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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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음울하고도 기괴한 표지만큼이나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내면을 세밀하게 표현한 아쿠타가와의 단편집이 성림원북스에서 새로이 출간되었다. 작년에도 성림원북스에서 출간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음‘을 읽었는데 그때와 동일하게 감각적인 표지가 눈길을 끌었고, 무엇보다 매끄러운 번역과 주석 덕분에 옛스러운 문체가 간간이 있었지만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모든 단편이 각각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공통된 주제를 찾자면 바로 인간이 품은 본성이다. 특히 <거미줄>이라는 작품은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가장 날카롭고도 간결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주인공 간다타는 생전에 살인과 방화를 일삼던 악당이었지만, 딱 한 번 거미를 밟지 않고 살려준 적이 있다. 부처님은 그 단 하나의 선행을 보고 기회를 주지만, 간다타가 지옥에서 거미줄을 잡고 올라갈 때 보여준 모습은, 그가 거미를 살려주었을 때의 마음조차 사실은 아주 얇고 깨지기 쉬운 것이었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이기심이 결국 구원의 기회조차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비극이라는 점을 강조한 작품인데, 간다타 입장에서는 그 얇디얇은 거미줄이 끊어질까 봐 공포심이 작용한 것이리라. 아쿠타가와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존 본능과 이기심 사이의 딜레마를 아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한 편의 전래동화를 읽은 듯한 <용>이라는 작품은 아쿠타가와의 다른 심오하고 어두운 소설들에 비하면 훨씬 유머러스하다.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이려고 용이 승천할 것이라고 거짓 소문을 퍼뜨린 스님 이야기인데, 나중에는 거짓말을 지어낸 스님 본인조차 정말 용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라며 자신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게 된다. 결국 인간은 보고 싶은 것을 믿고, 믿는 대로 보게 된다는 메시지가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다.


아쿠타가와의 데뷔작이자 나쓰메 소세키에게 극찬을 받은 <코>라는 작품은 인간의 묘한 심리를 정말 기가 막히게 포착한 것 같다. 긴 코를 가진 스님은 코가 작아지기만 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만큼 코가 콤플렉스였다. 드디어 제자 덕분에 코가 작아졌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는 관대하지만, 그가 노력해서 결점을 극복하고 애쓰는 모습에는 오히려 묘한 거부감을 느끼고 비웃기도 한다는 것을 작품 안에서 드러낸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의 성형수술이나 외모 지상주의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에서 남의 시선을 중요시 여기는 현대 사회의 폐단을 꼬집고 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지옥변>은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시히데의 딸이 가마 안에서 불타 죽는 장면은 이 소설의 가장 비극적이고 잔인한 설정이다. 그녀는 왜 그런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 가장 섬뜩했던 사실은 처음에 딸이 죽는 모습에 절규하던 요시히데조차 불길 속에서 딸이 타 죽는 모습이 지옥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 예술가로서의 황홀경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술이라는 괴물에게 바쳐진 무고한 제물이었던 셈이다. 대신은 요시히데에게 진짜 지옥을 목격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뒤틀린 복수심과 소유욕이 이 사건의 근원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잔혹한 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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