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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폴 오스터의 유작인 바움가트너의 책장을 덮고는 아련하면서도 복잡한 심정으로 한동안 멍해졌다. 누군가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해 달라고 하면 선뜻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용도, 사건도 명확히 잡히지 않아서 내가 독서를 잘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소설은 선형적인 줄거리를 따라가기보다,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기억과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적으로 화자인 바움가트너의 의식의 흐름에 따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마치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그의 과거와 회상 속에서 천천히 유영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 애나를 잃게 된 바움가트너. 사별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바움가트너의 의식 속에는 애나가 항상 자리한다. 타버린 냄비 하나를 보다가도 자연스레 애나가 떠오르는 것처럼, 팔다리가 없는데도 통증을 느끼는 환지통 현상처럼, 애나는 더 이상 없지만 그녀의 존재가 바움가트너의 모든 생각 속에 유령처럼 머물고 있다. 이 소설은 폴 오스터가 암 투병 중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은 작가 특유의 지적인 유희보다는 삶의 유한함과 기억의 연쇄에 더 집중하고 있다.
소설 속에는 애나가 쓴 시나 원고가 삽입되는 등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가 반복되는데, 결국 사람은 사라져도 그 사람이 남긴 텍스트와 기억은 계속 흐른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듯하다. 바움가트너가 계속 애나의 미발표 원고를 읽거나, 일상 속에서 그녀를 소환하는 과정을 통해, 그녀가 곁에 없다는 물리적 사실보다는 그녀가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심리적 사실이 더 강력하게 그를 지배할 수 있었고 결국 이것이 그가 외로운 삶을 꿋꿋이 버텨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결국 기억은 죽은 자들을 다시 불러내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우리 곁에 머물게 할 수는 있다는 주제 의식이 또렷하게 남는다.
책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이 남는다. 운전 중에 갑자기 나타난 사슴을 피하려다가 피를 흘리며 부상을 입는 바움가트너. 그는 망가진 차 밖으로 걸어 나와 그를 가두고 있던 고립된 생활에서 강제로 튕겨 나와 세상과 다시 마주한다.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리고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 이는 생존을 향한 의지이자,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신호이리라. 이 장면은 소설 초반, 바움가트너가 타버린 냄비 때문에 손을 다치고 과거에 집착하다 상처 입는 노년의 정체된 모습과 상반된다. 폴 오스터는 바움가트너에게 넘어져도 괜찮으니 이제 그만 애나를 보내주고 당신의 남은 삶을 살아가라고 등을 떠민다.
마지막에 실린 김연수 작가의 글에는 폴 오스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깊이 드러나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는 다정한 위로를 준다. 김연수 작가는 폴 오스터가 죽음을 앞두고 이 소설을 썼다는 점에 주목하며 바움가트너가 애나의 유고를 정리하고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듯, 폴 오스터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삶을 긍정했음을 헌정 글을 통해 강조한다. 이 소설을 통하여 죽음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