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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ㅣ 사계절 1318 문고 152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봤을 때, 유독 마음이 시리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아마 대다수가 그런 시기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를 꼽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에서 살아간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많이 읽어보았지만,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서 삶을 살아가게 된 이들의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것조차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탓에 조금은 죄스러운 마음으로 <슬픔의 틈새>를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단옥이는 정말 당차고 씩씩한 소녀였다. 친한 친구였던 유키에와 바닷가로 놀러가길 약속하는가 하면, 괜한 자격지심이 느껴져서 거리를 두기도 하고 정말 여느 10대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성격의 소녀다. 집주인이 급하게 떠나 두고 간 세계 문학 전집을 읽으면서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의 후기를 나누는 모습은 정말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떠올랐을 정도로 너무 귀여웠다. 이런 단옥이의 모습을 알았기 때문에 잊을만할 때마다 나타나던 역사적 사건들이 더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제야 겨우 같이 살게 되나 싶었는데 아버지의 본토 발령으로 헤어지고, 무국적자의 삶이 버거워서 그들에게 내밀어진 선택지 중 하나가 하필이면 북한 국적 신청이라 남동생과는 영영 이별을 해버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겨우 마음을 다잡고 지냈던 큰오빠는 자국 내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전사했다. 읽는 내내 ‘내가 단옥이었다면?’ 질문이 계속해서 떠돌아다녔다. 어떤 대목에서는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강제징용에 끌려오고, 그저 형제의 나라처럼 분단된 줄 알았던 두 국가가 전쟁을 하고, 전쟁도 끝나서 쉽게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정부의 연이은 탄압으로 마음대로 사할린을 떠날 수도 없었다. 소련이 달에 착륙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고국에 가지도 못했던 사할린의 한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슬픔의 틈새>는 현 세대인 우리가 슬프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시기 속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그들을 마냥 슬프게만 볼 수가 없다. 그들이 남긴 삶 속에는, 각자의 의미와 빛을 부여한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도 억울한 일들이 많이 생기고, 아무리 힘쓴다고 한들 어떤 일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 마냥 닥쳐든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혹한 일제강점기에, 차갑게 얼어붙은 땅 위에서 그들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낸 이들은 자신의 삶으로 말한다. 자신들은 끝까지 태어나는 동시에 주어진 이 삶을 살았고, 그 삶에는 애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씩씩하게 멋지게 살아내는 단옥이의 삶에도 분명 서글픈 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자신의 삶 전체로 두지 않았다. 가족보다 더 진한 친구 유키에, 자신이 직접 선택한 사랑과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살뜰히 챙기며 살아갔다. 그 삶을 살아낸 사람들에게 현대의 우리는 찬사 이외에 다른 것을 보낼 수는 없다.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니 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키에와 함께 방안에 앉아 제인에어 이야기를 하던 단옥이가 계속해서 생각난다.
단옥, 타마코, 올가
이름만큼이나 다채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간 이 여성의 이야기를 오래토록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