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나만의 공간

뉴캐슬 지역에 거주하는 레슬리 맥기네스Lesley McGuiness는 30대에 요절한 남편을 기리며 생전에 그가 가장 아낀 축구팀의 셔츠 모양과 색상을 본떠 묘석을 제작했다. 이 묘석은 가업을 이어받아 조셉 리치먼드 앤드 선Joseph Richmondand Son 사에서 근무하던 사이먼 리처드Simon Richard가 제작한 것으로, 화강암 재질에 뉴캐슬 유나이티드Newcastle United 팀을 대표하는 검은색과 흰색이 칠해졌다. - P179

이처럼 날이 갈수록 남들과 차별되는 독특한 묘석을 찾는 이들이 늘고있다. 오늘날 조셉 리치먼드 앤드 선 사에서 제작하는 묘석 중에 고인의이름만 새겨 넣는 단순한 형태의 묘석은 전체 물량의 20%에 불과하다. - P179

오늘날 아크라 근교의 떼시 Teshi 지방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관을 직접 제작해보는 워크숍이 성행하는데, 자동차와 배, 새, 물고기를 비롯하여 고인이 특별히 여기던 대상이라면 무엇이든 그 모양을 본떠 만들어볼 수 있다. 심지어 휴대전화와 코카콜라 병 모양으로 제작한 관도 볼 수 있다. - P180

반면에 최상위 부유층이나 권력 계층에서는 이와 대조적으로 먼 옛날부터 고인을 으리으리한 무덤이나 영묘에 안치했고, 규모나 외관 면에서 압도적인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아끼던 이를 기리고자 했다. - P180

(전략) 그러나 역사가들이 진시황의 장례가 치러진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항우 장군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와, 황릉에 매장된 보물을 약탈해가 버렸다고 추정하므로 보물의 존재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황제와 함께 매장된 대상이 금은보화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당시 법령에 따라 왕자를 낳지 못한 황제의 부인들은 모조리 생매장되어야 했고, 공사나 내부 장식에 참여한 인부를 비롯한 모든 건설관계자도 처형되었다. 이처럼 황릉 주변에는 순장된 이들의 묘 터도 많이발견된다. - P182

투탕카멘도 울고 갈 제 무덤입니다

왕위에 오르지 못한 범인이라면 토병 7천 명이 호위하는 영묘를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최근 재력가 사이에서는 화려한 무덤을 마련하는 추세가 부활하는 듯하다. 2004년 뉴욕 주 버펄로에 위치한 포리스트론 공동묘지 측은 "미국 최고의 건축가가 잠든 곳에 동참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다. 이 광고는 다름 아니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블루스카이 영묘 내 납골당알 선전하는 것이다. - P182

블루스카이 영묘는 2004년 완공되었다. 본래는 다윈 D. 마틴Darwin D.
Martin이라는 한 기업가가 1925년부터 해당 프로젝트에 착수했으나 1929년 주식 시장 붕괴와 더불어 재산을 탕진하자 곧 발을 뺐다. - P183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고 사후의 안식에 더 비중을 두는 이들이라면,
아예 개인 영묘를 사두는 방법도 있다. 콜드스프링 사는 2005년 한 해에만 개인 영묘 2,000여 곳을 판매했다. 이는 연간 평균 판매 실적이 65군데에 불과했던 1980년대와 비교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이다. 이러한 현상은 베이비 붐 세대의 사망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영묘 판매 수치도 덩달아 급등한 것으로 분석된다.  - P184

그런가 하면 영국의 실업가 니콜라스 반 후그스트라텐 Nicholas vanHoogstraten은 레머런드보다 한층 야심만만한 계획을 실행에 옮긴 인물로 회자된다. 그는 20여 년에 걸쳐 6,500 달러를 투자하여 이스트서식스 주어크필드Uckfield 근방에 웅장한 대저택을 세웠는데, 이곳은 한 세기 동안 영국에서 건립된 사유 저택 중 가장 방대하면서도 호화로운 장소로 알려졌다 - P185

19세기와 달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더 이상 매주 일요일을 할애해 묘지를 찾지 않는다. - P188

