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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 이도우 산문집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평점 :
내가 월요일과 화요일 밤에 본방사수 하고 있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시린 겨울 속에도 따뜻함이 깊게 묻어나 있는 잔잔한 감성 드라마이다. 책과 서점, 독서모임 등등 내가 관심있어 하는 소재가 나오기도 하고 주인공도 선남선녀인데다가 드라마 촬영지와 배경이 어쩜 다 예쁜지.
드라마 원작이 소설이라고 해서 책과 작가에 대해 파기 시작했다. 이도우 작가가 최근에 낸 산문집이 한 권 있다는 걸 알았다. 작가에 대해 잘 몰랐으나 책을 한 권 다 읽어 내려간 지금도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다만 자신이 겪은 소소한 경험들을 진솔하고 유쾌하게, 때로는 슬픈 경험을 무덤덤하게 써내려가며 독자와의 공감대를 자연스레 형성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르가 소설이 아닌 에세이이기 때문에 주로 작가 본인의 경험담을 내비치고 있는데, 마치 소설같은 에세이를 읽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작가는 쓰리도록 아픈 이야기와 눈물 나도록 행복에 겨운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내뱉고 있다.
P.22
"관계와 소통은 이어졌다가 끊어지고, 끊어진 줄 알았다가도 연약하게 연결되는 미세신경 같기만 하다. 계정을닫고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이들도 일상의 쓸쓸함을 남길 곳이 그곳이니까 다시 오는 게 아닐까. 타인에 대한 호기심보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여기 이 책의 작가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는구나. 이런 걸 느낄 때마다 힘이 난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그 이유 하나로 소소한 위로를 받는가보다.
우리는 결국 쓸쓸함을 견디기 위해 sns라는 온라인 세계에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일상을 올리며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렇게라도 쓸쓸함을 기록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sns가 인생의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P.213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보고 결말에 이르러 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건 아까운 일이다. 차라리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만드는게 낫겠다. 아, 이번 한 주는 해피엔딩으로 마감했군. 오늘 하루는 그럭저럭 해피엔딩이었어, 하고."
행복을 자꾸 나중으로 미루는 건 나쁜 습관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아니, 나쁘다기보단 어리석다고 해야할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 다음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기쁨을 희생하는 일을 나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 해피엔딩의 일상화를 위한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지. 그런 일상들이 켜켜이 쌓여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기에.
P.298
"밤이 오면 호수에 비둘기집처럼 떠 있는 좌대에 랜턴이 켜지고, 수면에는 주황빛 연둣빛 케미 찌가 어른거렸다. 불빛 아래 가져간 책을 읽다 담요를 덮고 설핏 잠이 들면 물결이 흔들리는 대로 몸도 따라 가볍게 흔들리던. 그러다 어슴푸레한 새벽에 깨어 물안개 낀 산과 호수를 보고 있노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거나 사라져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 문장을 연속으로 5번이나 읽었다. 랜턴, 주황빛, 연둣빛, 설핏, 물결, 어슴푸레, 물안개 같은 단어의 느낌이 좋고 낚시는 1도 모르는 내가 깊은 밤에 잔잔한 호수에서 그러고 있는 것을 상상하니 설레이기도 하면서 나도 한 번쯤은 경험하고 싶은 일이다. 뭔가 낭만적이다고 해야 할까.
인간 관계에서 울타리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였을땐, 이 사람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나를 상대에게 얼만큼 드러내야 하는지 계산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럴 필요조차 못 느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을 만큼 인간 관계는 아직도 어렵고 조절하기 힘들다. 저마다 다가가는 보폭의 속도와 걸음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울타리 간격은 규정 할 수도 없고 법칙화 할 수 없는 거니까. 다만, 타인이 나를 볼 때 내가 가진 울타리의 재질이 딱딱하다거나 차갑게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하면 안되는 것도 물론 안다.
둥글둥글하게 살아야지.
책을 밤에 자기 전에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그야말로 굿나잇하기에 좋은, 책을 읽는 내내 평안한 밤을 만들어 주었던 책이다. 이 밤이 지나면 내일 또 하루치의 고단함과 기쁨, 슬픔이 찾아오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서로에게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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