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ㅣ 베어클래식 2
헤르만 헤세 지음, 박진권 옮김 / 베어클래식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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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올바른 삶이란 무엇일까.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잇고 흐르는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모두 자기 내면의 성장과 갈등을 여과 없이 짚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헤세가 그려내는 세상과 내적인 묘사는 가끔 소름돋을 정도로 공감이 가서, 그의 모든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 하지만 유독 『싯다르타』는 선뜻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헤세가 쓴 부처님의 위인전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읽어보니 내가 생각한 것과도, 기대했던 것과도 일치하지 않아 기분 좋게 읽었다. 같은 오해를 하신 분들이 계신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기대보다 훨씬 더 좋은 이야기라고…

싯다르타가 승려(사마나)가 되어 고행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친구 ‘고빈다’와 함께 떠나고, 존경스러운 사마나 스승을 만난다. 친구 고빈다는 그를 스승으로 삼아 더 배우겠다고 하지만, 싯다르타는 다른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본인이 원하는 깨달음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하여 다른 길을 택한다.

2부에 들어 싯다르타는 세속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된다. 매력적인 여성 ‘카말라’와 사랑하며 그의 호화스러운 유원에서 살아가고, 상인 카마스바미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고리대금업에 가까운 일을 하며 돈을 번다. 그러다 이 돈들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며 도박으로 모든 돈을 날리기도 하고, 다시 그만큼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후 자신이 다른 깨달음을 얻고자 세속적인 삶과 카말라를 떠나 고행의 길을 걷는다. 싯다르타는 일전에 수수한 사마나였던 시절 공짜로 배를 태워줬던 사공 바수데바를 만난다. 그에게서는 진정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곳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카말라가 고행을 떠나던 중 싯다르타와 마주친다. 싯다르타와 닮은 그의 아들을 두고 삶을 마감한다. 깨달음을 얻고, 진리를 깨우쳤다고 생각했던 싯다르타의 내면에 거센 파도가 요동친다. 그는 자신에게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작 중 내내 자신만의 답을 찾고자 한다. 그 답은 이미 뛰어난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다고 하여 찾아낼 수는 없는 것임을 알고 그는 세속의 삶에 발을 들인다. 세속에서 그를 유혹하는 모든 달콤함에 발을 들인다. 그런 행위에 허함을 느끼고 도박을 하며 돈을 날리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가 스스로 깨우친 것은 자신에게는 다른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사실 『싯다르타』는 그저 종교적 성인의 한 일화로만 기억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이 등장함으로써 그가 지금까지 깨우쳤다고 생각했던 진리들이 쉽사리 적용되지 못하고, 그로 인해 또다시 혼란에 빠지는 지점은 내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존재에게는 마음을 비우고 행동하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이고, 그것은 내가 찾은 답을 적용하는 것 그 이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보통의 인간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싯다르타도 사랑하는 카말라의 옆을 떠나기를 망설이고, 자신의 아들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지 망설이지 않았는가.

우리는 자신이 깨달은 것이 세상의 진리라 생각하여 상대에게 강요하고는 한다. 그 상대를 괴롭히기 위함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행동했다는 점에서 비극적으로 끝난다. 상대에게 있어 그 가르침은 누군가의 ‘가르침’일 뿐 자신이 찾은 답은 아니니 말이다. 어쩌면 사랑을 이유로 다른 이들이 깨우침을 얻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혼란스러워하며 고행을 떠난 총명한 소년 ‘싯다르타’는 완전히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 성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말로 끝이 났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추앙받으며 유명세를 얻은 결말보다 책의 결말이 더 좋은 것 같다. 스스로의 깨우침을 얻고, 누군가에게 그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사공 바수데바처럼 깨달음까지 가게 하는 길을 트여주는 역할. 어쩌면 본인에게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스승이자 성인의 모습이 아닌가… 종교적인 요소를 빼고 보더라도, 요즘같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여러 가지가 넘쳐나는 이 거센 강물 같은 세상에서 우리만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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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하여
정해연 외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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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저 아이돌은 무대 아래에서 어떤 모습일까’


