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문제에서 블루 택시의 기저율은 그 도시에서 운행하는 택시에 관한 통계적 사실이다. 인과관계 이야기에 굶주린 사람이 이러니저러니 할 만한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 도시에서 운행되는 그린 택시와 블루 택시 수가어떻게 뺑소니의 원인이 될 수 있겠는가? 반면에 두 번째 문제에서는 그린 택시 기사가 블루 택시 기사보다 사고를다섯 배 넘게 많이 낸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하잖은가. 그린 택시 기사들은 무모한 미치광이 집단이 틀림없다! - P254
이 두 가지 기저율 정보는 다음과 같이 달리 취급된다. . 통계 기저율은 해당 사례와 관련한 특정 정보가 있을 때도 흔히 과소평E가되고, 더러는 아예 무시된다. 인과관계 기저율은 해당 개별 사례와 관련 있는 정보로 취급되고, 다른개별 사례 정보와도 쉽게 결합한다. 인과관계가 담긴 두 번째 택시 문제에는 그린 택시 기사가 위험하다는 전형성이 담겼다. - P255
인과관계 상황
아모스와 나는 택시 문제의 여러 변형을 만들었지만, 인과관계 기저율이라는 막강한 개념을 만들지는 못했다. 이 개념은 심리학자 이체크 아이젠lock Aizen에게서 빌려왔다. 아이젠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예일대학에서 시험을 치른 일부 학생들을 묘사한 짧은 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각 학생이 시험을 통과했을 확률을 추정해보라고 했다. - P257
똑같은 학생들을 두고, 참가자 한 부류에게는 그들이 75퍼센트가 시험을 통과한 집단에서 뽑혔다고 하고, 다른 부류에게는 25퍼센트만 통과한 집단에서 뽑혔다고 했다. 이 조작의 위력은 대단했다. 25퍼센트만 통과했다면 시험은 분명 심각하게 어려웠을 거라는 즉각적인 추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P257
아이젠은 기발한 방법으로 인과관계와 무관한 기저율도 제시했다. 참가자들에게, 문제에 묘사된 학생들은 시험을 통과한 학생과 통과하지 못한 학생을 의도적으로 선별해 만든 표본에서 뽑혔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테면 시험 통과율이 낮은 표본에 대한 정보는 아래와 같이 제시했다.
연구원은 주로 실패 원인에 관심이 있어서, 75퍼센트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학생들로 이루어진 표본을 만들었다. - P258
심리는 학습될 수 있는가?
미시간대학의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Richard Nisbett과 그의 제자 유진보기다 Eugene Borgida는 오래전에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이들은 학생들에게, 뉴욕대학에서 몇 해 전에 실시한 유명한 ‘도움 실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1인용 부스에 들어가 인터폰으로 사적인 생활과 문제를 이야기해보라고 한 실험이다. 이들은 차례로 약 2분 정도 이야기했다. - P259
실험 참가자들은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 이들은 자기들 중 한 사람이 발작을 일으켜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요청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이니, 나는 안전하게 부스에 남아 있자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랬다. 참가자 열다섯 명 중에 네 명만이 도움에 즉시 응답했다. 여섯 명은 아예 부스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섯 명은 발작을 일으킨 사람이 질식한 게 분명하다 싶을 때가 되어서야 나왔다. - P260
‘도움 실험을 읽으면서, 나라면 그 낯선 사람을 곧바로 도와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작을 일으킨 사람 주변에 나밖에 없다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각이틀린 모양이다. 내 주변에 그를 도와줄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나는 나서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있으면 내 책임의식이 생각보다 많이 약해질수도 있겠다.‘ - P260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은 바꾸기 어렵고, 자신을 더 나쁜 쪽으로 생각하기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렵다. 니스벳과 보기다는 학생들이 그런 변화도 거부하고, 달갑지 않은 상황도 외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이 내용으로중간고사라도 본다면, 학생들은 도움 실험의 자세한 내용을 암기할 수 있고, 또 얼마든지 그러려고 할 것이며, 책임 분산이라는 말로 ‘공식적인‘ 해석도 거듭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인간 본성에 관한 이들의 믿음이 정말 바뀔까? - P261
