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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ㅣ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대학생 시절에 내가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프랑스 소설을 좋아했다. 함께 커피를 마시는 동안 파트릭 모디아노나 장 그르니에 같은 이름들을 즐거운 목소리로 이야기하곤 했고, 나는 프랑스인의 이름을 발음하는 여학생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나는 도서관에 쳐박혀서 모파상과 플로베르부터 르 클레지오와 미셸 투르니에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제 그 여학생의 소식은 들을 길이 없고 어떻게 연락이 끊어졌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 사들인 프랑스 소설들은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다.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도 그때 읽었다. 끔찍할 정도로 재미없다는 것이 솔직한 감상이었지만 좌우지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집어던졌다. 집어던졌다는 것은 그 여학생에게는 물론 비밀이었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최근에 <사물들> 새 책을 얻게 되어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찌된 일인지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신기한 일이다. 막히는 부분도, 거슬리는 부분도 없었다. 어쩌면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물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여학생은 당시에 벌써 <사물들>을 충분히 감상했던 걸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러니, 10년 후에 다시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물들>은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좀더 길게 말하면, 인간을 멸시하는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이다. 백화점에 가면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살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확인하게 되지 않는가? 다만 이런 와중에 편하게 ‘인간다움’에 호소하거나 ‘물질 문명을 비판’하는 길을 택하지 않은 점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