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미스터 타이거 (반양장) ㅣ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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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사실 책 표지를 보고 나서부터 예감했다. 정말 애달픈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남자의 옷과 여자의 옷을 보니 작중 배경이 개화기-강점기 시기라는 것을 대충 알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만큼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뒤엉켰던 시기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갈등도 많았을 것이고, 무지에서 오는 폭력적인 사태도 발생하게 된다. 그런 시기에서, 특히 양인들에 대한 경계가 날서있던 시기의 조선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애달플 수밖에 없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안녕, 미스터 타이거』를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노부인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계손향은 노래로 유명한 기생이다. 어릴 적 가난한 부모의 손에 이끌려 팔려왔다. 어느날 보빙사절단이 손님을 맞이하여 여는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 여느 때와 같이 노래를 하며 흥을 돋우는데, 그 자리에서 계손향은 푸른 눈을 가진 노월과 마주하게 된다.

이후 측간에도 혼자 가지 못해 쩔쩔매는 노월을 도와주기도 하고, 노월의 조선말 선생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흔쾌히 승낙하면서 둘은 점점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서로의 언어도 알지 못해 처음에는 일본어로 말을 걸던 두 사람이지만, 점차 노월의 조선말이 늘면서 둘은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그 사람이 지나온 과거와 아픔을 알게 되고, 현재 있는 위치를 알게 되며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각자의 미래 또한 공유하게 된다. 뒤집힌 듯 정반대에 있는 세상에서 와 만나게 된 계손향과 노월이지만, 둘은 비슷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 느끼고 노월은 계손향에게 자신과 함께 조선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함께 가겠다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긴 뒤 헤어진다. 그리고 계손향은 덤덤하게 고민하고 마침내 선택을 내린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로맨스...라는 말로도 정리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조명한 계손향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너무나 깔끔하게 끝나서 애틋함이 느껴지지만 그 아픔에서 허우적거리는 인물이 절대 아니다. 역사의 거대한 풍파를 그대로 마주하고, 떠나보내는 이를 충실히 위로하되 절대로 과거에 붙잡혀 있지 않는다. 이런 계손향의 모습이 참 좋았다.

이러한 계손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 시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이 이 둘의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서 나아가, 거센 시기를 살아가던 한 여성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다보면 애틋함을 넘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읽으면서 이금이 작가님의 디아스포라 3부작 시리즈가 많이 생각이 났다. 내가 계손향이라는 인물을 사랑하게 되어서 더 그런 듯...창비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도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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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ㅣ 사계절 1318 문고 152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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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유독 마음이 시리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아마 대다수가 그런 시기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를 꼽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에서 살아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서 삶을 살아가게 된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것조차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탓에 조금은 죄스러운 마음으로 <슬픔의 틈새>를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단옥이는 정말 당차고 씩씩한 소녀였다. 친한 친구였던 유키에와 바닷가로 놀러가길 약속하는가 하면, 괜한 자격지심이 느껴져서 거리를 두기도 하고 정말 여느 10대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성격의 소녀다. 집주인이 급하게 떠나 두고 간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면서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의 후기를 나누는 모습은 정말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떠올랐을 정도로 너무 귀여웠다. 이런 단옥이의 모습을 알았기 때문에 잊을만할 때마다 나타나던 역사적 사건들이 더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겨우 같이 살게 되나 싶었는데 아버지의 본토 발령으로 헤어지고, 무국적자의 삶이 버거워서 그들에게 내밀어진 선택지 중 하나가 하필이면 북한 국적 신청이라 남동생과는 영영 이별을 해버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겨우 마음을 다잡고 지냈던 큰오빠는 자국 내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전사했다. 읽는 내내 ‘내가 단옥이었다면?’ 질문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녔다. 어떤 대목에서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강제징용에 끌려오고, 그저 형제의 나라처럼 분단된 줄 알았던 두 국가가 전쟁을 하고, 전쟁도 끝나서 쉽게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정부의 연이은 탄압으로 마음대로 사할린을 떠날 수도 없었다. 소련이 달에 착륙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고국에 가지도 못했던 사할린의 한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슬픔의 틈새>는 현 세대인 우리가 슬프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시기 속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그들을 마냥 슬프게만 볼 수가 없다. 그들이 남긴 삶 속에는, 각자의 의미와 빛을 부여한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억울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아무리 힘쓴다고 한들 어떤 일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 마냥 닥쳐든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혹한 일제강점기에, 차갑게 얼어붙은 땅 위에서 그들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 이들은 자신의 삶으로 말한다. 자신들은 끝까지 태어나는 동시에 주어진 이 삶을 살았고, 그 삶에는 애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씩씩하게 멋지게 살아내는 단옥이의 삶에도 분명 서글픈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자신의 삶 전체로 두지 않았다. 가족보다 더 진한 친구 유키에, 자신이 직접 선택한 사랑과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살뜰히 챙기며 살아갔다. 그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현대의 우리는 찬사 이외에 다른 것을 보낼 수는 없다.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니 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키에와 함께 방안에 앉아 제인에어 이야기를 하던 단옥이가 계속해서 생각난다.