내가 아이돌 덕질을 할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이었다. 무대 위의 아이돌들은 하나같이 멋지고 빛이 났다. 그런 이들을 동경하다보니,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무대 아래의 그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은 생활밀착형 예능과 자체 예능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무대 밖 아이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렇지만 근원적인 궁금증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카메라 하나 있지 않은 공간에서도 그들은 같은 모습일까? 나는 아닌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아이돌이 지닌 무대 아래에서의 본모습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최애가 XXX였던 건에 대하여』는 아이돌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 4개가 수록된 앤솔로지다. 정해연, 김아직, 정명섭, 박지선 총 4분의 작가님이 참여했고 각각 다른 소재의 다양한 매력을 지닌 이야기들이다. 특유의 예리한 감으로 아이돌과 그림자 형사 투잡을 뛰고 있는 예리, 망한 아이돌 그룹의 메인보컬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우주 행성까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하러 나선 선유, PMC(민간군사기업의 약칭)라는 명칭 때문에 서사하라를 지켜줄 영웅으로 오해받고 만 군필 남자아이돌 그룹, 대를 이어 내려져오는 퇴마사라는 의무를 수행하고 눈물을 마시는 요괴를 쓰러트리려는 퇴마 아이돌(?)지안까지.

아이돌이라는 직업 이외에도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과업은 마냥 쉽지가 않다.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문제들도. 예리는 함께 꿈을 키운 동료 나나를 살해한 자를 찾아야 했고, 선유는 월클 남돌의 팬들로부터 받을 무수한 질타를 감당하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한 몫을 해내야 했다. PMC는 그저 사막 배경으로 죽여주는 뮤비를 찍고 싶었을 뿐인데 한 지역을 지켜야만 하는 기대를 받아버렸고, 지안은 자신을 퇴마사로 길러준 할아버지조차 이기지 못한 존재와 맞서야 한다.

각각의 스토리들은 재밌는 동시에 아이돌이라는 이름 너머의 이들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내가 제일 사랑한 인물은 선유이다. 선유는 정말 너무나도 따뜻한 사람이어서 거대한 촉수가 드글거리는 외계 생명체(크럼)라고 하더라도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그들만의 특성을 알아봐준다. 선유가 눈물을 마구 흘리며 본인 그룹 ‘일루언’의 소개 멘트를 치고, 크럼들에게 무작정 뛰어든 장면은 정말이지 눈물이 났다….

아이돌이라는 반짝이는 이름은 동시에 무거운 기대감을 어깨에 얹어주기도 한다. 아마 자신의 본모습과 다르게 과중한 기대를 받거나, 다른 이들은 모르는 자신만의 과업을 해결해야만 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4가지의 이야기가 유쾌한 위로로 다가오지 않을까

아이돌 팬의 마음으로 보았다가 예리, 선유, PMC, 지안 이라는 그 각각의 인물들에게 푹 빠졌던 책이다. 그들을 보며 우리 안에도 있던 이중적인 모습을 찾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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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사라다
차정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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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짝찌근한 것에 비유해야만 설명이 되는 감정들이 있다. 감각 또한 마찬가지이다. 뙤약볕 속에서 그 마음을 꺼내는 것은 꽁꽁 얼려둔 과일을 생으로 내보이는 것과 같아서 그것들이 녹아 내 손 위에 끈적하게 녹아붙을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에어컨 사라다』 속 시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랑은 혀 위에서 발음됨과 동시에 짓뭉개지기도 하고, 겨우 존재를 인식한 순간에 녹아 없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상대로부터 간질거리는 응답을 받기도 한다. 사랑을 생생히 느끼든, 어렴풋이 느끼기만 하든 독자들은 자신을 조각내어 한 그릇에 모은다.

