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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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처음 알게된 것은 아마도 책 표지 때문이었다. 체 게바라의 평전에 인쇄되어 있는 이미지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근대의 남미 게릴라이자 혁명가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체 게바라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트로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이다. 스페인어로 체라는 의미는 '어이 친구', '이 봐' 라는 단순한 의미로 쿠바 혁명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체' 라는 이름은 쿠바에서는 영웅의 이름이 되었다.

 

 체 게바라는 원래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출신이었다. 하자만 어려서 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주변의 어려운 친구들을 도우며 함께 지냈으며 많은 책들을 섭렵하였다. 아마도 어렸을 때의 깨어 있는(?) 집안의 환경적 요인이 혁명가 '체 게바라'를 키운 밑거름이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체 게바라는 어려서부터 천식을 앓았지만 운동을 좋아했고 모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의사 시험에 합격한 뒤 친한 이웃 형인 알베르토와 함께 여러 나라를 오토바이 한대로 아르헨티나에서 칠레까지 (결국에는 미국까지) 거침없이 여행을 떠난 것을 보면 세상을 향한 그의 모험심과 도전정신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여행을 통해 체 게바라는 세상의 불합리한 특히 미국 자본에 의해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의 피폐해진 삶을 목격하게 되고 마음속에 그에 대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점점 확고해 지기 시작한다. 체 게바라는 의사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과테말라에서 미국 자본에 의한 군부의 쿠데타로 진보정부에 대한 몰락을 목격한 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무력 혁명을 통한 민중의 구원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런 즈음에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의 운명적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 이후 체 게바라는 혁명가으로의 삶을 살게 된다.

 1956년 12월 2일 개조한 요트인 그란마호를 통해 쿠바의 무력 혁명을 위해 86명의 혁명대원들이 쿠바로 상륙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부군의 공격을 받고 스무명이 체 안되는 인원만 살아남게 된다. 그 인원으로 산간지역에서 게릴라 투장을 시작하게 된다. 내륙 내의 반정부 세력과의 협조와 농민들의 지지 및 참여를 통해 점점 게릴라 세력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체의 의사로서의 능력과 그의 인품이 농민들의 신뢰를 받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하게 되었다. 체는 게릴라 전투에 임하면서도 시간이 날때 마다 책을 읽었고, 게릴라 대원이나 농민들을 교육을 하기도 하였다. 언제나 원리 원칙을 강조하였고, 대장이라서 남들 보다 더 해택을 받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다 보니 피델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게 되고 결국에는 제 2인자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된다.  수도 아바나를 향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인 산타클라라를 체의 부대가 확보함으로써 혁명전쟁은 막바지에 이르게 되고 결국에는 1959년 1월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미니카에  망명함으로 약 2년 간의 전쟁을 끝내고 혁명에 성공을 하게 된다.

  혁명이 성공한 뒤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총리가 되고 체는 은행 총재가 되기도 하였고, 산업부 장관이 되어 쿠바의 경제를 책임지게 된다. 쿠바의 사절단으로 세계 각 처를 돌아 다니면서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정상급 인사들과 경제협력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계의 정세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에서의 바라보면서 쿠바가 앞으로 나가야 할 길에 대해  많은 역활을 감당하게 된다. 지리적으로 혁명에 성공한 공산국가인 쿠바가 미국의 바로 아래에 위치하여 미사일 사정권에 미국 본토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많은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견제로 인해 쿠바의 앞날이 그리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소련의 이해관계로 인해 우방임에도 불구하고 쿠바에 대한 견제로 인해 체는 소련만을 믿을 수만 없었다. 그러는 와중 체의 소련에 대한 강경 발언으로 인해 카스트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총재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되며 쿠바 시민권까지 내놓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혁명의 길로 떠나게 된다.

 이후 콩고에서의 혁명전쟁에 참여했다가 아프리카만의 특성을 이해부족으로 실패하게 되고 다시 볼리비아 혁명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볼리비아는 국민 혁명에 성공했다가 다시 군부 쿠데타로 인해 독재로 전복된 상태였다. 체는 라틴 아메리카 중앙에 위치한 볼리비아에서의 거점으로 라틴 아메리카 전체를 혁명의 불길로 이끌기 위해 작전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쿠바와는 다르게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내부의 배반 및 여러가지 지원에 문제가 발생되어 결국에는 고립되어 게릴라 중 6명만 생존하게 되고 나머지는 다 잡히거나 사살되고 만다. 체도 역시 붙잡히게 되고 체를 죽이기를 원하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사로잡힌지 얼마되지 않아 사살되면서 1967년 10월 9일에  39세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체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언제나 자기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눈을 돌렸다. 집이 없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드려 재워주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억압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자기의 나라도 아닌 쿠바에 혁명전쟁에 직접 뛰어들었고 또 콩고나 볼리비아에도 참여를 했다. 습한 산간지역에 좋지 않은 환경 속에 있으면서 천식이 심해졌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다. 쿠바 혁명 성공 이후에도 성공에 따른 대가를 원하지 않고 민중과 더불어 절약하는 삶을 살았고, 직접 노동에 참여하여 본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진지하기도 하였고 언제나 유머가 있는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근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에 말에 의하면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이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언제나 배움의 사람이었다. 게릴라 활동을 하는 가운데서도 책을 빠뜨리지 않았고 다른 나라에서의 활동 시 그곳의 언어를 습득하였다.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혜택을 받지 않았다. 4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활동한 이 사회주의 혁명가의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체야 말로 우리가 원하는 리더 상이라 생각이 든다. 그는 언제나 앞장서 있었으며 고통과 위험을 함께 했다. 이런 리더가 함께 한다면 어떻게 따라 나서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의 첫째 딸 일디타에게 보낸 편지를 담아 본다.

 

(전략)…어른이 되었을 때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 맞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966년 2월 일디타에게 보낸 편지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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