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 인생이 가벼워지는 15가지 불교 수업
토니 페르난도 지음, 강정선 옮김 / 윌마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불교 교리를 설명하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저자가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일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 가볍게 살 수 있을까를 다정하게 들려주는 에세이라서 더 울림이 크게 느껴진다. 괴로움은 곧 스트레스로 직결되는데 이 스트레스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나 혼자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타인과의 충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이라도 잘 다스려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마음을 평안하게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리라.

p.68 ˝우리는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경험을 지닌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와 대화를 창조한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이 무익하고, 대개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한다.˝


저자는 이처럼 각자가 자신만의 경험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을 짚어주고 있다. 타인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급기야 상대방이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저 문장을 상기한다면 조금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구나라는 통찰을 얻고, 그 과정들을 토대로 내면적으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리라. 결과적으로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동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였음을 깨닫게 하여, 날 선 감정 대신 연민의 마음을 갖게 한다. 내가 보는 세상과 상대가 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마음챙김 호흡 명상법이 자세히 나와 있는데, 요동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에 호흡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한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머릿속 이야기는 진실이 아님을 깨닫는 연습이 필요하다. 숨을 내뱉을 때 내 안의 긴장과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함께 내보낸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유익하고 와닿았던 내용은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이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중독의 개념인 술이나 쇼핑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뿐만 아니라,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조차 중독의 일종이라는 통찰이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욕구가 갈망으로, 다시 집착으로 굳어지며 통제력을 잃는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중독에서 벗어나 평온해지는 법은 먼저 내 삶에 어떤 중독과 집착이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물욕과 식탐이 어느 정도 있는데 이러한 욕구들을 자제하는 방법에 대해도 책에서 다루고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을수록 마음챙김이 왜 타인을 이해하고 나를 지키는 강력한 도구가 되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머릿속의 모든 생각과 말을 진실이라고 믿지 않게 됨으로써, 무익한 스트레스와 불안에서 벗어나 편안해질 수 있는데, 마음챙김으로 비로소 생각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마음챙김은 심리적인 평온을 넘어 우리 몸의 시스템에도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머릿속 불안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신체는 긴장을 풀고 회복 모드로 들어갈 수 있다. 돈도 들지 않고 건강한 신체가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음챙김과 호흡 명상을 통해 건강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니 안 할 이유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체로 놀지 마 어른들아
구라치 준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치 수학 문제를 풀듯 깔끔하게 사건을 종결짓기 때문에 읽고 나서 뒷맛이 아주 개운하다. 이렇게 단순명료하고 논리정연한 추리라니! 하지만 구라치 준 특유의 유머러스한 비틀기는 마지막에 나온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폴 오스터의 유작인 바움가트너의 책장을 덮고는 아련하면서도 복잡한 심정으로 한동안 멍해졌다. 누군가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해 달라고 하면 선뜻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도, 사건도 명확히 잡히지 않아서 내가 독서를 잘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소설은 선형적인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기억과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적으로 화자인 바움가트너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마치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그의 과거와 회상 속에서 천천히 유영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 애나를 잃게 된 바움가트너. 사별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바움가트너의 의식 속에는 애나가 항상 자리한다. 타버린 냄비 하나를 보다가도 자연스레 애나가 떠오르는 것처럼, 팔다리가 없는데도 통증을 느끼는 환지통 현상처럼, 애나는 더 이상 없지만 그녀의 존재가 바움가트너의 모든 생각 속에 유령처럼 머물고 있다. 이 소설은 폴 오스터가 암 투병 중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작가 특유의 지적인 유희보다는 삶의 유한함과 기억의 연쇄에 더 집중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애나가 쓴 시나 원고가 삽입되는 등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는데, 결국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람이 남긴 텍스트와 기억은 계속 흐른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듯하다. 바움가트너가 계속 애나의 미발표 원고를 읽거나, 일상 속에서 그녀를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가 곁에 없다는 물리적 사실보다는 그녀가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심리적 사실이 더 강력하게 그를 지배할 수 있었고 결국 이것이 그가 외로운 삶을 꿋꿋이 버텨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결국 기억은 죽은 자들을 다시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우리 곁에 머물게 할 수는 있다는 주제 의식이 또렷하게 남는다.