 2006년도에 발표된 한 신문 기사에는 지방 의회에서 파견한 건물 점검반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지붕에서초목을 발견한 사연과 저택의 벽면을 등고선 지도처럼 만들어버린 습기문제가 거론되고 있다.⁷⁶ 해밀턴 궁이 이토록 급속히 붕괴된다면 반 후그스트라텐은 과연 본래 의도한 대로 5,000년 동안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있을까? - P188

최후의 만찬: 족내 식인

와리 족은 1956년에 이르러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은수렵민으로 공동생활을 했으며 인척끼리 서로 잡아먹는 풍습, 즉 인류학자들이 ‘족내 식인‘으로 칭하는 관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와리족 외에도 남아메리카의 여러 부족이 내 식인을 행해왔으나 내 식인문화에 대한 와리 족의 유별난 개방성과 자부심은 이들을 타 부족과 차별화했다. - P187

 인류학자 제임스 W. 다우James W. Dow의 견해에 따르면, 내 식인 풍습은 ‘망자에 대한 추모는 물론 고인의 영혼과 남은 후세의 결합을상징하는 동시에 육신과 영혼을 확실히 구분 짓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 P187

한편, 와리 족은 절대로 육친 외의 시신은 먹지 않았다. 즉 내 식인풍습의 범위는 인척 사이로 한정되었고,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준수해야 할 의무 사항으로 간주되었다. 혹여나 인척의 시신 섭취를 거부하는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리 족의 풍습은 종종꽤 불쾌한 경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P188

오늘날에는 와리 족도 인척이나 적의 시신을 더 이상 먹지 않는다.
1962년까지 고무와 약용 식물을 찾아 이 지역으로 흘러든 외부 세력과와리 족이 접촉하면서 인플루엔자와 백일해, 유행성 이하선염, 홍역,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이 유입되어 와리 족 전체 인구의 60%가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약 2천 명가량의 부족민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애초에 선교사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각종 약품을 비롯한 물자를 미끼로 와리 족을 유혹해 이들이 부족 고유의 전통을 버리고 매장 풍습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 P188

한편, 내 식인 풍습으로 특정한 폐단이 유발되기도 한다. 1976년도 노벨상 생리 의학 부문 수상자인 대니얼 칼턴 가이듀섹Daniel Carleton Gajdusek박사가 발표한 바로는 영양 섭취 및 특유의 상징성 재현을 위해 내 식인을 행해온 뉴기니 포레Fore 족은 쿠루Kuru 병, 즉 포레 족 언어로 ‘떨림병"에 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 P189

그렇다면 식인 풍습이 있는 타 부족은 무사한 가운데 유독 포레 족만이 쿠루병에 잠식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분적으로는 단순한 불운의 작용으로 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플랜더즈와 스완Flanders and Swan‘의 곡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건 나쁜 일Eating People is Wrong>에 포함된 노랫말처럼 ‘그가잡아먹은 사람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즉 부족민 중 일부 부주의한 사람이 도살된 고깃점과 접촉하면서 스크래피(양 바이러스성 전염병) 등의 병원균에 감염되었을 경우 이는 곧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으로 발전한다. - P189

2006년, 44세의 독일인 컴퓨터기사였던 아민 마이베스Armin Meiwes는 베른트 유르겐 브란데 Bernd Jurgen Brande라는 사람을 잡아먹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해당 사건은 일반적인 식인 사례로 쉽게 분류될 수 없었다. 피해자인 브란데가 애초에 살해 대상이 될 것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2001년 마이베스는 ‘처절하게 살해된 후 잡아먹히고 싶은 사람‘을 모집한다는 인터넷 광고를 올렸고, 브란데가 해당 광고를 보고 응하면서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다.  - P190

브란데가 발견될 당시, 마이베스는 《스타트렉》 문고본을 읽으며 빈둥대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 12월경 경찰 조사팀은 마이베스의 냉장고 냉동칸에서 브란데의 시신 일부를 찾아냈는데, 토막난 사체는 여러 묶음으로 나뉘어 봉해진데다 유효 기간까지 표시된 채 피자 상자 아래쪽에 숨겨져 있었다. 마이베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희생자의 절단된 발을 접시에 올려 그 위에 소수를 붓고는 포크를 꽂아서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 P190

