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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오해
E, Crystal 지음 / 시코(C Co.) / 2020년 4월
평점 :
20여만 명이 다운로드 받았던 앱소설 ‘길 잃은 도로시’의 저자 E,Crystal의 첫 번째 종이책이 나왔다. E, crystal은 작가이자 출판 디자인 전문회사를 경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혼자서 책을 쓰고 책을 만들다니 대단하다. 책 디자인과 삽화가 참 깔끔하다.
P.178 "모두가 떠난 집. 홀로라는 생각이 더욱 극심하게 몰려왔다. 자신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모두 다시 돌아오기를. 아니면 홀로 이곳에 갇혀 형기를 채우고 있는 것일까. 끝을 알 수 없는 형량을 선고받은 사람처럼 비주는 암담한 기분이 되었다."
소설은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다. 세 자매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예전에는 셋이서 한 집에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뿔뿔이 흩어진 세 자매. 심지어 이 중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사람이 없는데도 말이다. 소설은 혼자 살고 있는 32살 학원 강사 첫째 언니 세주, 진우라는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27살 북디자이너 둘째 유주,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며 언니들이랑 살았던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22살 막내 동생 비주의 이야기를 3인칭 시점으로 돌아가며 서술한다. 다섯 살 씩 터울이 나는 자매들은 심적으로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떨어져 지내며 불편하고 서먹하게 지낸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자매들의 사이가 괜찮았는데 말이다.
첫째 언니 세주의 결혼식 당일, 약혼자 형석이 자살을 한다. 큰 충격에 휩싸인 세주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연락처도 바꾸고 학원 강사를 하며 조용히 지낸다. 하지만 5년 후에, 약혼자였던 형석의 어머니가 자꾸 찾아와서 캐묻고 연락하며 지내자고 한다. 그 날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세주의 맘도 모른 채.
소설 중반부까지 이렇다 할 사건이 있는것도 아니고, 대체 자매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서 저렇게 서로 불편하게 지내는건지 미스테리이다. 특히 세 자매가 한 공간에 같이 모여 있을 땐, 그 정적이면서도 묘한 기류는 더욱 짙어진다. 분명 어느 한 사건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는데, 모두가 그 사건을 일부러 입으로 내뱉지 않는 느낌. 그래서인지 각 인물의 심리 묘사가 더욱 도드라져 있는 것 같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의도와 감정을 파악하며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다. 비밀이 밝혀질 듯 말 듯, 그 내막은 쉽사리 밝혀지지 않아서 읽는 내내 흡입력과 몰입도가 높아진다.
유주는 동거하던 남자 집에서 뛰쳐나와 세주의 집에서 잠시만 머물기로 한다. 오랜만에 언니가 차려준 밥상에 유주는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매콤한 된장찌개와 콩나물, 두부가 들어간 쑥갓 무침, 달걀에 부친 동그란 햄, 미역줄거리 볶음. 전부 자매가 함께 살 때, 언니가 자주 해주던 음식이다. 이 음식은 유주가 비주에게 해주던 음식이기도 했고 비주를 떠나 진우와 함께 살면서 진우에게 해먹이던 음식이다.
P.147 "언니는 대체 누구에게 이 음식들을 배웠었을까, 고민하던 유주는 자신의 이상한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비로소 알아챘다. 왜 이제야 그걸 깨달았을까. 언니의 음식이 바로 엄마의 음식이었다는 것을."
세주와 유주는 오랜만에 동생 비주 집에 가기로 한다. 그 날 비로소 진실을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언니들이 온다는 말에 신난 비주는 매콤한 된장찌개와 콩나물, 두부가 들어간 쑥갓 무침, 달걀에 부친 동그란 햄, 미역줄거리 볶음을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갑자기 형석 어머니가 찾아와 자매들에게 아들이 자살했던 날에 일어난 일들을 캐묻는다.
"말씀드리면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사건이 있던 그 날, 비주 입에서 나온 예상치 못한 말들이 쏟아지고 결국 이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그녀들은 깨닫는다. 그 날, 형석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자매들은 죽을때까지 비밀과 오해를 안고 살아 갔을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 준 집밥은 그녀들만의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언니가 동생들에게 해주고, 또 동생이 언니에게 해 줄 수 있었던 사랑이 담겨 있는 무언의 표현.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할 수 없는 말이 있고 침묵해야 할 때도 있다. 가족이기에 서로를 다 알고 있다고 믿고, 내색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레짐작 해버린다.
서로간의 오해로 하루하루 숨막히게 살아야 했던 자매들의 상처 치유 이야기를 통해 또 한번 가족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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