니스벳과 보다는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인터뷰 동영상을 보여주고 두 사람의 행동을 예측해보라고 했다. 이때 첫 번째 집단에는 도움 실험의 과정만 알려주고, 결과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학생들은 인간 본성에 관한 자신의 생각과 그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을 예측했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이들은 두 사람 모두 낯선 사람을 도우러 곧장 달려갔으리라고 예측했다. - P262
대단히 중대한 결론이다. 인간 행동과 관련해 놀라운 통계를 배우고 거기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그 사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각이 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심리학을 제대로배웠는지 알아보려면,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 시각이 달라졌는지를 봐야지, 단지 새로운 사실을 알았는지를 봐서는 안 된다. - P264
1970년대 초 어느 날, 아모스는 내게 등사기로 찍은 논문을 건네주었다. 스위스 경제학자 브루노 프레이 Bruno Frey가 경제 이론을 다루면서 사람의 심리를 단정해 말한 글이었다. 논문의 검붉은 표지 색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브루노 프레이는 그 글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첫 문장을지금도 외울 수 있다. "경제 이론에서 행위자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취향은 바뀌지 않는다." - P397
아모스는 내게 프레이의 논문을 보여준 뒤 곧바로 의사 결정을 다음 프로젝트 주제로 삼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 주제에 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그 분야 전문가이자 스타인 아모스가 코치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아모스는 대학원생 때 이미 심리학 교재인 《수리심리학 Mathematical Psychology》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그는 그 책에서 내게 좋은 지침이 될 부분을 알려주었다.¹ - P398
1 Clyde H. Coombs, Robyn M. Dawes, and Amos Tversky, (+ EMathematical Psychology: An Elementary Introductio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70). - P699
이 분야에도 이론이 있다. 기대효용이론expected urility theory인데, 합리적행위자 모델의 기초가 된 이론이며, 오늘날까지도 사회과학에서 가장 중요한이론으로 꼽힌다. 기대효용이론은 심리학 모델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합리성이라는 기본 규칙(공리)을 토대로 한 선택 논리였다. 다음 예를 보자.
바나나보다 사과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바나나를 얻을 확률 10퍼센트보다 사과를 얻을 확률 10퍼센트를 선호할 것이다. 사과와 바나나는 (도박 등에서) 선택 대상을 나타내고, 10퍼센트는 확률을나타낸다. - P399
그리고 판단을 연구할 때 그랬듯이, 우리 자신의 직관적 호불호를 자세히 살폈다. 우리는 단순한 결정 문제를 만들어,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자문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음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A.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00달러를 받고 뒷면이 나오면 한 푼도 받지 않는다. B. 무조건 46달러를 받는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떤 선택이 가장 합리적이거나 가장 이익인가가 아니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직관적으로 즉시 마음이 끌리는지 알고 싶었다. 우리는 거의 항상 같은 선택을 했다. - P400
우리는 도박을 연구한 지 5년이 지나 마침내 <전망 이론: 위험 부담이 따르는 상황에서의 결정 분석 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Risk)이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우리 이론은 효용이론을 본떴지만, 근본적인 방식에서 효용이론을 탈피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 모델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도박에서 선택을 할 때 합리성이라는 공리가 체계적으로 무시되는 현실을 기록하고 설명하는 것이었다. - P401
베르누이 오류
페히너도 익히 알았지만, 심리적 세기와 자극의 물리적 크기를 연관시키는 함수를 찾으려 했던 사람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스위스 과학자 다니엘 베르누이 Daniel Bernoulli는 1738년에 페히너의 추론을 앞질러, 같은 논리를 심리적 가치 또는 돈의 만족도(요즘 말로 하면 ‘효용‘)와 실제 금액의 관계에 적용했다. - P402