76 2006년 4월 4일 판 《데일리 텔레그래프》

4장
뿖불이 흩어진 자취들

유해의 각 부위와 그 활용

1832년 벤담이 사망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스미스는 고인이 생전에 밝힌뜻에 따라 동료 24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런던 웹 스트리트 해부 학교WebbStreet School of Anatomy에서 그의 시신을 해부했다. 벤담의 머리는 미라로 만들어졌고, 유골은 솜을 채워 천으로 둘러싼 다음 밀랍 머리 모형을 얹어 런던 유니버시티 대학에 전시되었다. 벤담은 생전에 소위 ‘오토 아이콘auto-icon‘이 되고자 희망했으며, 모형을 바짝 말려 보존하면 대리석 동상보다 훨씬 실제적이고 고무적으로 자신을 기릴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 P77

그들이 남긴 것

망자의 사체는 오래전부터 생명과 건강을 부여하는 소재의 근간이 되어왔다.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독특한 방식이 기술된 구약성서 열왕기하13장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는 오래된 사례를 제시한다. 어느 날 한 남성의 시신이 선지자 엘리사isha가 잠들어 있는 안치소에 매장되었다. 엘리사는 이미 일 년 전에 사망했는데, 생전에 죽은 아이의 입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대어 아이를 소생시킨 적이 있었다. 이는 분명히 초기 형태의 인공호흡을 시도한 것으로 추측된다. - P78

유물relic이라는 단어는 ‘그만두다‘ 혹은 ‘남기다‘를 뜻하는 라틴어relinquere에서 기원한다. 유명 성인을 비롯한 여러 성자 성녀의 유해(치아나 손가락뼈처럼 작고 대수롭지 않은 유물도 포함)는 수세기 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숭배되었다.  - P79

노일레Novaille 수도원에 있는 성 유니아노St. Junianus의 유물은 한 여성의 상피병(사상충이나 그 밖에 세균 감염으로 피부와 피부밑 조직에 림프가 정체하며 결합 조직이 증식하여 환부가 부풀어오르고 딱딱해져 코끼리의 피부처럼 되는 병으로, 다리 · 음낭 · 여자의 바깥 생식 기관에서 많이 볼 수 있다)을 낫게 한 바 있으며, 기타 열병의 치유에도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르모Palermo에 있는 성 로살리아stRosalia의 유골은 전염병 퇴치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지질학자 윌리엄 버클랜드William Buckland가 이 유골은 사실 염소의 해골임을입증한 후에도 그 신비한 힘에 대한 믿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³⁸

유물 숭배는 교구민의 물질적 풍요만큼이나 교회의 경제적 풍요와도 연관되었다. 참배객들은 관례에 따라 돌아가는 길에 얼마간의 돈을 교회에 기부했으므로 성인의 유물이 안치된 교회는 꾸준한 수입원을 확보할수 있었다. - P80

성 니콜라스는 그가 행한 수많은 기적으로도 유명한데, 한 가지 극적인 사례로 잔인하게 학살된 후 소금물에 절여진 어린 아이 세 명을 되살려낸 일화를 꼽을 수 있다.  - P80

성 니콜라스의 유골이 이장된 이탈리아 동부 해안 도시 바리Bari는 널리알려진 성 니콜라스의 유명세 덕을 톡톡히 보았다. 1087년 성 니콜라스의 유골을 훔친 선원들은 바리의 한 예배당에 유골을 다시 묻었는데, 이곳에는 오늘날까지 참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 P81

앓는 부위에 만나를 갖다 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알려졌다. 안타깝게도 추종자들로 하여금 성 니콜라스의 성스러움을 되새길 수 있게 해주는 만나의 습기 때문에 성 니콜라스의 유골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 P81

주임 사제들의 수호성인 성 요한 비안네St. John Vianney의 놀라울 정도로 보존이 잘 된 심장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건너오자 수천명에 달하는 숭배자들이 이것을 보려고 뉴욕과 보스턴을 방문했다. 이보다 몇 개월 앞선 2006년 3월에는 1936년 스페인 내전 중 사망한 발렌시아 출신 순교자 233명의 유물 2천여 점이 30개국 이상에 산재하는 교회와 신앙 공동체, 각 가정에 보급되어 예배에 활용되었다. 가톨릭 보도기관에 따르면 이처럼 널리 보급된 유물 대부분은 순교자들의 작은 뼛조각이라고 한다.³⁹ - P82

