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끝, 파랑
이폴리트 지음, 안의진 옮김 / 바람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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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폴리트의 그래픽노블 <지중해의 끝, 파랑> 읽었다. 원제는 <Le murmure de la mer(바다의 속삭임)>. 리비아 북쪽 지중해 해역에서 바다로 도망치는 난민들을 구조하는 인도주의 기구 ’SOS 메디테라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들은 2015년부터 2024년 1월까지 39191명을 구조했고, 그 사이에 수만 명의 난민이 죽었다고 추정한다. 구조한 사람의 숫자는 구체적이고, 죽은 사람의 숫자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작가는 난민 구조선에 탑승하여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림을 그리고, 구조작업을 함께했다. 밤중에도 난민의 배를 발견하려고 바다를 향해 눈을 부릅뜨면서. 그 눈빛. 굳센 의지보다 공허함이 담긴 활동가들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4만 명을 구조해낸 성과보다 눈앞에서 익사했던 난민 하나의 얼굴을 기억하는 눈빛. 내가 아는 활동가 아무개도 세상에 외면당하고 동시에 눈앞의 개인 하나를 구해내지 못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동안 눈빛이 변해갔다. 훌륭한 성과를 냈는데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면서. 책에서는 ’많은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난민과 활동가 모두를 설명하는 데 쓰였다. 활동가의 성과도 그렇고, 아들과 단둘이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하는 난민의 희망도 그렇고.
그러니 활동가에게도 구조가 필요하다. 이폴리트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균형을 찾아가도록 돕는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다행일 텐데.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오래 바라보면서 손쉬운 해결을 구하지 않고 살아가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좋아하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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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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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책은 무척 많습니다. 다만 어떻게 역설하는지에 차이가 있는데 <마이그레이션>은 멸종해가는 동물에 대해 덜 말하는 방식으로 멸종해가는 동물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어서 이 점이 재미있어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직접 뒤따르는 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나'를 통해 전해지는데 '나'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고, 정서가 불안정해 보이고, 이 여정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도 못해요. 이런 '나'의 위험천만하고 독특한 여정에 몰입하려면 당연히 그 여정이 독자가 납득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주인공이 북극제비갈매기를 탐구하여 흥미로운 발견을 한다든지 실용적인 연구를 해낸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북극제비갈매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새삼 부각시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 고생스런 여정도 의미있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 방식을 의도적으로 회피합니다. 소설 전체에서 북극제비갈매기를 서술하는 부분은 매우 적고, 대부분의 분량에서는 주인공인 '나'의 경험과 감정을 서술하고 있어요. 이 점이 재미있는데, 이 여정의 필요성을 서술하는 대신에 '나' 자신을 북극제비갈매기와 동일시하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왜 이렇게 고생스런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가'에 굳이 답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와 북극제비갈매기를 하나로 묶는 이런 방식은 다른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나'는 환경을 보호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인물로 묶이기도 합니다. '나'는 멸종해가는 동물을 지키려는 입장에서 살아왔지만 한순간에 동물을 공격하는 입장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이야기 속에서 환경보호와 환경개발의 구분 속에서 손쉽게 선악을 가르지 않는 태도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어쩌면 정답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려는 인물들을 공격하는 데 있는 게 아닌지도 몰라요. 대상화 자체를 최대한 회피하려는 노력 속에 해결책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멸종해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사실 나의 멸종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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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 펭귄클래식 131
주희.자사 지음, 최영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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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에 나는 대학원에서 고전 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첫 학기에는 논어, 맹자를 비롯한 여러 동양 고전들을 공부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백성들은 다만 제 먹을 것만을 염려한다."는 구절을 읽었다. 기분이 살짝 상한 나는 책을 들고 교수님께 찾아가서 "백성들을 너무 폄하한 게 아닐까요." 하고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먹을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책임지는 위정자가 얼마나 되겠니."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당시는 미국산 쇠고기로 촛불 시위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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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펭귄클래식 123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송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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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는 일찍이 ‘고전이란 무엇인가?’라는 따분한 질문에 대해 ‘처음 읽지만 언젠가 읽었던 것 같은 책이자 여러 번 읽지만 처음 읽는 것 같은 책’이라는 발랄한 답변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때로 사람들은 책에서 만난 낯설고 기괴한 인물이 곁에서 알던 그 누군가인 것만 같은 기분에 빠진다.

<카르멘>과 <콜롱바>를 읽으면서도 나는 어디선가 이런 여자를 만났던 것 같은, 그리고 이런 사랑을 경험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의 훌륭함이 아닐까? 그런 인물에게 매력을 느끼는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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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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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시절에 내가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프랑스 소설을 좋아했다. 함께 커피를 마시는 동안 파트릭 모디아노나 장 그르니에 같은 이름들을 즐거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곤 했고, 나는 프랑스인의 이름을 발음하는 여학생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나는 도서관에 쳐박혀서 모파상과 플로베르부터 르 클레지오와 미셸 투르니에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제 그 여학생의 소식은 들을 길이 없고 어떻게 연락이 끊어졌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 사들인 프랑스 소설들은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다.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도 그때 읽었다. 끔찍할 정도로 재미없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지만 좌우지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집어던졌다. 집어던졌다는 것은 그 여학생에게는 물론 비밀이었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최근에 <사물들> 새 책을 얻게 되어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신기한 일이다. 막히는 부분도,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다. 어쩌면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물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여학생은 당시에 벌써 <사물들>을 충분히 감상했던 걸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러니, 10년 후에 다시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물들>은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좀더 길게 말하면, 인간을 멸시하는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백화점에 가면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살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게 되지 않는가? 다만 이런 와중에 편하게 ‘인간다움’에 호소하거나 ‘물질 문명을 비판’하는 길을 택하지 않은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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