가 말 다 듣고 얘기해.'라고 했더니 떼를 쓸때 뭐라고 말하기만 하면 이제 그 말을 자기가 가져다가 "내가 말하는데 왜 얘기해!" 라며 돼려 호통이다. 그러다 보니 애가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여 엄하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 엉덩이를 손으로 자국이 남게 때리기도 하였다. 되돌아 보면 그 때 감정조절을 하지 못 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때리고 난 뒤 마음 편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내가 왜 이렇게 예쁜아이에게 손찌검을 했을까? 하는 자책이 많이 들었다.

 

 이 책은 이런 힘든 상황에서 알게되어 읽게된 책이었다. 먼저 왜 아이들은 떼를 쓰는가? 애들이 떼쓰는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들이 자칫 아이의 떼쓰기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각하는 것이 '혹시 아이가 나를 골통먹이려 이렇게 떼를 쓰는 것이 아닌가?' 라든지 부모를 업신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의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된다. 그렇게 될 때 부모들은 감정에 휘둘릴 경우가 높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아이들은 그런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짜증과 신경질이 생기는 것 뿐이다. 이런 아이들의 떼쓰기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떼쓰기는 마치 꼬마 악마가 소환되어 나를 괴롭히기로 밖에 생각될 뿐이다. 이럴 때는 첨엔 아이를 달래보다가 그래도 듣지 않을 경우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한다. 아니 그냥 두라니, 그게 무슨말인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을 이끌어 내려고 많은 행동을 한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인 관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떼쓰기는 그런 부모의 관심을 먹고 더 크게 반응할 뿐이다. 하지만 무대응을 한다면? 아이는 첨에 아무런 대응이 없을때 더 격렬히 반응하겠지만 '시간이 약'이라 했던가? 부모의 관심이 자신의 떼쓰기에 쏠려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 차츰 누그러뜨리며 진정하게 된다. 이렇게 진정을 하면 그 때 가서 살며시 안아 주며 위로해 주면 된다. 하지만 떼쓰기가 너무 심한 경우에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그리고 떼쓰기의 상황들의 여러 사례를 통해 아이들과 부모들간의 상황인식 생각의 차이 등을 잘 설명해 준다. 그중에 가장 많이 공감되었던 부분이 아이에게 갑작스런 요구를 할때의 아이의 거부 반응이다. 아이가 나름 잘 놀고 있는데 예고 없이 식사, 목욕, 외출등을 해야하니 그만 놀고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아이에게 미리 5~10분전 알려주어 자기의 놀이를 마무리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중요하다. 부모의 시각에서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그날의 좋았던 기분을 단번에 망칠 수도 있는 민감한 일일 수도 있다. 우리 딸아이의 경우 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읽을땐 방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목욕을 할 때도 한 권만 더 읽고 목욕하러 가자고 이야기해서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나에겐 5분의 기다림일 뿐이지만 아이에겐 존중받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떼쓰기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다. 나야 출근하면 그 뿐이지만 아내의 경우 어린이집 갔다온 뒤 오후시간부터는 계속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은 치르는 전쟁인 것이다. 그러면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어 나에게 계속 하소연을 한다. 정말 한대 쥐어박고 싶고, 무섭게 대하고 싶기도 하다고 말이다.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할 경우나 벌이나 손찌검을 할경우의 부작용에 대해서 말한다. 애가 주눅들수 있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대할때 아이들도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대하는 부모마저도 상처로 남는 일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감정을 절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처해진 사항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것을 주문한다. 어떨때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애는 어떨때 더 짜증을 잘 부리고 떼를 쓰는지 등을 기록하면 나중에 그런 상황등을 미리 준비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또 좋은 방법으로 부모 중 나머지 한명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다른 한명에게 상황에 대한 감정이 절제된 객관적인 상황 설명을 들을 수가 있어 자신의 행동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두 방법은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모습을 배우자를 통해 알 수 있고, 반성을 할 수 있어 좋은 방법인것 같다.