 일례로 2007년 6월 루르드의 성베르나데트St. bernadette of Lourdes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 300달러로 경매에오른 것을 비롯해 소위 ‘희귀하고도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유물‘이 들어 있는 순은 로켓(사진이나 머리카락, 부적 등을 넣어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작은 상자로, 펜던트처럼 목에 걸 수 있음)이 온라인 경매에 올라왔다. - P82

기증품의 출처
19세기 당시 런던 빈민들은 사후 해부학자와 조우하는 것을 꽤 두려워했다. 그런가 하면, 21세기에도 예외 없이 이러한 우려가 충분히 제기될수 있다. 주로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체가 해부되거나 짭짤한 수익원으로 매매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 P83

"주치의와 장의사가 같을 수는 없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속담을 수정해야 할 때가 된 듯하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장기와 기타 신체 부위가 이식 수술 및 의학연구용으로 전락하는 꼴을 보고싶지 않다면 절대로 장의사가 생의학 조직 공급 업체를 운영하도록 방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 P83

2000년 2월과 2001년 3월, 마이클은 자신이 운영하는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던 시신 최소 300여 구의 뼈와 인체 여러 부위를 그러모아 대형육류용 냉동고 6대에 저장해두고, 역시 자신이 운영하는 생명공학회사를 통해 팔아넘겼다. 이 과정에서 마이클은 약 40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 P84

 2006년 3월에는 치과 전문의와 방부 처리 전문가를 비롯한 4명이 쿠크를 포함한 시신 1,077구의 피부와 뼈, 심장 판막 및 기타조직을 적출해서 시술에 이용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장례식장에 안치된 시신들은 흔히 냉동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는데, 장례식장에 소속된 ‘절단사들이 가장 값나가는 인체 부위를 약탈해갔다. 앞서 쿠크의 경우에도그러했듯이, 절단사들은 유족의 눈을 속이기 위해 사망자의 뼈대를 PVC관으로 대체하고 생의학 업체 측에는 날조된 동의서와 혈액 검사 결과를 제공했다. - P84

상처 치료에 활용되는 피부는 제곱피트(약0.09제곱미터)당 최대 1,000달러의 값어치가 있었고, 심장 판막은 최대7,000달러에 거래되었다. 반면에 뇌는 600달러 정도로 저렴한 선에서 매매되었다. - P84

 전신은 15만 달러까지 호가하므로, 적어도 암시장에서라면 많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높은 가격으로 평가되는 셈이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의 1만 6,800여 가정이 가족의 유해 일부가 불법 갈취되었다고 주장하며 여러 법률 회사를 통해 소송을 제기한바 있다.⁴¹ - P85

반면 조직은행은 굳이 FDA에 등록하지 않아도 되므로 엄격한 검사와시험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실제로 의학연구 업체나 교육 기관에 소속된 바이어가 동의서를 확인하거나 조직이나 특정 인체 부위의 출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법령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불법 갈취한 사체라할지라도 비교적 손쉽게 거래될 수 있는 것이다. - P85

출처가 불분명한 장기 이식에 따르는 위험은 여러 비극적 일화를 통해 강조된다. 브라이언 리킨스Brian Lykins는 미네소타 출신의 23세 학생으로 2001년 당시 선택적 무릎 관절 수술 도중 사체에서 조달된 연골 조직을 이식받았다. 연골 조직 자체는 불법적 경로로 확보된 것이 아니었으나 기증자의 시신이 냉동되지 않은 상태로 19시간가량 방치되었고, 연골 조직역시 적절한 세척과 소독을 거치지 않은 탓에 리킨스는 이식 수술을 한지 4일 후 세균 감염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 P86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참사에 자극을 받은 미네소타 주 공화당 하원의원 존 클라인John Kline은 ‘브라이언 리킨스 인체 조직 이식 관련 안전 법안‘을 주창했다.  - P86

