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혹은 코메디.
혹은 서문에 나온 것대로 현대 사회의 비극.


시신경도 인젠 작용을 못 하였습니다. 바람 소리가 무섭게 날터인데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청신경도 못 쓰게 되었습니다.
‘방기몽야 부지기몽야 몽지중우점기몽언 각이후지기몽야"
문득 몹시 똑똑히 이 장자의 한 구절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는 온몸의 힘과 신경을 모아가지고 팔을 움직였습니다.
이리하여 비상한 노력의 십여 분이 지난 뒤에 그는 전기 안마기에 스위치를 넣어가지고 그것을 가슴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나이만 노력이 무슨 쓸데가 있겠습니까. 온몸이 차차 녹아오고 마비되어오는 것을 똑똑히 감각하던 그는(벌써 십 오륙 년 전에 동경 어떤 전차에서 본 일이 있는 어떤 일본 계집애의 얼굴을 언뜻 보면서 영원한 침묵의 길을 떠났습니다. ‘인생 도처에 유청산‘
을 ‘인생 도처에 유방해‘라고 고쳐가지고 늘 외던 그는 여기서몸소 ‘인생 도처에 유청산‘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의 노력으로서 ‘생‘을 얼마간이라도 붙들어보려던 전기기계만은 애처로운 자기의 주인의 일생을 조상하는 듯이 그 뒤 이틀 동안을 눈 속에 깊이 묻혀서 웅웅 울고 있었습니다. - P356

김동인의 문학적 역량에 비해 그의 삶은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친일은 어떤 경우에도 옹호나 용인을 받아서는 안 되며, 유복했던 그가 가산을 녹여 먹고 폭발적인 문의 길로 접어든 것은 기생을 옆에 끼고 한량처럼 놀아났던 그 자신의 탓이다. 이는단지 그를 ‘비운의 작가‘라고 에둘러 마무를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가산을 털어 이어간 문예지 <창조>를 비롯하여 빛나는 몇 가지의 시도와 성취들은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그의 존재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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