 

 아직 떼쓰기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계속되는 떼쓰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으나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나의 오해들을 깨닫게 되었고 아이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직은 서투르지만 떼쓰기를 볼 때 이전보다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것도 하나의 수확이다.  떼를 쓰는 아이들을 다루는 방법은 다들 다르겠지만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나와 내 아내가 아이의 떼쓰기로 부터 조금은 더 슬기롭게 대처해서 사랑스런 아이들을 상처주지 않고, 우리도 스트레스를 최소화 하여 더욱더 건강하고 화목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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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한국 개신교의 성공과 실패, 그 욕망의 사회학
김진호 지음 / 현암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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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시사인 구독지에 2012년 한해 발간된 책을 추천하는 별간지가 있어 읽어보다 이 책을 알게되었다. 

나꼼수 멤버로 유명한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교수가 추천하는 책이었다. 예전에도 욕쟁이 예수라는 책을 트위터에 추천했길래 읽어 보니 주류시선이 아닌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예수님, 개신교에 대한 내용으로 괜찮았었다. 그런 이력이 있다보니 이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올해 첫 구매책이 되었다. 이 책은 근대 우리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한국 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객관적으로 돌아봄으로써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을 재조명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그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내가 주목하여 본점은 교회의 정치세력화와 성장주의, 배타주의에 대한 문제점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교회의 정치세력화, 우경화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일제시대에 교회가 강압적인 신사 참배의 굴욕을 겪게 되면서 이에 대한 증오심을 반공주의로 펼쳐내게 되고, 이북교회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월남하면서 더욱 심화 되었다. 특히 이북의 개신교도들은 공산주의들에 의해 강제로 재산을 몰수당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다보니 더 증오심이 커질수 밖에 없었다. 당시 기독교 교인의 숫자는 1%에 미치지 않았으나 그들의 철저한 반공주의적 이념과 이승만 정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큰 영향력이 있는 종교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러면서 교회의 정치 세력화가 시작되었고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비로서 개신교가 지나칠 정도로 반공적이고 우익적인 모습을 보이는 메카니즘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대선과정에서 불거졌던 몇몇 목사들의 극우적인 발언들, 어떤 목사가 운영한 정치 여론 형성을 위한 소위 십알단(= 나꼼수가 지칭한 '십자가 알바단')등을 바라보면 더 이상 기독교는 순수한 신앙을 가진 종교가 아닌 이익 집단화되어 지속적으로 세상을 향해 큰 목소리를 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세력이다. 다수의 목회자와 신자들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선은 권력에 붙어 있는 마치 기생충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셨을때 그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사로잡고 넘겨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지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하셔다 '독사의 자식들아' 위에 언급한 욕쟁이 예수라는 책에 따르면 "뱀새끼들아"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의 새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목회자들에게 비판의 눈길을 돌리기라도 한다면 교회 내에서 정죄를 당하게 되니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들에 실망하여 실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두번째로 주목하여 본 점은 이후 60~70년대에는 이른바 군사정부의 개발정책에 따른 사회와 맞물려 기복주의적 신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교회의 성장주의의 시작이 여기서 시작된다. 순복음 교회가 성장주의의 대표격인 교회라 할 수 있겠다. 50년대 천막교회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5~60만의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게 된다. 