단옥, 타마코, 올가

이름만큼이나 다채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 이 여성의 이야기를 오래토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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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바디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10
김청귤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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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조각낸다하여 정신까지 분해할 수는 없다

<퍼즐 바디>의 소개글을 보았을 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떠올랐다. 음침하고, 사람들의 목에는 목줄이 달려 이름 대신 일련번호로 불리는 장소. 그 속에서 주인공인 ‘하나’가 연구소의 비밀을 풀어 탈출하는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책 속의 연구소는 생각보다 산뜻한 장소였다. 먼저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경계심 가득한 하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밖으로 나가거나 소통할 자유가 없다 하여도 연구소 내에서 지내는 생활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먹고 싶은 것도 죄다 먹을 수 있고, 몸 불편한 것 없이 살아가는 환경. CCTV가 깔려있어 문득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을 제외하면 꽤 살만한 공간이다. 그리고 평안한 분위기에 적응되어 독자들이 긴장을 풀 때쯤 사건이 발생한다. 예고없이 한 사람이 죽는다. 그 죽음을 기점으로 하나가 발 딛고 서 있는 연구소는 다른 장소로 변모한다.

이상한 초록빛 불을 쬔 이후로 몸이 분리되는 사건을 겪은 이들을,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데려간다. 이상하게도 몸이 분리되는 이들은 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이를 안 것인지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을 내놓는다. 대개 이 조건들은 금전적인 것들이라 삶을 이어가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유혹적인 선택지로 다가갔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선택권은 없는 모순이 발생한다.

선택권이 없는 자들은 어디로 향하는가. 처음에는 자유가 억제되었어도 안락한 연구소로, 그다음은 실험실로, 그 다음은 다른 몸에 부착되어 부품으로. 매 순간 그들은 선택할 수 없었다. 신체의 어떤 한 부분이 분리되는 설정을 산업화 시대의 비극과 연결지은 부분에 주목하게 된다. 흔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하나의 부품화가 된다고들 말한다. 그 사실을 신체의 한 부위로 비유한 장면과 결말은 독자에게 섬뜩한 경고를 날린다. 나름대로 평화로워 보이는 환경 아래서도 누군가의 부위는 도구화되며, 자유는 금전에 의하여 위계가 생기고 결국 어떤 층위의 사람들만 희생한다.

<퍼즐 바디>가 결말에 강조한 것은 사랑이다. 분리된 신체 부위가 다른 사람에게 부착될 경우, 부착된 사람의 신체 감각을 공유받을 수 있다. ‘한’에게 주고 맞바꾼 새끼손가락으로 감각을 공유받은 하나는 대단한 복수를 기획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보고 거세게 맥동하는 심장의 감각을 느낀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고백하며 그의 안식을 바란다. 이는 새로운 울림이 되어 사람들의 신체 부위로 조립된 것을 무너뜨린다.
하나가 과거에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완벽한 복수였다. 갑갑한 세상에서 옥죄는 것을 뿌리치기 위하여 사랑을 고백하는 일. 아무리 분해하고 무너트리려 노력한다 한들 무너지지 않는 것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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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성의 마법사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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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여주는 <호랑이 성의 마법사> 소개를 봤을 때, 여느 로맨스 판타지처럼 공주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책 초반에 나오는 조금은 푸근한 인상의 화자의 묘사에 당황했다. 대머리인데다가 배도 볼록한 공주를 상상하기는 조금 힘들었으니 말이다! 화자는 아나톨로 에스콰베타의 궁중 마법사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에스콰베타는 몰락해가는 국가이다. 이에 국왕은 자신의 딸인 툴리아를 옥사타니아의 달림플 왕자와 결혼시키려한다. 이 결혼이 순조롭게 잘 이루어지나 싶었는데, 툴리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 상대는 견습 필경사 피토로 이 사실이 알려지자 감옥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달림플 왕자는 이에 격노하며 피토를 자신과 톨리아 공주의 결혼식 연회에 처형하고, 그 광경을 톨리아가 직접 보기를 명한다.

