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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데바 - 삶 죽음 그리고 꿈에 관한 열 가지 기담
이스안 지음 / 토이필북스 / 2021년 8월
평점 :
나는 카데바라는 용어를 몰랐다. 책 제목인 카데바는 의학 교육 및 연구 목적의 해부용 시체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로, 원래는 시체라는 뜻이라고 한다. 책은 총 열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졌는데 공포, 미스터리 소설 장르이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충분히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수 있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억지로 무서움을 짜낸 이야기가 아닌 괴이한 기담 말이다.
작가의 이력 또한 특이하다. 이스안이라는 작가는 소설, 에세이, 여행, 사진에 관해 다양한 글을 쓰지만 공포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심령현상, 삶과 죽음, 꿈에 관한 상상을 하다가 이 소설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편 중에는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한 실화가 담겨있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에서 시작해 창작한 이야기들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스안 작가는 정말 호기심도 많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 가지 단편 중에 재밌게 읽었던 세 가지 작품에 대해 언급하기로 한다.
"포식"
챕터 제목을 고양이의 저주 혹은 고양이의 복수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어렸을 적에 동네 친구들과 길고양이를 불로 태워 죽인 이후에 남자는 트라우마가 생긴다. 30년이 지났지만 꿈에 고양이가 불에 타는 꿈을 수백 번 꾸고, 길을 가다가도 고양이랑 마주치면 불길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남자는 아내의 임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와중에 남자는 홧김에 집 근처 화단에서 또 새끼 고양이를 살생하게 된다. 어미 고양이는 원망과 분노의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본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내는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갖게 된다. 남자는 고양이로부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작가는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의 사체를 먹는 영상을 본 후 이 스토리를 썼다고 한다.
"연애상담"
첨부터 끝까지 연애 게시판에 상담을 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어서 더 리얼하게 느껴졌다. 어떤 여자가 자기의 연애가 진행되는 상황을 시시각각 게시판에 올린다. 여자는 남친과의 데이트, 남친이 잠적한 이야기, 남친이 섭섭하게 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온라인상에 남기고 네티즌들의 반응과 댓글에 위로를 얻으며 자신의 연애사를 계속 생중계한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한 날, 여자는 남자를 집에 초대해 마지막으로 추억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과연 이 여자의 연애는 끝까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버릇"
어렸을 적부터 구석에 무언가를 숨겨두는 버릇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 심지어 햄스터의 사체까지 장롱 속에 숨겨두는데 방에 이상한 냄새가 나자 부모님 몰래 햄스터 사체를 마지못해 내다 버린다. 햄스터를 굶어 죽였다는 걸 알면 부모님께 혼날까 봐서. 평소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결국 엄마는 집을 나가버리고 여자아이는 외할머니와 아빠와 지내며 어느덧 중학생이 된다. 그때까지도 여자아이는 쓸모없는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서랍에 쟁여두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어느 날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던 여자아이는 꿈을 꾸게 된다. 별안간 엄마가 나타나서 찾고 싶은 게 있다며 간곡하게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꿈이었는데 과연 엄마는 무엇을 찾아달라는 것일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공포가 있지만 그중에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상상이 가장 무서운 것 같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만든 공포감은 더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사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단편의 결말들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 결말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 맛에 공포소설을 읽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열 편의 단편들이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공포는 어쩌면 인간의 욕심과 추악함이 만들어내는, 마음속 불안감에서 오는 허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