이런 순복음 교회의 성장을 지켜본 다른 교회들 역시 대형 교회를 목표로 성장에만 목표를 두고 다른 교회들과 경쟁하듯 지금껏 달려왔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 성장 주의에도 불구하고 1995년 이후 기독교인 수는 마이너스 성장에 그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우후죽순 생겨난 교회들로 인해 교회숫자는 많아졌지만 그 교회를 채울 신자의 수는 늘어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여 자립하지 못하는 미자립교회의 경우 목회자는 빚만 잔득지게 되고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하고 신축교회를 짓는 경우 막대한 은행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부도사태까지 나는 경우도 발생된다. 그런가 하면 각 교단에서 성장주의에 따라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했지만 이 분들이 갈 곳이 없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형교회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형교회의 경우 교회 세습의 문제도 최근에 많이 붉어지고 있으며 투명하지 않은 재정문제 등 교회 내부문제 등도 많이 발생되고 있다. 이렇듯 성장주의 및 기복신앙만 강조하다 보니 성장하지 못한 교회, 복 받지 봇한 성도는 실패자로 인식되는 시스템 속에 갇혀있는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왜 기독교가 현재 시점 대한민국에서 외면 받고 있는 종교인가에 대해서도 접근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리상 다른 종교와는 달리 배타적인 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유일신이 보내준 구원자(예수)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종교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를 통해서(=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이렇다 보니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게 되고, 무례히 행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된다.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한 목사가 사찰에 방화를 저질렀다든지, 봉은사 땅밟기 동영상 논란, 단군상 훼손 및 파괴 등과 같은 사건들과 같은 사건 등이 있다. 그리고 공공장소나 지하철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시는 분들도 가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게 한다. 그리고 각종 포탈과 신문에 목회자들의 부정과 불륜, 사고 등이 심심잖게 눈에 띈다. 그러다 보니 세상에서 교회가 당당하게 설자리를 잃어가게 되고 지탄의 대상이 되며 심지어 자신의 종교가 기독교라는 것을 숨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러한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작은 교회이다. 여기서 작은 교회란 교인들간 소통을 위한 매개장치가 필요한지에 따라 틀려진다고 말한다. 보통 중대형 교회의 경우 성별, 거주지별, 연령별등 모임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그것을 통해 소통을 하다보니 권위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 하지만 작은 교회의 경우 이런 매개장치 없이도 소통이 가능한 경우이다. 이 말은 전임 사역자와 교인들간 대면적 관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탈 권위주의적 요소가 많이 적용되어 있고 의사 결정과정에서 감성에 의한 친밀감이 깊어져 감성 공론장의 역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배에 대한 서로 간 나눔과 비판이 있어 단순히 듣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 느낌으로 확장되어 적용될 수 있어 설교가 교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런 가운데 교인들간 화합과 목회자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 지기 때문에 교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나의 경우도 위의 세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당시 목회자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가지게 되어 한동안 방황을 많이 했었고 지금은 여기에서 말하는 '작은교회' 와 비슷한 곳에서 아주 안정적으로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교회생활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눈여겨볼 중 한가지로 현재의 교파가 나뉘게 된점을 간략하게 나마 소개해준데 있다. 합동, 통합, 고려. 성결, 감리 등 한국 교회는 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어 정말 헷갈릴 정도다. 나는 처음에 고려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었는데 이 곳은 일제 때 신사참배를 하지 않는 목회자들로 구성된 교파이다. 그렇다 보니 나름 자부심이 필요이상으로 강하고 보수적인 면을 띈다. 통합과 합동은 WCC (세계기독교협의회)에 대한 가입에 대한 찬,반대로 나뉘게 된다. 교리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념의 문제로 인한 분열이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사실확인 및 배경 설명 등을 통해 그 동안 알지 못했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정보들을 알려 주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서문에 작가의 책 제목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나는 처음 이 의미가 from church(교회에서) 의 의미로 받아드렸다. 교회를 박차고 나가는 느낌?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니 to church (교회로) 로 받아드려진다. 