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이 남는다. 운전 중에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피하려다가 피를 흘리며 부상을 입는 바움가트너. 그는 망가진 차 밖으로 걸어 나와 그를 가두고 있던 고립된 생활에서 강제로 튕겨 나와 세상과 다시 마주한다.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리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 이는 생존을 향한 의지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신호이리라. 이 장면은 소설 초반, 바움가트너가 타버린 냄비 때문에 손을 다치고 과거에 집착하다 상처 입는 노년의 정체된 모습과 상반된다. 폴 오스터는 바움가트너에게 넘어져도 괜찮으니 이제 그만 애나를 보내주고 당신의 남은 삶을 살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마지막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글에는 폴 오스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이 드러나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는 다정한 위로를 준다. 김연수 작가는 폴 오스터가 죽음을 앞두고 이 소설을 썼다는 점에 주목하며 바움가트너가 애나의 유고를 정리하고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듯, 폴 오스터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삶을 긍정했음을 헌정 글을 통해 강조한다. 이 소설을 통하여 죽음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음울하고도 기괴한 표지만큼이나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한 아쿠타가와의 단편집이 성림원북스에서 새로이 출간되었다. 작년에도 성림원북스에서 출간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음‘을 읽었는데 그때와 동일하게 감각적인 표지가 눈길을 끌었고, 무엇보다 매끄러운 번역과 주석 덕분에 옛스러운 문체가 간간이 있었지만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모든 단편이 각각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공통된 주제를 찾자면 바로 인간이 품은 본성이다. 특히 <거미줄>이라는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가장 날카롭고도 간결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주인공 간다타는 생전에 살인과 방화를 일삼던 악당이었지만, 딱 한 번 거미를 밟지 않고 살려준 적이 있다. 부처님은 그 단 하나의 선행을 보고 기회를 주지만, 간다타가 지옥에서 거미줄을 잡고 올라갈 때 보여준 모습은, 그가 거미를 살려주었을 때의 마음조차 사실은 아주 얇고 깨지기 쉬운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구원의 기회조차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비극이라는 점을 강조한 작품인데, 간다타 입장에서는 그 얇디얇은 거미줄이 끊어질까 봐 공포심이 작용한 것이리라. 아쿠타가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존 본능과 이기심 사이의 딜레마를 아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한 편의 전래동화를 읽은 듯한 <용>이라는 작품은 아쿠타가와의 다른 심오하고 어두운 소설들에 비하면 훨씬 유머러스하다.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고 용이 승천할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 스님 이야기인데, 나중에는 거짓말을 지어낸 스님 본인조차 정말 용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라며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결국 인간은 보고 싶은 것을 믿고, 믿는 대로 보게 된다는 메시지가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다.


아쿠타가와의 데뷔작이자 나쓰메 소세키에게 극찬을 받은 <코>라는 작품은 인간의 묘한 심리를 정말 기가 막히게 포착한 것 같다. 긴 코를 가진 스님은 코가 작아지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코가 콤플렉스였다. 드디어 제자 덕분에 코가 작아졌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는 관대하지만, 그가 노력해서 결점을 극복하고 애쓰는 모습에는 오히려 묘한 거부감을 느끼고 비웃기도 한다는 것을 작품 안에서 드러낸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의 성형수술이나 외모 지상주의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남의 시선을 중요시 여기는 현대 사회의 폐단을 꼬집고 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지옥변>은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시히데의 딸이 가마 안에서 불타 죽는 장면은 이 소설의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설정이다. 그녀는 왜 그런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가장 섬뜩했던 사실은 처음에 딸이 죽는 모습에 절규하던 요시히데조차 불길 속에서 딸이 타 죽는 모습이 지옥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 예술가로서의 황홀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술이라는 괴물에게 바쳐진 무고한 제물이었던 셈이다. 대신은 요시히데에게 진짜 지옥을 목격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뒤틀린 복수심과 소유욕이 이 사건의 근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잔혹한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작나무 숲 ANGST
김인숙 지음 / 북다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고딕 소설 특유의 서늘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잔상이 길게 남는 작품이다. 고딕 소설은 초자연적 공포를 다루어 음산한 분위기를 내뿜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근원적 공포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작가는 최선을 다해 공포를 발산하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독자는 최선을 다해 공포 뒤에 숨겨진 미스터리의 정체를 파헤쳐야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고딕 소설로서 성공한 작품일까.

