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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안의 크기
이희영 / 허블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 자체로도 좋다'는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은 사실 좀 버겁다. '그 자체'란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현실의 내 목을 조르는 것들을 너무나 상세히 묘사한 나머지, 좋다는 의미가 와닿기 전에 내가 먼저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초반부를 볼 때는 속이 답답하기도 했다. 설우의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닌 것만 같아서. 괜찮다고 느꼈던 것으로부터 단절되고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남겨진 삶.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들은 대체로 무언가를 단절시키는 것들이다. 평안하게 다니던 직장, 포근하게 대해주던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매 순간 연속해서 이어지는 삶... 주인공 설우는 탄생할 적부터 쌍둥이 하나와 죽음이라는 경계로 단절되며 태어난다.
설우의 삶에 과하게 몰입되며 슬슬 고통스러워지던 중, 설우는 무던하게 결정을 내린다. 연고도 없는 흑호동에서 혼자서 살아가겠다고. '점심으로 국수를 먹겠어' 처럼 단조롭게 내뱉은 다짐을 기점으로, 나는 어느순간 흑호동 한 가운데에 있었다. 숨막힘과 괴로움을 느꼈던 것은 어느새 잊혀졌다. 흑호동 사람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했다.
흑호동에서의 모든 이야기가 마치 내 지난 1년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결말을 위해 급급히 페이지를 넘기다가 작품 소개에서도 봤던 문장을 마주했다. '당신도 행복 때문에 불안해야 해요. 욕심 때문에 힘들어지세요.'
불안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불안을 권하는 모양새에 궁금증이 일었던 장면이었지만, 읽고 나니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우리는 왜 불안해야하는가. 삶의 모든 것은 불확실하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안 불안'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어찌보면 '안 행복'하는 길로 빠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안의 크기>에는 무용할지도 모르는 공부를 하고자 일흔이 넘는 나이에 학원에 등록한 할머니도 계시고, 탄탄대로였을 앞길을 무시하고 작은 동네에 초등학교 전용 영어 학원을 세운 원장 선생님도 있다. 작 중에선 덤덤한 어머니이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일기장에서 내비치는 불안은 어머니라는 인물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 어머니의 입체감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설우는 더욱 자신의 상실감을 크게 느끼고 그것이 두려워 행복을 욕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닌 '안 행복' 속 '안'의 크기는 사람을 농락하듯 제멋대로 크기를 줄였다 부풀렸다를 반복한다. 그 순간 속에서 버거워 눈물을 짓다가도 우리는 결국 숨쉬기를 택한다. 우리는 '안'의 크기에 휘둘릴 수 밖에 없으면서도, 그 크기가 어찌되었든 묵묵히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여러 의미로 <안의 크기>가 연말에 출판되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연말만 되면 사람의 마음을 붕 뜨게 만들고 들쑤시는 것들이 생겨나는데, 그런 안 행복한 겨울 밤 내내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그렇게 봄이 오게 되면 괜히 동네 서점에 시선이 갈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은 흑호동이 아닐텐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