 

"책의 제목인 '시민K 교회를 나가다'는 중의적이다. '시민K'는 근대 한국 사회의 형성의 산물이고 동시에 형성의 주역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교회의 성도가 되었거나 교회에 호의적인 존재가 되었다. 또한 교회로 부터 떠나거나 교회에 대한 친근감을 철회한 존재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교회를 나가다' 는 말은 교회에 나가는 것이기도 하고 교회로 부터 떠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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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투압 정수기가 사람 잡는다 - 산성수 공급 20여년, 국민 건강 적신호 과학적 규명! '믿고 마신 물'이 당신의 건강을 망가뜨렸다!
손상대 지음 / 서영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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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지의 시사주간지 정치, 경제 사회부 기자를 거쳐 현재 메디팜뉴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저자는 예전 1991년 구미 두산공장에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을 취재하면서 물과의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그가 역삼투압 정수기의 문제점에 대해 단단히 이를 갈고 이책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삼투압 정수기가 지난 20년동안 보급 판매되면서 국민 건강에 막대한 해를 끼쳤다는 것이 주요 주장이다. 주장을 좀 더 살펴 보면 역삼투압방식의 정수기가 산성수를 공급함으로서 국민들의 대표적인 질병인 암유발에 기인하였다는 것이다. 

업계 1위의 정수기 업체의 마케팅 힘에 의해 이런 사실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듣기만 해도 섬찟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요즘 시대 가정마다 정수기가 없는 집이 어디있는가? 저자의 말에 의하면 시중 판매되는 80%의 정수기가 이런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보통 정수기라 함은 미세 필터를 통해 좋지 않은 물을 맑은 물로 바꿔주는 역활을 하는것이 그 기능이다. 하지만 저자는 몸에 이로운 미네랄까지 이 미세 필터에 의해 걸러짐에 따라 거의 증류수와 다름없는 산성수를 국민들이 마시고 있다는 점을 꼬집어 말한다. 그렇다면 역삼투압 방식 정수기의 문제점을 자세히 알아보자. 

 

 역삼투압 방식 정수기는 미세의 역삼투막을 이용해 물을 정수시키는 시스템으로 세규, 바이러스, 중금속등의 해로운 물질을 걸러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미네랄등 몸에 이로운 물질까지 걸러내는 효과로 해당 정수기에서 걸러진 물은 증류수에 가까우며 산성화(pH농도 5.5)되어 마시는 물로는 적절하지 못한 산성수가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의 2/3를 구성하고 있는 물은 약알카리성으로서 약 pH 7.4 정도이다. 그러니 마시는 물에 적합한 물은 우리의 몸과 비슷한 약알카리수가 적당하며 pH 농도7.0~8.5 정도이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pH농도에 대해 조금 살펴 보면, pH(수소이온농도)란 수용액의 산성, 알카리성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간단히 아래의 그림와 같이 산성~중성~알카리성이 어느 정도 수치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삼투압정수기에 의해 걸러진 물은 pH 5.5로 약 산성수에 해당한다. 정부에서는 마시는 물의 수질기준을 pH 5.8~8.5 로 정해 놓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 역삼투압정수기에서 걸러진 약산성수는 수질기준에 못 미치는 물임에도 불구하고 버젓히 정수기를 20년 동안이나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고 또 하나의 문제는 정부가 부분에 대해 해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환경부는 이들 정수기 업체에 면제부를 주기 까지 했다. 2011년 12월에 먹는 물의 수질 기준을 pH 5.8~8.5로 정하되, 샘물, 먹는 물 먹는 물 공동시설의 물의 경우에는 pH 4.5~9.5 까지로 개정을 했던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는 동떨어진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4월 울산 MBC 특집 다큐멘터리 [워터시크릿- 미네랄의 역설] 에서 인체에 해가 되는 정수기 물의 실체에 대해 과학자들과 함께 입증해 낸 방송이 있었다. 그 방송에 따르면 미네랄이 부족한 물은 당뇨에 도움이 되지 않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며 암발생률과 성인병 발생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삼투압방식의 정수기가 국민건강을 해친다는 저자의 주장과 동일하다.

