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0 '훌륭한' 이란 말, 그것은 내가 지독히 싫어하는 말이다. 그것은 허위에 찬 단어이다.속물적인 사고방식과 위선으로 차있는 어른들의 세계를 소년의 눈으로 신랄하게 비판한 그 유명한 호밀밭의 파수꾼. 심지어 대학교 1학년때 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레포트로 제출했던 기억이 있는데 왜 내용이 가물가물 한 건지.내용은 학교에서 퇴학당한 홀든이 크리스마스가 시작되기 사흘 전 학교 기숙사를 뛰쳐나와 뉴욕 거리를 방황하는 이야기다.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한, 가출 일기 또는 자서전식의 느낌이다.홀든은 학교를 증오한다. 그는 학교 교장선생님을 속물이라고 싫어하고 기숙사 룸메이트들을 비롯한, 홀든을 무시하거나 속여 먹으려고 했던 모든 작자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기도 한다.속된 말로 중2병적인 생각과 감정에 치우친 흔한 청소년기의 모습일수도 있지만 이런 홀든에게도 어른스러운 성숙한 면모가 있다.P.16 스펜서 선생처럼 늙은 사람들은 담요 한 장을 사는 데서도 크나큰 행복감을 느끼는 법이다.홀든이 역사를 가르쳤던 스펜서 선생에게 찾아간 에피소드는 참 재미지다. 과거의 일들을 홀든의 시선과 의식의 흐름대로 쓴 설정이기 때문에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불현듯 튀어 나오기도 하고 어떤 인물에 대해 묘사하거나 생각하는 바를 재치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하루에도 열 두번씩 감정기복이 왔다갔다하는 변덕스러운 홀든이지만 그 와중에도 상대방 입장에서 기분을 이해하려하고 애늙은이 같은 발언도 종종 한다.친구가 기분 나빠할까봐 이를 안 닦는다고 지저분한다는 얘기조차 못하는 그는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면서 배려 있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니까.지독하게 외롭고 세상 모든 것이 불만인 홀든이지만 그는 사랑하는 동생 앨리의 기억을 가끔씩 들추어내며 과거를 회상하고, 죽은 동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받는다. 홀든은 어린 아이들과 불쌍한 이웃에게만큼은 관대하고 친절하다. 홀든이 수녀들에게 10달러를 기부하면서 더 기부하지 못해서 아쉬워 했던 일과 <호밀밭을 걸어오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차도를 걷는 소녀를 보는 것만으로 우울했던 마음이 걷힌 일은 따뜻한 휴머니즘이 밑바탕에 깔린 사람이 아닌 이상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이지 않을까. 더구나 가출한 사흘 내내, 여동생 피비를 계속 보고 싶어하고 피비가 갖고 싶어했던 구하기 어려운 레코드를 비싸게 주고 산 점에서 여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헐리우드에 있는 형은 보고싶어 하거나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죽은 앨리나 피비에게 느끼는 감정들은 너무 섬세하고 애달프다.P.254 앨리가 죽은 건 나도 알아. 내가 그것도 모르는 것 같니? 그래도 좋아할 순 있잖아? 누가 죽었다고 해서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순 없지 않니?나는 이 말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죽은 동생과의 과거에서 계속 빠져나오지 못하고 방황하는 홀든이 애처롭다.고작 사흘간의 가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 황당하고 어이없는 에피소드가 많아 이게 정말 사흘 동안 벌어진 일인가 싶다. 홀든이 집으로 돌아가기로 되어있는 날이 가까워올수록 피비는 홀든이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홀든은 몰래 뉴욕을 떠나 서부로 갈 계획을 세우는데 그 허무맹랑한 계획에서 홀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은지가 느껴진다.P.266 웬일인지 모르지만 나갈 때가 들어올 때보다 더 쉬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붙잡아주기를 바랄 정도였다.겉으로는 센 척하고 버릇없이 굴어도 속은 여리고 겁이 많은 아이, 홀든. 불안한 마음에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지만 결국 여동생으로 인해 마음을 바꾸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한다.거짓과 허위로 가득찬 세상을 경멸하지만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청소년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무모한 가출이 안겨준 결과는 페렴이라는 병에 걸려 병원에서 글을 쓰는 일 뿐. 난 홀든을 만나면 쓰담쓰담 해주고 싶다.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그 순수한 마음이 예쁘다.#호밀밭의파수꾼 #catcherintherye #요즘책방 #jd샐린저#제롬데이비드샐린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