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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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체호프라고 불리는 트레버의 단편집 

나는 원래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데 이번에 12편의 단편을 따라 읽으면서는 이 글들이 단편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편으로 읽었다면 다 읽은 후에 마음이 너무 쓸쓸해졌을 것 같다.

그만큼 짧은데도 감정을 강하게 두드리는 문장이 많았는데
짧은 단편들을 읽으며 조금씩 쌓여가던 감정들이 마지막 단편 밀회에서 터져버려서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에도 한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계절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의 단편집으로 추천합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함께인 적 없이 함께 늙어갈 것이고 주름이 그녀의 얼굴을 상하게 할 것이며 기대의 장난으로 두 눈이 흐려질 것이다. 이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세월이 흐르면 둘은 드물었던 만남을 되돌아보며 위안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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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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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시에 관심이 생겼을 때 추천을 받아 처음으로 구입해서 읽었던 시집이 안희연 시인의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였다.

시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줬던 그 시집 이후로 이번엔 안희연 시인의 산문집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자신을 단어 생활자라고 소개한 시인은 생활 속에서 만난 단어들을 노트에 적어보기도 하고 알사탕처럼 입에 담아두기도 하다가 짧은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다.

차례 페이지에 소제목으로 쭈욱 적힌 단어들(삽수, 라페, 휘도, 잔나비걸상, 가시손, 플뢰레, 벼락닫이, 덖음, 모탕, 끗 등등)은 사실 봤을 때 바로 그 뜻이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이 더 많았는데 그래서 어떤 페이지들은 궁금함에 먼저 열어서 읽기도 했다.

📖 가장 비문학적인 단어들에서 가장 문학적인 순간을 길어 올리는 '단어 생활자' 안희연의 따뜻한 허밍

따뜻한 책 소개만큼이나 단어와 생활과 주변을 이어주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빛나는 책이다.

🔖단어 하나로도 나를 지킬 수 있다. 단어가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려 한 사람의 집이자 우주가 된다는 것. 참 따뜻한 움막이다. 뜻밖의 신비다.

🔖문학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슬픔이라고 말하는 대신 복숭아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슬픔은 안으로 감추고 복숭아 이야기만 실컷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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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 - 게임에 대해 궁금하지만 게이머들은 답해줄 수 없는 것들
최태섭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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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가 쓴 게임 설명서라니 책 소개부터 흥미로웠다.

아이에게 조금 일찍 스마트폰을 사줬고 게임을 하는 것도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이제는 특별한 날이 되면 선물로 현질을 해달라고 하고 게임 방송도 즐겨 본다.

처음부터 무조건 못 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너무 모르는 세계에 아이가 깊숙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밖에서 지켜만 보고 있자니 엄마의 마음은 자꾸만 불안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상대를 잘 모르면 오해할 가능성이 커지고 폄하하기는 더 쉬워진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대체 게임이 뭔지. 어떻게 하는거고 왜 그렇게들 열광하는지.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게임에 대해 정말 쉽게 기초부터 설명되어 있어서 이해하기에 편했다.

RPG가 롤플레잉게임의 약자인 것도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게임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은 갖추게 된 느낌이 든다. 게임 광고 영상에서 나오던 단어들이 이런 뜻이구나. 아이가 하는 게임은 이런 종류에 속하는 게임이구나. 이런 수익 구조니까 현질을 하게 되는구나.

게임에 대해 조금 이해했다고 해서 게임 하는 아이가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상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걱정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서 내가 책을 읽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게임이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까지는 온 것 같다.

특히 게임 속에 내제된 인종, 인권, 성차별 등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마지막장은 사회학자의 통찰력이 잘 느껴져서 인상깊었다.

게임에 대해, 게이머들에 대해 쉬운 설명으로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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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밤의 애도 -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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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많은 책이나 자료들이 자살을 선택한 당사자에 초점을 두는데 이 책은 그 후에 남겨진 자살 사별자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조모임 속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살 사별 애도 상담 전문가 고선규 박사와 자살 사별자 다섯 명이 함께 만든 '애도 안내서'

그동안은 자살과 관련된 뉴스를 접하면 남겨진 가족들의 심리적인 고통만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는데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에게 사인을 밝힐 것인가에 대한 고민, sns 계정부터 시작해서 온라인상에 있는 수많은 그 사람의 흔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 사람의 물건들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등등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현실적인 문제들도 모두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요즘은 자살 사별자를 위한 자살 유족 원스톱 서비스 센터나 정신건강센터가 운영하는 자조모임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직은 운영 지역이나 프로그램이 한정적인 것 같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예산과 지원이 더 확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끼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자살 사별자로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인 충격과 함께 사유에 대한 고민과 후회까지 더해져 시간이 시간이 많이 흘러도 여전히 그때 그 순간, 그 장소에 계속 묶여있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온전한 애도'이다.

🔖꾹꾹 눌러 담아놓은 고인의 이야기 상자를 열어 회피하거나 미뤄왔던 애도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잃은 것을 아파하느라 다시 또 많은 것들로부터 멀어지지 않길 바란다.

자살 사별자들에게는 온전한 애도의 계기가 되고, 자살 사별자 곁의 사람들에겐 그들의 아픔과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통해 정확한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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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어둠 - 극단주의는 어떻게 사람들을 사로잡는가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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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잠입 취재는 마치 스릴러처럼 읽힌다.
이것이 이 책을 정확하게 표현한 한줄평이라고 생각한다!

반극단주의 단체에서 일하는 이 책의 저자는 10여 곳의 극단주의 단체에 잠입하여 극단주의가 어떻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고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현대사회의 시스템에 맞춰서 적응하고 퍼져나가는지를 세세하게 밝혀낸다.

국적, 나이, 성별 등을 계속 위장해가며 10여 곳의 극단주의 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이야기는 정말 스릴러 소설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슬람 지하디스트, 기독교 근본주의자, 백인 민족주의자, 여성혐오주의자 같은 단체들에 신분을 속이고 가입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심장 떨리는 일인데 저자는 중간에 신분이 노출되어 수많은 위협을 받기도 하고 극단주의자들의 협박을 못 이긴 회사의 결정에 따라 직장에서 해고가 되기도 하지만 이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들을 과격하고 막무가내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가지고 있었는데 책에서 알려주는 그들의 최근 모습은 유튜브,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빅테이터 등을 적극 활용해서 훨씬 세련되고 체계적인 형태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그들끼리의 연대도 공고히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몇 해 전 각국의 어린 학생들이 IS에 지원해서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으면 누구라도 한순간에 그들의 덫에 걸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수법을 잘 알아야 그만큼 잘 피할 수 있을테니까!

오랜만에 읽은 인문사회과학분야 책인데 스릴러소설 읽는 느낌으로 읽게 되는 부분이 많아서 읽기에 전혀 어렵지 않았고 예전부터 '저 사람들은 대체 왜...'라고 궁금했던 것들을 많이 해소시켜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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