불법 조달된 인체 부위에 대해서는 훨씬 끔찍한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2006년 8월 <세인트 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St. Louis Post-Dispatch 지기사에 보도된 바로는 중국에서는 간과 심장 등 핵심 장기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식 수술용으로 거래되며, 간과 심장의 매매가는 각각 13만 달러와 16만 달러에 달했다. 기자 데보라 L. 셸턴 Deborah L. Shelton은 중국의 장기기증자들이 다름 아닌 파룬궁 영성 운동을 지지한 혐의로 처형된 죄수들이었음을 보도했다.  - P87

19세기 제임스 매카트니 James Macartney 교수가 《더블린 신문》을 통해 지적한 바와 같이 당시 해부학자의 수술대로 가차 없이 보내져 해부용으로전락한 더블린 빈민층의 희생이 있었기에 중상류층의 건강과 안위가 유지되었다면, 21세기는 파렴치한 장의사들과 중국의 무자비한 처형 집행자들이 장기 이식이 필요한 일부 환자들의 건강과 안녕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 P88

관능적 입굴의 실체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소와 돼지에서 추출한 동물성 콜라겐을 이용하여 수술용 봉합사(상처나 짼 부위를 꿰매는 실)를 제작해왔다. 그러던 중 1976년 스탠퍼드 대학의 생화학자들과 의사들이 정제된 동물성 콜라겐으로 손실된 조직을 대체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 후 성형외과 의사들은 여드름 흉터 충전이나 주름 완화, 입술 확대 등 미용 시술에 콜라겐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 P88

연인의 입술에 죽은 이의 줄기세포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잠시 불쾌해질 수도 있겠으나 이식 재료가 자발적으로 기증된 것임은 물론 의학적으로 안전한 물질이라는 사실은 안도감을 준다. 한편, 모든 콜라겐 시술이 의학적 안전성과 기증자의 동의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 P89

송장 약제

 로버트 제임스Robert James는 1747년 자신의 저서 「범용 약전Pharmacopoeia Universalis」에서 인체는 수많은 약제의 원료가 된다고 밝혔다.
17, 18세기 약제사의 서랍장에는 인체에서 생산되거나 분비되는 사실상 모든 물질이 보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부산물이 약제로 활용되었다. - P90

미라의 다리 사이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155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의학서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에 기록된 바로는 인간의 뇌를 잘라내어 안과 질환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파피루스에는 또한 모유를 대신 사용해도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대 로마 시대의 철학자 켈수스Celsus는 저서 「의학에 관하여 De Medicina」를 통해 죽은 검투사의 피를 마시면 간질병이 치유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 P91

 1785년에 전기 작가 제임스 보즈웰JamesBoeswell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범죄자의 땀에 젖은 손‘을 자기 몸에 문질러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기록했다. 잉글랜드 동부 소택지에서는 죽은 이의 손을 피임제로 간주하여 여성이 최근 사망한 사람의 손을 2분 동안 잡고 있으면 2년간 피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믿었다. - P91

17세기 후반에는 뉴잉글랜드 출신의 목사 에드워드 테일러 Edward Taylor가 ‘신선하고 따뜻한 사람의 피를 마시면 간질이 치유된다고 주장했고, 영국의 다른 여러 의사들도 18세기 중반까지 ‘갓 뽑은 사람의 따끈한 피 한 모금씩‘을 처방하기도 했다. 17세기 파리에서는 류머티즘 환자들이 의사 대신 교수형 집행인을 찾았다고 한다. 당시 교수형 집행인이라는 직업에 부여된 특전이 있다면 바로 시신에서 체지방을 추출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ㅡ - P92

38 (The Life and Corresondence of William Buckland) (London: John Murray, 1894).pp. 94-6, EO

39 2001년 7월 1일 (선데이 미러(Sunday Mirror)), ‘성인 발자취 찾기 투어, 인기몰이(Saint‘s Relics Tour ReachesFever Pitch)‘. 앤드루 부시
2006년 10월 8일 판 <뉴욕 타임스>, ‘성인의 심장 앞에서 힘과 은총의 기도, 마니 페르난데스,
2006년 3월 13일 판 (가톨릭 뉴스 에이전시(Catholic News Agency)). ‘Relics of Spanish Civil War Martyres Sentto Over Thirty Countries‘

41 2006년 4월 27일 판 (USA 투데이(USA Today)>, ‘유족을 두 번 울리는 불법 사체 거래(Illegal Trade in BodiesShkes Loved Ones)‘, 스테판 아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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