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장 N선을 둘러싼 과학 사기극

개성의 충돌은 과학 사상의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마땅히 특별사례가 아니라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 규칙이 생물학의 역사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 것이다.
마이클 기셀린(Michael Ghiselin, 1939-2019) - P393

1903년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인 르네 블론로(René Blondlot, 1849~1930)는 1897년 영국 물리학자 러더퍼드가 발견한 알파선과 베타(B)선, 프랑스 물리학자 폴 울리히 빌라르(Paul Ulrich Villard,
1860~1934)가 발견한 감마선 이후로 N선을 발견했다고 아카데미 정기간행물에 발표했다. - P393

로버트 레이지먼(Robert Lagemann)은 N선 발견에 지나치게 열심이었던 블론의 조수가 이런 상황에 ‘촉매‘ 역할을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고의로 사기를 쳤다고 의심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 N선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 관점을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 P394

블론로는 경험이 풍부하고 인지도 있는 전자기학 방면의 전문가였다.
헬름홀츠가 세상을 떠난 후 블론로는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위촉되어 헬름홀츠의 빈자리를 채웠다. N선을 발견하기 전 그는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하기도 했다. - P394

그는 실험 기술이 뛰어난 물리학자였고, 1891년 그가설계한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거울과 비슷한 기술은 전자기의 복사 전파 속도를 297,600km/s로 측정했다. 나중에 그는 다시 X선의 전파 속도가 광속과 같다는 것을 확정했다. 그로부터 X선이 전자기 복사의 일종이라고 믿었다. - P395

이번 실험에서 블론로는 이상한 현상을 느꼈다. 불꽃간극(스파크겝)을지나간 X선을 석영 프리즘에 통과시키자 굴절 현상이 생겼다. 당시 사람들은 X선이 석영 프리즘을 통과해도 굴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블론로는 이런 결과에 깜짝 놀랐다. 이어 그는 ‘재난에 가까울 만큼 심각한 사고의 비약‘을 일으켰다. 굴절된 방사선은 X선일 리 없다. - P395

 블론로는 새 실험 설비를 이용해 새로운 방사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그는 N선의 특성과 방사선의원천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고, 1903년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제출해 아카데미 간행물에 실었다.
이어 여러 관련 학과의 과학자들이 N선 연구 영역에 뛰어들었다. 푸앵카레, 장 베크렐(Jean Besquerel, 앙리 베크렐의 아들), 폭넓게 존경받는 생리학자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 등 프랑스최고의 과학자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블론로의 위대한 발견을 칭송했다. - P396

 물리학자들은 N선이 투과할 수 있는 물질을 거의 모두 찾아냈다. 가시광선이 투과할 수 없는 나무, 종이, 얇은 쇠, 운모암 등을 N선은 투과할 수 있었고, 물과 소금은 이 방사선을 막을 수 있었다.
생리학자들도 빠질 수 없었다. 그들도 규모가 작지 않은 연구 작업을벌였고, 그 선두에 선 인물이 낭시대학교 의과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 카펜티에(Carpentier)였다. (중략). 그는 인체의 신경과 근육에서 강한 N선이 방출된다고 했으며, 심지어 시체에서도 N선이 나오는 것을 측정했다. - P397

한 작가가 59쪽짜리 글로 간략하게 3년 동안 벌어진 N선과 관련된 발견을 정리한 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중대한 과학적 발견과 마찬가지로 관련 연구가 이어질수록 N선 발견의 우선권 논쟁이 격렬해졌다는 점이다. - P397

프랑스에서 N선 연구 열기가 걷잡을 수 없게 될 무렵, 외부물리학계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략) 그런데 N선은 그런 가장 기본적인 조건조차 만족시키지 못했다. 영국의 윌리엄 톰슨(켈빈 남작), 윌리엄 크룩스(William Crookes), 독일의 오토 룸머(Otto Lummer), 하인리히 루벤스(Heinrich Rubens), 파울 드루데(Paul Drude), 미국의 로버트 우드(RobertWood)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가 프랑스에서만 발생하는 N선에 관심을 보였고 블론의 논문에서 언급한 방법대로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스럽게 실험을 거듭해도 N선을 얻을 수 없었다. 이 일이 그들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였다. - P398

1904년 여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재직하던 로버트 우드 교수가 유럽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가하면서, (중략) 우드는 미국의 유명한 실험물리학자로, (중략)
그의 주요한 과학적 공헌은 물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스펙트럼 이론에서 이뤄졌는데, 그의 실험은 원자물리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 P398

우드는 "내 눈이 밝기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니 내가 손가락으로 N선을 막을 때 불꽃 밝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당신들이 말해달라"라고 은근히 부탁했다. 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우드가 몰래 손을 뻗거나 거둬들여도 프랑스 학자들은 그것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중략). 우드가 손을 움직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불꽃이 밝아졌다거나 어두워졌다고 설명했다. 우드가 손으로 N선을 막느냐 아니냐는 불꽃 밝기에 아무 영향도주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했다. - P399

 우드의 글이 발표되자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 과학자들은 N선 연구에 흥미를 잃었으며, 소수의 프랑스 과학자만이 여전히 블론로를 지지했다. 1905년이 되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간행물에도 N선에 관한 글이 더 이상 실리지 않게 되었다. - P400

많은 사람이 과학 연구에서는 정확한 계산, 정밀한 실험, 조금의 허점도 없는 논리적 증명, 이루 말할 수 없는 객관성이 요구된다고 생각해왔다. 감각, 정서, 동기, 기질 등 심리적 요인과는 관련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사실상 편견에 불과하다. - P400

카펜티에는 어떨까. 그가 N선 사건에서 사기극을 펼쳤다는 것도 들어맞지 않는다. 카펜티에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생물물리학자였다. N선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과 흥미는 이상할 정도로 강했다. 게다가 그의
‘성과‘ 역시 놀라울 정도였다. - P401

 시각에 대해 이처럼 풍부한이론을 가지고 실험 연구를 해왔던 의학과 교수인 카펜티에를 두고 로버트 레이지먼은 이렇게 말했다. "만약 흔들리고 약한 광원에서 오류가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예방할 사람이 있다면 카펜티에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런데 카펜티에가 바로 허구의 N선 연구에서 ‘중대한 발견‘을 해낸 것이다. - P402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관성적 사고라고 부른다. 관성적 사고는과학 연구 과정에서 쉽게 나타나는 심리 현상이다. 관성적 사고는 과학연구에 타성과 장애를 가져온다. 과학 연구의 정상적인 진행을 느리게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보통의 과학자에게는관성적 사고에 더해 권위에 대한 숭배 심리가 동시에 작용한다.
N선 사건을 일으킨 심리적 요인에는 과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감정‘도 있다.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감정이다. - P403

자연법칙은 과학 연구에서 법률, 법령과 같다. 과학적 창조를 해내려면 열정과 끈기가 꼭 필요하지만, 어떤 때라도 냉정한 이성을 유지해야하며 냉혹한 법령조차 멸시해서는 안 된다.
이와 비교할 때 이탈리아 물리학자 페르미는 블론보다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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