아나톨에게 있어 톨리아는 그녀가 어릴 때부터 함께한만큼 딸처럼 소중한 존재이다. 피토에게 자신의 약을 실험하다가 끝내 그와 유일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아나톨은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떤 결단을 내리고, 세 사람의 운명의 시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보다보면 이 이야기가 판타지인지, 아니면 역사에 기반한 소설인지 갑자기 헷갈리는 지점이 온다. 여타 판타지 소설들과 다르게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베네치아, 영국, 프랑스 등 우리가 아는 지역과 국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시점과 교차해서 이루어지는 묘사를 보고 있으면, 승자의 시선에서 기술된 역사 탓에 후대의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역사를 엿보고 있는 느낌이다. 틈틈이 몇 세기 전의 자신을 어리석고 바보같다고 묘사하는 아나톨도 재밌는 부분 중 하나이다.

아나톨의 시선에서 보는 톨리아와 피토는 기억을 잃는 대신 사랑을 택한 사람들치고 어리숙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운명같이 둘 만을 위한 사랑을 하기보다는 투닥거리며 서로를 미워하고, 흘겨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더 현실적이어서, 두 사람이 정말 실존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작품의 후반부까지 다 읽고 나니, 나까지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아나톨의 소중한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의 오랜 친우는 타국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지 못했고, 그랬기에 당대 유명한 뱃사람으로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 톨리아가 진취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는 대신 사랑을 택한 이야기는 제멋대로 다시 쓰여졌다. 미천한 신분의 피토는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어떤 이야기는 왜곡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기억하고 사랑하는 기억은 영원하다. 아나톨이 먼 훗날 노예제를 지지한다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하는 소녀의 눈을 보고 톨리아의 호기심과 반항심을 본 것이 그 근거다. 그들의 기록은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못한 것이 되었지만, 나는 톨리아와 피토는 대양 위에서 멋지게 자신들의 길을 찾았으며, 아나톨이 훗날 발견한 소녀의 두 눈이 그 삶들의 흔적이라 믿고 싶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하는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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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안의 크기
이희영 / 허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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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도 좋다'는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은 사실 좀 버겁다. '그 자체'란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현실의 내 목을 조르는 것들을 너무나 상세히 묘사한 나머지, 좋다는 의미가 와닿기 전에 내가 먼저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초반부를 볼 때는 속이 답답하기도 했다. 설우의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닌 것만 같아서. 괜찮다고 느꼈던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남겨진 삶.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단절시키는 것들이다. 평안하게 다니던 직장, 포근하게 대해주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매 순간 연속해서 이어지는 삶... 주인공 설우는 탄생할 적부터 쌍둥이 하나와 죽음이라는 경계로 단절되며 태어난다.

설우의 삶에 과하게 몰입되며 슬슬 고통스러워지던 중, 설우는 무던하게 결정을 내린다. 연고도 없는 흑호동에서 혼자서 살아가겠다고. '점심으로 국수를 먹겠어' 처럼 단조롭게 내뱉은 다짐을 기점으로, 나는 어느순간 흑호동 한 가운데에 있었다. 숨막힘과 괴로움을 느꼈던 것은 어느새 잊혀졌다. 흑호동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다.

흑호동에서의 모든 이야기가 마치 내 지난 1년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결말을 위해 급급히 페이지를 넘기다가 작품 소개에서도 봤던 문장을 마주했다. '당신도 행복 때문에 불안해야 해요. 욕심 때문에 힘들어지세요.'

불안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불안을 권하는 모양새에 궁금증이 일었던 장면이었지만, 읽고 나니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우리는 왜 불안해야하는가. 삶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안 불안'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어찌보면 '안 행복'하는 길로 빠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안의 크기>에는 무용할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고자 일흔이 넘는 나이에 학원에 등록한 할머니도 계시고, 탄탄대로였을 앞길을 무시하고 작은 동네에 초등학교 전용 영어 학원을 세운 원장 선생님도 있다. 작 중에선 덤덤한 어머니이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일기장에서 내비치는 불안은 어머니라는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의 입체감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설우는 더욱 자신의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그것이 두려워 행복을 욕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닌 '안 행복' 속 '안'의 크기는 사람을 농락하듯 제멋대로 크기를 줄였다 부풀렸다를 반복한다. 그 순간 속에서 버거워 눈물을 짓다가도 우리는 결국 숨쉬기를 택한다. 우리는 '안'의 크기에 휘둘릴 수 밖에 없으면서도, 그 크기가 어찌되었든 묵묵히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여러 의미로 <안의 크기>가 연말에 출판되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연말만 되면 사람의 마음을 붕 뜨게 만들고 들쑤시는 것들이 생겨나는데, 그런 안 행복한 겨울 밤 내내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봄이 오게 되면 괜히 동네 서점에 시선이 갈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은 흑호동이 아닐텐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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