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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 - KBS <환경스페셜> 김가람 PD의 기후 위기 르포
김가람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4월
평점 :
오늘 저녁으로 나는 옷을 먹었다.
몇 년 전, 옷 무덤이라 불리는 가나의 옷 폐기물 더미에서 풀 대신 옷을 뜯어먹는 소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내가 그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 당신도 옷을 먹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합성 섬유로 만든 옷을 사고 버릴 때마다, 세탁하고, 생활하는 순간마다, 미세플라스틱은 수만 개씩 자연으로 배출된다. 그렇게 배출된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을 타고 돌아와 조용히 내 몸속에 쌓여간다. 옷을 뜯어먹는 소를 먼 나라의 안타까운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는 저자인 김가람 PD님이 KBS <환경스페셜>을 제작하며 취재한 내용들을 앞부분에 먼저 소개하고, 기후 위기의 경제적 불평등을 꼬집은 후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환경 분야의 책을 해마다 한 권 이상 읽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새롭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 지구에는 반갑지 않은 소식들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고 있었고, 저자가 직접 취재한 이 ‘진짜’ 이야기들은, 이제 이런 이야기에 익숙하다고 생각한 나에게도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감정적 호소에 그치지 않고 경제 논리로 환경 문제를 풀어냈다는 점이다.
책에 따르면 지금처럼 탄소를 배출하면 세기말에는 세계 GDP의 20%에 이르는 자산이 사라지고, 2048년 한국의 GDP 손실은 12.8%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그리고 망가진 환경으로 인해 우리가 각자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이보다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팜나무를 심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숲을 파괴하는데, 세계 육지의 3%에 불과한 이 땅은 지구 토양이 저장하는 탄소의 30%를 품고 있다. 기후 변화가 세계 경제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누가 보아도 이 숲을 태우는 건 비효율적인 개발이다.
과잉 생산한 후 기한 안에 팔리지 않으면 폐기해 버리는 옷과 음식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업들은 그 폐기 비용까지 물건 가격 책정에 선반영하고 있고, 우리는 구매하지도 않은 물건의 폐기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만들어낸 쓰레기는 시골로 향하고, 선진국에서 만들어낸 탄소는 개발도상국으로 가서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기후 위기마저도 경제 논리 안에서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공기와 바닷물의 이동에는 국경이 없기에, 그렇게 눈앞에서 치워버린 쓰레기가 결국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환경 문제들을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은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를 멈추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과잉 생산과 소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기업, 국가가 늘고 있다.
환경 문제 해결에 작은 손을 보태는 개인이 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한 기업들이 제품을 개선하고, 마라톤 대회에서 다회용 컵을 사용하고, 마트에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을 버리는 대신 기부하도록 법을 제정한 나라가 생겨나고 있다. 지구 곳곳의 노력이 모여 큰 흐름으로 합쳐지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 연합은 1990년보다 경제 규모가 66% 커졌음에도 탄소 배출량은 30%나 줄었다고 하니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다.
여전히 지구는 데드라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그 속도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진짜 지속 가능한 지구’로 방향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노트북으로 쓰는 중에 업데이트 지원 중단 알림 창이 떴다. 예전 같았으면 ‘8년이나 썼는데 이참에 새 노트북을 사볼까’ 했겠지만, 이제는 불필요한 파일들부터 정리해 본다. 지금까지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는 노트북인데, 잘 관리해서 조금 더 써보는 것이 나의 경제 상황에도, 지구 환경에도 더 좋은 일이 될 테니까.
🔖돈을 내고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자유, 그 허무함을 깨닫자 다른 자유가 보였다.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고 실천하는 자유다. 나에겐 더 이상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은 사람과 안전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자유보다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지구>는 환경 문제를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이해하게 해주는 책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전달하며, 실천할 이유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책을 추천할 수 있어 기쁘다.
@rhkorea_books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아 읽은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