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그레이션 - 북극제비갈매기의 마지막 여정을 따라서
샬롯 맥커너히 지음, 윤도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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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책은 무척 많습니다. 다만 어떻게 역설하는지에 차이가 있는데 <마이그레이션>은 멸종해가는 동물에 대해 덜 말하는 방식으로 멸종해가는 동물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어서 이 점이 재미있어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북극과 남극을 오가는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직접 뒤따르는 한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나'를 통해 전해지는데 '나'는 전문 연구자도 아니고, 정서가 불안정해 보이고, 이 여정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도 못해요. 이런 '나'의 위험천만하고 독특한 여정에 몰입하려면 당연히 그 여정이 독자가 납득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선 주인공이 북극제비갈매기를 탐구하여 흥미로운 발견을 한다든지 실용적인 연구를 해낸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북극제비갈매기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새삼 부각시킬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 고생스런 여정도 의미있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 방식을 의도적으로 회피합니다. 소설 전체에서 북극제비갈매기를 서술하는 부분은 매우 적고, 대부분의 분량에서는 주인공인 '나'의 경험과 감정을 서술하고 있어요. 이 점이 재미있는데, 이 여정의 필요성을 서술하는 대신에 '나' 자신을 북극제비갈매기와 동일시하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왜 이렇게 고생스런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가'에 굳이 답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와 북극제비갈매기를 하나로 묶는 이런 방식은 다른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나'는 환경을 보호하는 입장에 서기도 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인물로 묶이기도 합니다. '나'는 멸종해가는 동물을 지키려는 입장에서 살아왔지만 한순간에 동물을 공격하는 입장에 놓이기도 하지요. 이런 이야기 속에서 환경보호와 환경개발의 구분 속에서 손쉽게 선악을 가르지 않는 태도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어쩌면 정답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려는 인물들을 공격하는 데 있는 게 아닌지도 몰라요. 대상화 자체를 최대한 회피하려는 노력 속에 해결책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멸종해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사실 나의 멸종에 대한 이야기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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