 저자는 거짓된 테스트(TDS 측정, 전기분해, 시약테스트 등) 등을 통해 잘 알지 못하는 국민(구입자)들에게 수돗물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거짓 입증하면서 정수기가 필요성을 주입시켰고 그것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 어떻게 보면 국민들은 속아서 돈을 내주게 되고 몸에 좋지 않은 산성수의 물을 20년간 음용해 왔다고 이 책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역삼투압방식의 정수기뿐만 아니라 알카리 이온수기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알카리 이온수기의 경우 정식 정수기가 아니라 의료기기임에도 불구하고 버젓히 세간에 정수기로 알려져 있고 과대,허위광고등을 통해 구매자들을 우롱하고 있다. 알카리 이온수기는 의료용 물질생성기구로서 물을 전기분해하여 알카리수를 생성하는 기구이며 음용으로 위산 중화에 도움을 주는 의료기구이다. 여기서의 알카리수는 pH 9.2~9.8로 강알카리수이다. 위의 먹는 식수의 수질기준(pH 5.8~8.5)을 넘어서는 수치이다. 여기서 나오는 물은 의사와 상담후 마셔야 한다는 공지사항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위장에 효과가 좋다는 광고로만 구매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잘못 마셨을 경우 위장 내 자극을 줌으로 써 위장병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을 숨긴체 말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중동사막방식의 필터를 적용하는 정수기와 전극 약알카리수 정수기를 추천하고 있다. 단 중동사막방식의 필터의 경우 는 미네랄을 공급하기는 하지만 중금속등을 제거를 해 원수(수돗물)에서 중금속의 제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전극약알카리수의 경우 전기분해를 통해 인체와 비슷한 농도의 약알카리수를 생성함으로 제일 믿을 만한 정수방식으로 추천한다. 이에 앞서 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져야 하는 게 더 중요한 문제이다. 단순히 디자인 및 기능만을 가지고 정수기를 구매할 것이 아니라 인체에 좋은 물을 공급하는 것이 어떤 정수방식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에 맞게 정수기를 고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더나아가  환경부, 복지부 장관,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대해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현재의 먹는 물에 대한 기준에 대해 명확히 지정하고 관리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정수기에 대한 판매금지 조치등을 취해야 할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음에 따라 안타까워하고 있다.

 

 물에 대한 무지함을 일깨워 준 저자가 고맙웠지만, 이제는 물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걱정이 앞선다. 정부의 무능하고 아무런 조치가 없음에 분노하게 되었고, 앞으로 좀더 사회고발 시사프로그램 및 책들에 눈을 좀더 돌려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꼭 지난 4월 울산 MBC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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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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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처음 알게된 것은 아마도 책 표지 때문이었다. 체 게바라의 평전에 인쇄되어 있는 이미지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근대의 남미 게릴라이자 혁명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트로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이다. 스페인어로 체라는 의미는 '어이 친구', '이 봐' 라는 단순한 의미로 쿠바 혁명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체' 라는 이름은 쿠바에서는 영웅의 이름이 되었다.

 

 체 게바라는 원래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출신이었다. 하자만 어려서 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주변의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며 함께 지냈으며 많은 책들을 섭렵하였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깨어 있는(?) 집안의 환경적 요인이 혁명가 '체 게바라'를 키운 밑거름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체 게바라는 어려서부터 천식을 앓았지만 운동을 좋아했고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의사 시험에 합격한 뒤 친한 이웃 형인 알베르토와 함께 여러 나라를 오토바이 한대로 아르헨티나에서 칠레까지 (결국에는 미국까지) 거침없이 여행을 떠난 것을 보면 세상을 향한 그의 모험심과 도전정신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여행을 통해 체 게바라는 세상의 불합리한 특히 미국 자본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의 피폐해진 삶을 목격하게 되고 마음속에 그에 대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점점 확고해 지기 시작한다. 체 게바라는 의사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과테말라에서 미국 자본에 의한 군부의 쿠데타로 진보정부에 대한 몰락을 목격한 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무력 혁명을 통한 민중의 구원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런 즈음에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의 운명적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 이후 체 게바라는 혁명가으로의 삶을 살게 된다.

