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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배명은 지음 / 고블 / 2026년 8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름다운 공포’라는 말은 성립될 수 있는가? 『측백나무성의 라푼젤』 속 다양한 작품들을 읽고 나니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공포는 아름다움으로도, 슬픔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감각이다. 그런 다채로운 공포들로 이루어진 7개의 이야기들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잔잔한 여운에 빠지게끔 한다. 무서워서, 무언가 찜찜해서가 아니라 이야기 속 어떤 이들을 떠올리며 겪게 되는 여운이다.
7가지의 이야기는 민속적 요소를 활용한 이야기, 잔혹 동화 이야기,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공포로 극대화한 이야기라는 세 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민속적 요소를 활용한 이야기에는 「1월 16일생」과 「매혹」이 있다. 「1월 16일생」은 정월 대보름, 귀신날, 야광귀 등 현재에도 남아 있는 민속적인 풍습들과 정겨운 우리나라의 괴물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경우 약간의 반전과 함께 감동을 주기도 하니 꼭 스포 없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매혹」은 서평의 초반 부분에서 제시했던 ‘아름다운 공포’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다. 수상한 신을 모시는 폐쇄적인 마을이라는, 공포 장르에서는 자칫하면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재밌게 풀어냈다. 나는 서은이가 마을의 신에게 사랑받는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신을 담은 서은이의 눈에는 신이 참 매혹적으로 보였다는 것도.
‘잔혹 동화’로는 「모자 장수」,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이 있다. 소재를 보면 예상이 갈 것 같은 이야기지만, 7개의 이야기 중 가장 예측이 안되었던 작품들이다. 일제강점기 설원에서 펼쳐지는 모자 장수와 아리의 이야기, 그리고 괴기스러운 모습이지만 진상을 다 알고 나면 서글프기만 한 도희와 지수의 이야기. 동화가 되기에는 너무나 각박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내리는 선택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입이 써지는 이야기, 「결계의 방」, 「벌레 대왕」,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다. 각각 부동산 사기, 묻지 마 폭행/범행, 데이트 폭력이 떠오르는 이야기들이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짜인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서 등장하는 비현실적인 공포 요소들이 어색하지 않다는 게 신기했다. 현실 속 부조리함을 멈추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필수적인가 싶기도 하다. 취준생 입장에서 「결계의 방」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등장인물 모두 열심히 살았다 그만해라….
배명은 작가님을 좋아한다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어떤 작품으로 작가님을 접했든,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소설들이 한데 모여있는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다양한 공포 중에서도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 민속/토속적인 요소들이 들어간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수다.
아름다운 공포는 존재할 수 있다. 무서운 존재가 구성되는 과정이든, 그 공포를 맞딱뜨린 인간이 행하는 선택이든 어떤 면에서는 극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기적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공포는 여름에 읽는 것이 제격이라지만,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은 서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읽기 좋은듯 하다. 서늘함 속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들을 잘 포착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