시집을 읽는 내내 ‘아 이래서 에어컨 사라다가 제목인걸까?’하며 괜히 표지를 보기도 했다. 표지 속 반투명한 과일들의 모습이 뒤섞인 것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나의 감정을 또 다른 이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여름에 에어컨 바람을 쐬며, 뜨겁게 녹을 것 같은 감정을 달큰한 과일로 표현한 감각들이 재밌게 느껴졌다. 필사를 하며 그것을 되새기기도 하고, 몇 번씩 읽으며 머릿속에 스스로 떠올려보기도 했다. 어떻게 즐기든 사랑의 줄기 하나하나를 느껴볼 수 있는 시집이다.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과일이 있듯, 뜨겁게 익는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차정은 시인만의 감각적인 세상으로 느낀 감정들은 새로워서, 지금껏 맛본 과일의 다른 온도를 체험하는 듯하다.

뜨거운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차정은 시인이 이야기하는 사랑을 꼭 맛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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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ㅣ 위픽 클래식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박정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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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마다 저만의 개성을 담은 고전 소설 시리즈가 있고, 요즘도 새로운 시리즈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다채로운 선택지에 기분 좋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위즈덤 하우스에서 위픽 시리즈로 고전 소설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자이 오사무의『인간 실격』 과 이상의 『날개』 그리고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이다. 그 중에서도 한 번도 읽지 않았던 『첫사랑』 이라는 작품에 관심이 갔다. 운 좋게 좋은 기회를 얻어 읽어보았다.

『첫사랑』은 주인공 무슈 볼데마르의 회고로부터 시작한다. 그닥 사이가 좋지 않던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던 16살 소년이었다. 어린 볼데마르는 옆 집으로 이사 온 21살 여자 지나이다에게 사랑에 빠진다. 지나이다는 공작 부인의 딸이었지만 집안 사정은 그렇게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배경적인 요소들을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매력적인 여자다. 그건 다른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볼데마르는 풋풋한 사랑에 빠지는 동시에 5명의 경쟁자가 생긴다.

지나이다는 볼데마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날은 볼데마르를 귀엽게 여기며 사랑에 보답해주는 듯 하면서도, 어떤 날은 볼데마르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말라며 매몰차게 군다. 순진한 볼데마르는 속절없이 그런 그녀에게 휘둘리고, 자기 자신조차 제어하지 못한다.

여느 날처럼 사랑의 열병에 앓던 볼데마르는 지나이다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인지, 아니면 자신의 연적 중 다른 누군가인지 확신이 없다. 그는 칼을 차고 정원 밖으로 나가 ‘시동’의 도리를 다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볼데마르와 독자 모두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인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인물은 볼데마르의 연적 중 누구였을까?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1860년에 첫 출간된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60년 이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고도 볼 수 있다. 20대 중반 독자의 눈에서 본 볼데마르는 참 귀여웠다. 누가봐도 자신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지나이다를 한 없이 사랑하고, 그녀를 끝까지 잊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초반, 그녀를 회상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태생적인 성향도 있는 듯 하다.

볼데마르는 수줍은 듯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모두 드러내는데 지나이다 역시 그걸 진작에 눈치채고 아주 재밌게 놀려먹는다. 이 둘의 대화가 나올 때마다 나는 그냥 웃겼다. 이게 만약 요즘 출간된 웹소라면 연하남 키워드는 반드시 붙여서 나올 것 같다. (진짜 그냥 웃김)