 1956년 12월 2일 개조한 요트인 그란마호를 통해 쿠바의 무력 혁명을 위해 86명의 혁명대원들이 쿠바로 상륙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스무명이 체 안되는 인원만 살아남게 된다. 그 인원으로 산간지역에서 게릴라 투장을 시작하게 된다. 내륙 내의 반정부 세력과의 협조와 농민들의 지지 및 참여를 통해 점점 게릴라 세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체의 의사로서의 능력과 그의 인품이 농민들의 신뢰를 받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되었다. 체는 게릴라 전투에 임하면서도 시간이 날때 마다 책을 읽었고, 게릴라 대원이나 농민들을 교육을 하기도 하였다. 언제나 원리 원칙을 강조하였고, 대장이라서 남들 보다 더 해택을 받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다 보니 피델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게 되고 결국에는 제 2인자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된다.  수도 아바나를 향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산타클라라를 체의 부대가 확보함으로써 혁명전쟁은 막바지에 이르게 되고 결국에는 1959년 1월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미니카에  망명함으로 약 2년 간의 전쟁을 끝내고 혁명에 성공을 하게 된다.

  혁명이 성공한 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총리가 되고 체는 은행 총재가 되기도 하였고, 산업부 장관이 되어 쿠바의 경제를 책임지게 된다. 쿠바의 사절단으로 세계 각 처를 돌아 다니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상급 인사들과 경제협력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계의 정세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에서의 바라보면서 쿠바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길에 대해  많은 역활을 감당하게 된다. 지리적으로 혁명에 성공한 공산국가인 쿠바가 미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미사일 사정권에 미국 본토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많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견제로 인해 쿠바의 앞날이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소련의 이해관계로 인해 우방임에도 불구하고 쿠바에 대한 견제로 인해 체는 소련만을 믿을 수만 없었다. 그러는 와중 체의 소련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인해 카스트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총재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되며 쿠바 시민권까지 내놓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혁명의 길로 떠나게 된다.

 이후 콩고에서의 혁명전쟁에 참여했다가 아프리카만의 특성을 이해부족으로 실패하게 되고 다시 볼리비아 혁명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볼리비아는 국민 혁명에 성공했다가 다시 군부 쿠데타로 인해 독재로 전복된 상태였다. 체는 라틴 아메리카 중앙에 위치한 볼리비아에서의 거점으로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혁명의 불길로 이끌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쿠바와는 다르게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내부의 배반 및 여러가지 지원에 문제가 발생되어 결국에는 고립되어 게릴라 중 6명만 생존하게 되고 나머지는 다 잡히거나 사살되고 만다. 체도 역시 붙잡히게 되고 체를 죽이기를 원하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사로잡힌지 얼마되지 않아 사살되면서 1967년 10월 9일에  39세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체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눈을 돌렸다. 집이 없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드려 재워주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억압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나라도 아닌 쿠바에 혁명전쟁에 직접 뛰어들었고 또 콩고나 볼리비아에도 참여를 했다. 습한 산간지역에 좋지 않은 환경 속에 있으면서 천식이 심해졌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다. 쿠바 혁명 성공 이후에도 성공에 따른 대가를 원하지 않고 민중과 더불어 절약하는 삶을 살았고, 직접 노동에 참여하여 본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진지하기도 하였고 언제나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근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에 말에 의하면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이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배움의 사람이었다. 게릴라 활동을 하는 가운데서도 책을 빠뜨리지 않았고 다른 나라에서의 활동 시 그곳의 언어를 습득하였다.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혜택을 받지 않았다.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활동한 이 사회주의 혁명가의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체야 말로 우리가 원하는 리더 상이라 생각이 든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 있었으며 고통과 위험을 함께 했다. 이런 리더가 함께 한다면 어떻게 따라 나서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의 첫째 딸 일디타에게 보낸 편지를 담아 본다.

 

(전략)…어른이 되었을 때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966년 2월 일디타에게 보낸 편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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