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효석님의 생애에 이렇게 단편 작품이 많았던가? 방대한 작품과 책 두께에 놀라고, 이효석 전집 2권이 있어서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만 알고 있어서 부끄럽다. 책 전반부에 이효석님의 생가와 친필 원고와 편지 등이 실린 사진을 보고 글을 읽었더니 실로 감동의 생생함이 더해진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보통 작품 해석이나 평이 뒷부분에 실려 있는데 이 책은 앞부분에 실려 있다는 점이다.
작품 배열은 발표 연대순으로 되어 있으며, 속어나 방언 등은 원문을 그대로 살렸다. 그래서 처음 보는 단어가 굉장히 많았고 주석을 보고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어휘도 있었다. 또한, 주석이 해당 페이지 바로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끝나고 한데 몰아져 있어서 페이지를 이쪽저쪽으로 넘기면서 봐야 해서 좀 불편했다. 주석에 한 번 기재된 단어는 다시 기재되지 않는다. 그래서 주석에서 한 번 읽어본 단어였던 것이 기억은 나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개별적으로 그 뜻을 찾아가며 읽어 내려갔다. 옛 문학이기에 이러한 묘미가 있는 것이리라.
[깨트려진 홍등]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은 작품이다. 홍등가에 팔려 와 악덕 포주에게 온갖 천대와 모욕을 당하자, 소녀들은 똘똘 뭉쳐 단식 투쟁을 벌여 가며 포주와 협상하고자 한다. 포주는 소녀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고 결국 소녀들은 파업을 선언하며 손님을 받지 않는다. 소녀 하나가 돌을 집어 들고 붉은 등을 겨누는데, 홍등이 깨지면서 주위는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한다. 악덕 포주에 맞선 홍등가 여성들의 삶과 투쟁을 다룬 이야기다. 소녀들의 거칠고 당찬 말들이 인상 깊었으며, 인권을 위해 싸우는 모습에서 맹랑한 기세가 느껴진다. 여성들의 기구하고도 비참한 현실을 사뭇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지만, 홍등을 깨뜨리고도 현실 타파를 할 수 없는 소녀들이기에 짠하면서도 애환이 깊게 느껴진다.
[약령기]
작품 중에서 가장 슬프다. ‘약령기‘라는 뜻을 찾아보니, 반려견 발달기를 지칭하는 용어라고 한다. 찬란하고도 아픈 청춘의 한 페이지를 회상하며 기록한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주인공 학수를 통해 담아낸 이야기이다. 학수는 학비를 내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배를 주리고 빈혈증에 쓰러지며 매일 사는 것이 고달프지만 그에게는 사랑하는 금옥이가 있다. 하지만 금옥이는 다른 사람과 혼인을 앞두고 있고 학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애만 태운다. 결국 금옥이는 바다에 몸을 던지고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학수는 눈물을 삼키며 고향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밝은 미래를 꿈꾸게 된다는 결말이다. 1930년대 빈민층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리면서도 작중 인물이 품고 있는 사랑을 애틋하면서도 서정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마음의 의장 / 수난]
단편소설이지만 이야기가 이어져 있는 작품들도 있다. 아마 발표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지 못한 것 같다. 작품 제목이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를 읽지 않는 한 두 작품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마음의 의장‘에서는 아내가 고향으로 떠나고 홀로 남겨진 남자의 고독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남자의 곁에는 유라라는 여성이 있다. 두 사람은 서구적 세련미와 예술적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인데, 뭐랄까 요즘 말로 ‘썸 타는 사이‘쯤 될까? 가벼운 유희적인 관계는 아니다. 남자는 유라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복잡한 남성 관계를 방관하거나 그 속에서 묘한 심리적 자극을 받는다. 유라는 자유분방하면서도 근대적인 여성이다. 남자들이 본인을 원한다는 사실을 즐기지만 역시 내면이 고독하고 삶의 결핍을 안고 있다. 그러한 상황을 ‘수난‘이라는 제목으로 잘 지은 것 같다. 이 작품은 1930년대 후반에 발표되었는데, 아마도 지식인들의 정신적으로 허무한 관계, 텅 빈 마음이나 고독을 나타낸 듯하다.
글이 너무 짧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만큼 아쉬운 작품도 있었고, 소설 제목과 이야기가 한 번에 와닿지 않아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작품도 있었다. 내가 이 작품을 잘 이해한 것이 맞나 여전히 궁금한 작품도 있다. 근대문학은 역시 어렵다. 작품 속 화자는 남성이 많고 주로 가난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상황과 근원적인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작품도 곳곳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