*아래로부터는 주요 이야기에 대한 스포일러 요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가볍게 웃으면서 볼 이야기는 아니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는 여러 생각에 빠진다. 이 책의 마무리는 사랑에 대한 어떤 결정이나 결심이 아니라 자신을 지독하게도 괴롭게 했던 이들과 자신을 위해 기도로 끝난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을 비롯한 가정을 파탄내는 선택을 했고 지나이다는 자신도 자신의 아버지도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산고로 사망한다. 이후 볼데마르는 사랑만을 쫓던 소년이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젊은이에 대한 정의와 볼데마르만의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첫사랑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보았다가, 이 당시 작가가 젊은이를 보는 시각을 공유받은 느낌이었다. 물론 160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아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들은 현 시대의 젊은이들한테도 꽤 울리는 문장들이지 않았을까. 위픽만의 담백하면서도 가독성 좋은 장점을 느끼며 읽었던 시리즈다. 『첫사랑』이라는 책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읽어보았다 하더라도 위픽만의 감성으로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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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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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단요 작가님이라는 이름만 보고서 너무 보고 싶었던 책이다.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가 품었던 의문조차도 흐려져서 발생한 지점들을 짚어내고, 그로 인해 발생했던 문제들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내신 부분들이 좋았다. 그러한 점들 때문에 SF장르인 이번 <존재의 대연쇄>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SF란 본래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테고,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작가님의 시선으로 빌려서 보는 일은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소설까지 다 읽고 나니 내가 기대한 부분과는 조금 다른 소설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오히려 SF는 막연한 미래의 일이라 생각한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현재의 것을 모두 안고가는 것이 미래일텐데 나는 어째서 이 둘을 분리해 보고 있었던 것일까.

『존재의 대연쇄』 는 총 6개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존재의 대연쇄>는 수록된 소설의 한 제목이기도 하다. 다섯 가지 모두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버지 유품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전화로부터 로마 황제의 음성을 듣게 되는 <사랑하는 신의 생일>, 유령 기린 사이에서 자신의 삶과 알아채지 못한 비애를 읽어가는 <세상의 이름은 기린>, 적외선 시선을 가진 역사 속 인물들의 족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 사고가 난 딸과 AI로 기억되는 그의 모습에 관한 <빛 속에>….

그리고 감히 창조주가 되어보려 세상을 프로그래밍한 인간의 이야기인 < 존재의 대연쇄>와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이다. 개인적으로 <존재의 대연쇄>와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는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손에 끌리는 대로 이야기를 읽어나간다고 하더라도 이 둘은 꼭 함께 두고 읽었으면 한다. 그래야 <존재의 대연쇄> 속 격자 공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더 읽어나갈 수 있다.

다섯 작품 모두 다양한 배경을 하고 있지만 종교, 미래, 기술, 인간이라는 네가지 키워드로 묶이기에는 충분한 작품들이다. 나는 이 중에서도 종교라는 키워드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조금 낯선 이야기들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무교라 하더라도 인간이 신을 믿는 행위 자체에 한 번이라도 궁금증을 가져보았던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즐겨볼 수 있다.

배경만 다를 뿐 어쩌면 현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날카로운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SF를 읽고 이토록 다양한 생각이 들었던 적은 처음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익히 알고 있는 기술적인 개념들도 등장해 더욱 현실감이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 사이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촘촘하게 배여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보기에 더 좋은 책이라 느꼈다. 거센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는 내게도 전해져서 인덱스를 여러번 붙였다.

신은 무엇이며 인류의 종말은 어떠한가. 절망적인 소식을 신이 건네는 음성을 들었을 때, 낮과 밤조차 불분명한 시대에 모두를 잃고 죽음을 맞이한 순간에, 신의 탄생과 그가 내미는 구원에 무료함을 느낀다는 것에, 세상을 모두 제 손으로 종말시키겠다는 결심이 차오르는 순간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세상의 탄생과 종말은 애초에 누구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을까? 책 속 인물들의 선택과 우리의 생각을 비교해보면 더욱 재미있을 책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가 여러 생각에 빨리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어지는 작품이었다.

SF 속 미래는 우리가 남긴 현재의 과업이 그대로 이어져간다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모든 역사 속 일들은 원인이 되어 결과로 미래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 책 표지 속 픽셀아트는 어쩌면 종말을 상징하고는 하는 대홍수 속 한 파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오독했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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