모유리의 할머니 최무자의 죽음은 이 소설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최무자는 평생을 타인의 시선과 과거의 비밀, 그리고 죄책감을 쓰레기라는 물성으로 치환해 집 안에 쌓아두었다. 그녀를 짓누른 것은 물리적인 쓰레기 더미이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평생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온 과거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그녀는 결국 자신이 만든 감옥에 갇혀 생을 마감한 것이다.

정보하는 그 집의 상태를 모유리만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최무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죽음 이후의 상황을 가장 먼저 인지했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고딕 소설에는 보통 주인공의 일상을 흔드는 외부인이나 비밀을 간직한 인물이 등장한다. 정보하는 이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독자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안개 같은 존재이다. 쓰레기더미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과거 모유리의 연인으로서 둘만의 친밀했던 관계)과 산1번지 외부 세계(현재 구청 직원으로서 모유리를 관찰하는 입장)를 연결하는 듯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듯한 이질감을 풍기기 때문이다. 마치 방관자처럼. 정보하는 한때 모유리의 남자 친구였고 모유리를 아주 좋아했다. 모유리를 도와줄 조력자처럼 보였지만 끝내 모유리의 결핍을 건드리고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 건 아닐까. 어쩌면 모유리에 대한 기괴한 집착이었을지도. 모유리가 막대한 상속을 받을 것이라는 걸 알고는 본인도 모유리에 대한 진심을 알지 못해 방황하는 인물이다.

모유리에게 할머니 최무자는 유일한 혈육인 동시에 자신을 옥죄는 굴레이기도 했다. 할머니가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모유리에게 해방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런데 그 쓰레기 더미 집에서 할머니 시체뿐 아니라 생존자처럼 보이는 신원 미상의 사람과 유골이 같이 발견되다니. 고딕 호러적 공포가 정점에 달하는 대목이다. 단순히 쓰레기 집인 줄 알았는데, 그 쓰레기가 인간의 잔해와 생존자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심리적 타격을 준다. 이 모든 것이 쓰레기와 뒤섞여 있었다는 건, 그 집이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진 무덤 그 자체였음을 보여주니 말이다. 최무자가 죽기 전까지 그 더미 속에서 산 사람과 죽은 자의 뼈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지 상상하면, 단순히 불결한 집을 넘어선 심연의 공포가 느껴진다.

p.209 ˝여자들은 힘이 세잖아. 살인마가 될 아들을, 살인마가 될 애인을, 그런 것도 인간이라고 살려놓으면 안 되지.˝

p.345˝너를 죽이고 그 아이를 살렸다. 너를 살리고 그 아이를 죽여야 했는데 너를 죽였다. 어쩌자고 나는 그런 짓을 했을까.˝

대체 신원 불상자는 누구이며 유골의 정체는 무엇인가? 너무 궁금해서 책장을 덮을 수 없었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진실에 다가서자 그 진실 앞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최무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신원 불상자는 누구인지, 유골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순간에 퍼즐이 맞추어지며 소름이 쫙 끼쳤다. 사실 나무 밑에 뼈들이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겠고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속마음과 독백들이 뒤엉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맥락을 놓치기 쉽다. 모호하면서도 안개 속에 파묻혀 있는 이 소설은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것인가.

끔찍하고 기괴한 결말을 마주하고 나면, 공포보다도 최무자라는 한 여성의 생애에 대한 지독한 연민이 차오른다. 그녀는 이 소설에서 가장 가해자 같은 외양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처절하게 망가진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모유리에게조차 그녀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이었다. 자작나무 숲이 겉으로는 하얗고 고결해 보여도 그 뿌리는 차갑고 습한 흙속에 있듯, 최무자는 그 숲의 가장 추악하고 아픈 뿌리 역할을 했던 셈이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것들에 짓눌려 소리 없이 죽어갔다는 사실이 처연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