베르누이는 심리학적 혜안으로 부의 효용을 들여다보면서, 당시 수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였던 도박 평가를 급진적이고 새로운 방법으로 바라보았다. 베르누이 이전 수학자들은 도박은 기댓값으로 평가된다고 생각했다. 기댓값은 가능한 여러 결과에 각각의 확률로 가중치를 부여해 계산한가중평균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00달러를 딸 확률은 80퍼센트이고 10달러를 딸 확률은 20퍼센트일 때, 기댓값 = 100×0.8+10x02=82달러
이제 다른 질문을 생각해보자. 위의 도박을 하든, 무조건 80달러를 받든,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 P403
베르누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거의 다 위험(가능한 결과 중 최악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싫어한다. 도박을 할지, 도박의 기댓값과 같은 금액을 무조건 받을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무조건 받는 쪽을 택할 것이다. 실제로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받는 액수가 기댓값보다 적어도 무조건 받는 쪽을 택하는데, 불확실성을 피하려고 웃돈을 내는 셈이다. - P404
간결하고 탁월한 베르누이의 논문은 경이롭다. 그는 기대효용(당시 그의 표현으로는 "개연적 기대")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이용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상인이 암스테르담에서 향신료를 싣고 오는 선박에 웃돈으로 얼마를 기꺼이 지불할지 계산했다. 단, "이 상인은 당시 암스테르담에서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는 선박 100척 중에 다섯 척꼴로 실종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베르누이는 가난한 사람은 왜 보험을 들고 부자는 왜 그들에게 보험을 파는지를 효용함수로 설명했다. - P405
그런데 베르누이 이론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베르누이 이론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 더욱 놀랍다. 어떤 이론의 오류는 대개 그것이 드러내놓고 주장하는 내용보다는 그 이론이 간과하거나 암묵적으로 단정한것에 숨어 있다. 이를테면 다음 시나리오를 보자.
오늘 잭과 질의 부는 각각 500만이다. 어제 잭의 부는 100만, 질의 부는 900만이었다. 현재 둘 다 똑같이 행복할까? (둘 다 똑같은 효용을 가지고 있을까?)
베르누이 이론은 부의 효용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잭과 질은 현재 부가 같으니, 베르누이 이론대로라면 둘 다 똑같이 행복해야한다. - P406
베르누이 이론이 놓친 부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로, 아래 앤서니와 베티를 보자.
앤서니의 현재 부는 100만이다. 베티의 현재 부는 400만이다.
두 사람은 현재의 부를 걸고, 도박을 할지 무조건 돈을 받을지 선택해야한다.
도박: 100만을 받을 가능성과 400만을 받을 가능성은 50 대 50이다. 무조건 받기: 무조건 200만을 받는다.
베르누이의 설명에 따르면, 앤서니와 베티 앞에 놓인 선택은 똑같다. 예상되는 두 사람의 부는 도박을 한다면 250만이고, 무조건 돈을 받기로 한다면 200만이다. 따라서 베르누이는 앤서니와 베티거 같은 선택을 하리라고 예상했겠지만, 그 예상은 옳지 않다. - P407
앤서니와 베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현재의 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두 사람은 아래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앤서니(현재 부는 100만): ‘무조건 받는 쪽을 택하면 내부는 틀림없이 두 배가 된다. 몹시 구미가 당긴다. 그렇지 않고 도박을 택하면 내 부가 네 배가 될 가능성과 한푼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반반이다.‘
베티(현재 부는 400만): ‘무조건 받는 쪽을 택하면 나는 틀림없이 부의 반을 잃는다. 끔찍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 도박을 택하면 내 부의 4분의 3을 잃을 가능성과 한푼도 잃지 않을 가능성이 반반이다.‘
앤서니와 베티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무조건 200만을 받기로 선택하면 앤서니는 기쁘지만, 베티는 비참하다. - P408
이 모든 오류는 다소 뻔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당연히 베르누이도 직접 비슷한 예를 만들어 그것을 포괄하는 좀 더 복잡한 이론을 개발했으려니 생각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그런 이론을 개발하지 않았다. 아니면당시 동료들이 그의 이론에 반대했거나 훗날 학자들이 그의 논문을 읽고 무시했겠거니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런 사람도 없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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